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최대 걸림돌 중의 하나로 여겨졌던 우리측의 `의약품 건강보험 선별등재 방식'(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을 수용키로 합의함에 따라 향후 협상에 `청신호'가 켜졌다.

미국이 지난 2차 본협상 마지막 날 `포지티브' 방식을 수용키로 하고도 공개적으로 반발한 것은 자국의 협상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고도의 협상전략으로 풀이돼 향후 협상 과정에서 양국간 밀고당기기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 미국 `포지티브' 수용 속내는

미국이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을 수용하기로 전격 합의한 것은 `네거티브 리스트 시스템'을 계속 주장할 경우 결국 한국 정부의 의약 개혁정책에 반대하는 모양새로 비칠 수 밖에 없다는 부담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가뜩이나 한국내 한미 FTA 협상 반발여론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개혁반대 움직임으로 비칠 수 있는 완강한 태도를 고집하게 되면 협상 자체에도 유리할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포지티브 정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참여정부의 대표적인 실세 장관이어서 미국의 입장 관철이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현실 인식도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란게 중론이다.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을 양보하되 대신 의약품 분야의 다른 굵직굵직한 현안에 대한 교섭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실리적 계산도 있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게다가 민간보험을 근간으로 하는 미국도 보험회사별로 약값을 지급하는 의약품 목록을 갖고 있는데다 저소득측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공(公)보험인 `메디케이드'도 주(州)정부별로 보험적용을 위한 의약품 목록제를 시행하고 있어 한국의 포지티브 시스템 추진을 반대할 명분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었다.

실제로 미국은 호주와 FTA를 체결하면서 호주의 포지티브 시스템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관련 제도의 절차적 투명성에 관한 조항들만 포함시켰다.

결국 한국의 포지티브 시스템에 대해서만 반대하면 형평성 논란을 자초할 수 있다는 점이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 의약분야 세부 요구 거셀듯

우리측 입장대로 포지티브 시스템이 관철됐지만 넘어야할 산은 많다. 정부가 마련중인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은 `약품 등재신청' → `약제급여평가위원회의 경제성 평가' → `보건복지부 산하 약제급여조정위원회의 최종 결정' 등의 순서를 거친다.

급여평가위원회의 경제성 평가는 의사, 약사, 경제학자 등 순수하게 보건 전문가들만 참여하는 형태지만 약제조정위원회에는 미국 제약회사 관계자들이 이해당사자로 참여할 수 있다.

특히 각 과정마다 제약회사 등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제출과 의견수렴이 보장돼있어 약값 책정은 물론 등재목록 확정 과정에서 미국의 입김이 언제라도 반영될 수 있는 구조다.

따라서 미국은 포지티브 시스템의 모든 과정에 자국 이해당사자들의 참여가 합법적으로 보장되는 장치를 요구할 공산이 크다.

이와 함께 미국은 포지티브 수용의 대가로 ▲ 신약 보호기간중 복제약 허가 금지 ▲ 신약의 안전성.유효성 독점 ▲ 특정 질병 발생시 복제약 강제실시권 제한 등을 강하게 요구할 게 확실하다는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우리 정부가 포지티브 시스템 수용의 `대가'로 입법예고 기간을 60일로 연장하고, 미국 관계자의 위원회 참여를 보장하는 `양보책'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향후 협상에서 자국 다국적 제약회사의 우월적 지위를 확고히 하기 위한 파상공세를 멈추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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