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의 건강보험 개혁 법안이 미국 상원을 통과했다는 소식이 국내 언론에도 비중있게 보도됐다.

이번에 미국 상원을 통과한 건강보험 개혁 법안의 주요 내용은 약 3100만 명에 달하는 미국의 건강보험 미가입자들에게 건강보험 혜택을 확대하고 보험회사들이 가입자의 건강상태를 기준으로 더 높은 보험료를 받거나 가입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것 등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부 주도의 공공보험(public option) 도입 방안은 포함돼 있지 않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나치게 타협을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벌써 20년 전에, 그것도 온 국민과 정치권 어디에서도 어떠한 반대의 목소리도 없이 전국민 건강보험이 달성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미국에서는 그런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에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정치적 명운을 걸어야 했고 미국 전체는 극심한 보·혁 갈등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이렇게 통과된 건강보험 개혁 법안조차도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정부 주도의 공공보험(public option) 도입 방안이 빠졌다.

이것을 보고 기자가 느낀 것은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다 그렇게 하고 있다'는 등의 말이 어떤 주장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기자는 미국의 의료제도라고 생각한다.

사실 미국의 의료제도를 보면 '과연 이 나라가 선진국이 맞는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미국은 우리나라가 지난 197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시작한 공공 의료제도를 아직도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해 있었던 한 사례는 미국 의료제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 병원에 응급환자가 실려왔다. 즉시 응급처치만 제대로 했으면 충분히 살릴 수 있었던 환자였는데 그 환자는 죽고 말았다.

그 이유는 해당 병원의 의사들이 실려 온 응급환자가 자기 병원과 계약관계에 있는 보험회사 고객이 아니라는 이유로 치료할 생각은 안하고 그대로 응급환자를 방치한 것이었다.

즉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확고히 정착돼 있어 모든 국민이 어떤 의료기관을 가든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미국은 의료기관을 이용하려면 그 의료기관과 계약관계에 있는 보험회사 고객이어야 한다.

즉 미국은 의료제도 자체를 시장에 맡겨버린 상태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민영 보험회사와 보험계약을 맺을 형편이 못 되는 수 많은 서민들은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 하고 간단한 수술 한번 하는 데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엄청난 치료비를 물어야 한다.

현재 미국에서는 약 수천만 명이 일체의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런 이유로 미국 교포들 중에는 엄청난 치료비 부담 때문에 미국에서 살다가 병이 나 치료를 받아야 할 때에는 잠시 귀국해 우리나라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사람도 많다.

이런 것들을 볼 때 최소한 의료제도에 관한한 미국이 우리나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 같다.

최근 영리병원 도입을 둘러싸고 정부 부처간 극심한 갈등이 인 적이 있다.

이에 대해 '세계 많은 나라들이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있다'거나 '병원들이 건강보험 환자를 진료하는 것을 법으로 강제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는 등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어느 제도를 도입할지를 우리가 선택할 때 우리가 제일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어느 제도가 인간의 보편적 존엄성에 부합하는지, 어느 제도가 더 많은 국민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제도인지이지 선진국이나 다른 나라들이 채택하고 있는 제도는 무엇인지가 아니다.

투데이코리아 이광효 기자 leekhyo@today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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