새로운 것이 좋은 것이 되려면 검증과정을 거쳐야

한나라당 국회의원 유기준(유기준 의원실 제공)
[한나라당 국회의원 유기준] 선거는 국민의 가장 중요한 참정권으로써 공직자나 대표자를 선출하는 의사 결정 절차이며, 선거를 통해 국민들의 의견을 代辯하는 대표자를 선출하게 된다.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성과 투명성이며, 국민의 의사를 정확하게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최근 선거제도 개편에 관한 논의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고질적 문제인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그동안 여러 가지 방안이 나왔고, 많은 시도가 있었다. 이번에도 선거제도를 개편하는 목적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러한 지역주의를 타파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선거제도를 논의함에 있어 話頭로 떠오르는 것이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중선거구제' 도입이다. 본 의원은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견해를 말하고자 한다.

(1)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문제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전국을 권역으로 나눠 정당의 권역별 후보자명부에 투표하여 일정 수의 비례의석을 선출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가 지역주의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권역의 범위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그 제도적 효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권역설정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특정 정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권역설정이 이루어진다면, 오히려 지역주의가 더 심해질 가능성도 있다.

둘째는 의석수의 대폭적인 증가가 전제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는 지역구 245석, 비례대표 54석으로 모두 299석이다.
그런데 최근 언론에서 거론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면, 비례대표 의석수를 120석으로 늘리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왜냐하면 현재의 비례대표 의석수로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해도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국민의 68%는 국회의원 수를 지금보다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국민들이 국회의원 수를 줄이자고 하는 마당에 국회의원 수를 늘려가며 검증되지 않은 제도를 도입할 수 있을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셋째는 국민의 의사가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국민들은 정당의 정강ㆍ정책이나 후보자 개개인의 능력과 자질을 보고 투표하기 때문에 선거결과는 말 그대로 민심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 독일에서도 정당명부제의 내재적 모순의 하나로 '지역구의석의 대표성 상실현상'을 들고 있다.

'지역구의석의 대표성 상실'이라는 문제점은 우리에게도 나타날 수 있다. 즉, A정당이 지역구의석에서는 다수를 얻었으면서도 권역별 비례대표제에서는 B정당이 커다란 차이로 앞서서 결과적으로는 두 정당 사이에 차이가 별로 없는 경우가 나타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A정당이 얻은 지역구의석에서의 대표성을 상실할 가능성이 있어 民意가 왜곡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넷째는 석패율제도를 도입할 경우, 지역구선거에서 낙선한 사람이 당선자로 바뀌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지역구 선거에서 가장 아깝게 떨어진 후보를 구제해주자는 것이 기본취지이며, 일본에서 1996년부터 실시해 오고 있다.

그러나 지역구선거에서 낙선한 후보자를 이 제도로 구제해준다면 해당 지역구주민들의 의사를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다섯째는 비례대표 후보자에 대한 공천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문제이다. 현재의 정당구조는 어느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능력보다는 자기와 뜻을 같이 하는 인물을 중심으로 공천을 한다면 그동안 보아왔던 계파정치, 인물정치, 파벌정치의 악연을 끊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2) 중선거구제의 문제

일반적으로 중선거구제는 지역주의완화에 기여할 수 있으며, 소선거구제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다당제를 유도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중선거구제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본은 1947년의 중의원 선거부터 중선거구제를 채택하였다가 1994년 정치개혁입법에 의해 소선거구제로 변경하였다.
대만 역시 2004년에 중대선거구제를 포기하고 소선거구제로 전환하였다.

일본이 소선거구제로 변경한 것은 중선거구제 아래에서 하나의 정당에서 복수후보가 출마하여 동일정당의 후보간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로 인해 파벌이 형성되고, 파벌의 발호는 다시 음성적이며 불법적인 정치자금문제를 초래하고, 소지역주의가 발생할 가능성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한다.

둘째는 중선거구제는 군소정당의 난립으로 정치상황을 더욱 어렵게 할 수도 있다. 중선거구제는 소선거구제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다당제를 유도하는 경향이 있어 군소정당의 원내진입을 가능하게 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이것이 오히려 군소정당의 난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또한 역으로는 하나의 정당이 많은 의석수를 독점할 수도 있어 복수정당제의 취지를 훼손할 우려도 있다.

셋째는 중선거구제가 지역주의를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중선구제에서는 선거구당 2∼3인 이상을 선출하기 때문에 특정정당에게만 몰표가 가는 현상은 완화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정당의 특정지역에 대한 세력분포를 결정짓는 현실을 시정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넷째는 전제조건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중선거구제가 지역주의극복의 제도적 효과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나는 각 정당이 동일지역구에 1명의 후보만을 내세우도록 해야 한다는 '이중입후보금지'조항의 도입이며, 다른 하나는 지역주민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후보자 이외에 다른 정당에도 투표하려는 적극적인 의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 두 가지 요건을 실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다섯째는 정계의 부패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중선구제는 일반적으로 소수당에 유리하고 다수당에는 불리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본에서 1955년 이후 자민당의 일당지배를 가능하게 한 주된 원인이 중선거구제 때문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결과를 보더라도, 반드시 소수당에 유리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또한 지역의 광역화로 선거비용이 많이 들고 적격자의 입후보를 어렵게 하며, 정계의 부패를 초래할 가능성이 많다는 지적이 있어 세계적으로 순수한 의미의 중선거구제를 채택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여섯째는 당선되는 의원들 간의 대표성을 심각하게 왜곡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선거구에 5명이 선출되는 경우, 1위 후보는 50%의 득표로 당선되는 반면 5위 후보는 5% 이하의 득표로도 당선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두 당선자가 동등한 한 석의 권리를 가지는 것은 표의 등가성과 대표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이 있고, 세계적으로 외면하는 추세에 있는 중선거구제를 지금 이 시점에서 굳이 우리가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회의적이다.

(3) 맺음말 : 改惡이 아니라 改善이 검증되어야만 한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지역주의이다.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그동안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아직까지도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지역주의해소를 위해 선거제도를 개편해도 효과가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또한 선거제도 개편이 지역주의 타파에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본 의원은 선거제도 개편의 목적을 지역주의 타파에 두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 동안 제도가 잘못되어서 지역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것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일부 정치인과 정당이 당리당략만을 위해 지역주의를 조장하고 악용했기 때문이지 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위에서 본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중선거구제도입은 우리의 현실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문제와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가 될 것이다. 즉, 改善한다고 한 것이 改惡이 되어 오히려 더 큰 갈등과 혼란을 유발할 수도 있다.

본 의원은 지금의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를 혼합한 형태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며, 현재 발생하는 지역주의 문제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이것을 악용하려는 정치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선거구제 개편을 논의함에 앞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가를 인식하고, 지역주의 문제해결을 위한 정치권의 노력과 함께 공천과정에서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선거제도 개편을 위해서는 그 목적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잘 판단해야 한다. 선거제도 개편은 국민의 의사를 정확하게 나타낼 수 있는 제도를 만들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또한 기존의 제도를 바꿀 때에는 어느 정도 검증과정을 거친 후에 해야지, 무작정 바꾸는 것만이 개혁은 아니라고 본다.

또한 문제가 있을 때 제도를 탓하기 보다는 근본적으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봐야 하고, 여야 모두 당리당략을 떠나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