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강금실 산문집 '서른의 당신에게'

첫 여성 로펌 대표, 첫 여성 법무부장관, 첫 여성 서울시장 후보 등 '처음'이라는 특정 수식어와 어깨동무하고 걸어온 강금실의 인생행보가 한 권의 책 '서른의 당신에게'(웅진지식하우스)로 나와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주류 정치인에 맞먹는 세인의 관심과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강금실(50)이기에 정관계 활동의 일선에서 물러난 지금에도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이슈가 되고 반향을 일으킬 만한 '권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출간 소식이 알려질 무렵부터 소위 '언론플레이' 내지 '출판플레이'라도 해보자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도 했다.

정작 이 책의 뚜껑이 열리자 여기 저기 쑥덕대던 기우들은 자취를 감췄다. 여기엔 지난날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전형적 보수 영역인 법조계에서 오늘날의 강금실로 서기까지 그녀를 바로 세워 온 인생철학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흔들리는 청춘을 위한 '방향타'

겉으로 보기에 한국 최고의 엘리트 코스에다 성공의 탄탄대로만을 걸어온 듯 보이는 강금실이지만 그녀라고 해서 왜 인생에 갈림길이 없었겠는가. '흔들리는 청춘에게 보내는 강금실의 인생 성찰'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확신없이 흔들리는 '서른의 당신에게' 방향타를 자처했다.

우선 이 책에는 변호사협회신문, 시민과 변호사, 인권시평, 시와 시학, 허스토리 등의 지면을 통해 이미 발표됐던 원고들이 꽤 눈에 띈다. 강금실이 이 책의 서문에 "왜 사냐면 웃지요, 하는 말이 있는데, 왜 글을 쓰냐고 물으면 그냥 쓰고 싶어서라는 말밖에 달리 할 답이 없다"고 집필 동기를 밝힌 것처럼, 그녀는 오래전부터 여러 지면을 통해 글을 쓰고 발표해 왔다.

뜻밖에 법조인으로서의 성찰이 담긴 글 뿐만 아니라 문학, 영화, 음악 등 폭넓은 여타 장르들을 아우르면서 인간의 내면을 읊어내는 유려한 펜촉 앞에 '저자'로서의 강금실의 내공 깊은 면모가 새삼 놀랍다. 이미 김훈의 '칼의 노래'에 대한 감상이나 기형도의 시 비평, 장정일에 대한 변론문 등을 통해 칼끝처럼 명징한 필력과 뜨거운 문학적 감수성을 보여줬던 그녀다.

이 책에는 판사와 변호사 시절 해야 했던 운명적인 선택, 법무부장관 시절의 고뇌 등 공적 역할 뒤에 숨겨졌던 속내, 그리고 개인적이고 낭만적인 주변 사람들과의 따듯한 인연, 고정관념을 깬 인생관 등 강금실의 진짜 모습도 담겨 있다. 한 문장 한 문장마다 어기찬 윤리의식, 세상과 사람살이에 대한 포용력, 약자에 대한 동지 의식, 삶을 조망하는 깊은 시선으로 가득한 글들은 왜 강금실이 언제나처럼 당당하고 매력적인지를 대변한다. 일단 그녀는 참 의연하다.

그녀의 색깔론만 해도 그렇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전에 강금실이 '보라돌이'로 무장하고 나타나 한바탕 이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것을 쉬이 잊지 못할 것이다. 이쯤되면 보라색이 지겨울 법도 하지만 이 책에서 그녀는 여전히 보라색이 제일 좋다고 말한다. 어머님적부터 유전이라나. "선거 때 지긋지긋하게 보라색으로 수난을 겪고서도 끄떡없이 보라색을 두르고 다니니, 아! 아직 사람의 잘못을 뉘우칠 태도가 한참 덜되었다"고 강금실은 자조 섞인 반성도 해보지만 그의 진심은 다른 한켠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색깔전으로까지 지칭됐던 지난 선거전을 이렇게 소신하나로 말끔히 털어버릴 수 있는 인물도 드물리라.

다재다능 경계에 꽃피는 '인간미'

법무부장관직에서 물러나 살풀이를 취미로 한다 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강금실은 사실 전통춤 외에 이철수 선생에게 판화를 배우기도 했고, 클래식 기타, 피리, 장구, 북, 요가, 단학, 재즈댄스, 판소리, 민요, 성악까지 배웠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꼭 필요한 운전면허는 아직도 따지 못했다고 털어 놓는다.

이는 여전히 어느 한 구석은 '어수룩'해 보이는 그녀 특유의 매력이라면 매력과 맞닿아 있다. 지방에 가면 꼭 시골다방에 들러 다방커피를 마신다는 그녀. 클래식 보다는 트로트가 더 좋다는 그녀. 이 책을 읽다보면 지나온 자리가 자리인 만큼 딱딱하고 어려운 사람이었던 그녀에게서 인간 냄새가 폴폴 난다. 인간 강금실을 누이나 언니로 삼고 싶단 생각이 절로 든다.

법무부장관 시절 검사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간 엠티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사랑으로'를 불렀던 이야기, 첫 근무지에서 사소한 학생들 시위사건도 꼭 잡아넣으라는 지시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을 풀어주는 바람에 법원을 발칵 뒤집었던 이야기,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영화, 책에 대한 이야기, 서로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아도 마음으로 흐르는 것이 있었던 친구 향숙이 이야기, 사람들을 만날 때면 작은 선물이라도 꼭 건네는 남산 옥탑방에 사는 친구 황인숙 시인 이야기, 런닝셔츠에 슬리퍼 차림으로 베트남까지 갔던 김정환 선배 이야기 등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특유의 유머스런 감성으로 들려준다.

강금실 특유의 유머라면 지난 2003년 국회 법사위 회의실에서의 발언, "코미디야 코미디, 호호호"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은 사뭇 진지하나 한편으론 풋풋하고 순수한 그녀의 이같은 감성코드와도 일맥상통한다. 너그러우면서도 단호하고, 내향적이면서 외향적이고, 무디면서 예민한 그래서 차가우면서 뜨거운 강금실. 이런 대립항들의 경계가 그녀에게 이율배반적이지 않은 것은 내면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고 가지런한 질서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질서는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비롯된 강금실의 '마음의 닻'이다.

강금실은 오늘도 금을 긋고 벽을 쌓아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긴장된 지점인 '경계'를 슬퍼하며 사람 간의 따듯한 소통이 꽃처럼 피어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녀가 좋아하는 함민복의 시집 표제인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는 소통의 소신에, 도종환의 시구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성찰이 더해진 이 책은 당신의 '마음의 닻'이 되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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