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시장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출신인 김유찬 씨가 21일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공개한 '위증교사' 의혹에 관한 자료와 녹취록은 몇가지 점에서 알맹이가 빠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김씨가 폭로한 내용의 핵심은 첫째, 이 전 시장이 자신의 선거법 위반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김씨에게 법정에서 '위증'할 것을 요구했으며 그 과정에서 김씨를 해외로 도피시키고 둘째, 이 과정에서 이 전 시장이 자신에게 살해위협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 중 김씨를 해외로 도피시켰다는 혐의는 이미 이 전 시장이 당시 재판부로부터 벌금형을 선고받으면서 형 집행이 마무리 된 사안이다. 지난 95년 5월 당시 신한국당 소속 의원이던 이 전 시장의 비서관으로 일하던 김씨는 96년 9월 국민회의 당사에서 “이명박 의원이 총선 때 각종 행사비용 등으로 6억8000만원을 썼고 이중 3800만 원가량의 영수증을 가지고 있다”며 당시 이 의원의 비위사실을 폭로했다. 이 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검찰에 수사를 받게 되자 김씨는 이 의원의 다른 참모로부터 1만8000달러의 도피자금을 받아 홍콩으로 출국했다. 이 의원은 이 과정에서 김씨를 도피시킨 혐의가 밝혀져 벌금형을 선고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씨가 제시한 자료에는 이 전 시장이 자신에게 살해위협을 했다는 증거는 빠져버렸다. 위증과 관련해 김씨가 이 전 시장으로부터 위증 대가로 받았다는 1억 2050만원의 금품 수수 내역서 또한 당시의 메모가 아닌, 기자회견을 위해 급하게 작성한 것으로 보였다. 김씨는 기자회견에서 “이 전 시장의 이광철 비서관한테서 양재동 환승주차장에서 1996년 11월 5500만원을 받고 97년 1월 서초동 카페에서 1000만원을 받았다. 이를 포함해, 이 비서관과 당시 이 전 시장 측근이었던 K씨, J씨 등한테서 위증 대가로 20여 차례에 걸쳐 총 1억 2050만원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전 시장 측의 주호영 비서실장은 “이광철은 이 사건과 관련해 1996년 9월 22일 구속돼 97년 3월 14일 보석으로 석방됐다”며 “이 기간에 이씨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김씨의 주장은 완전한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김씨는 이에 대해 “10년 전 사건으로 금품 수수를 받은 정확한 일자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해명했지만 김씨가 돈을 건네받았다고 말한 K, J씨의 확인서 하나 없이 10년 전의 기억을 재구성(?)한 자료는 충분한 신빙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

김씨는 이날 K, J씨에게 돈을 받았다는 증거로 이들과의 통화내용을 담은 녹취 테이프 일부를 공개했다. 김씨는 이들과 기자회견 바로 전날 통화를 시도해 자신의 증언을 뒷받침해 줄 것을 요구했다. 녹취 테이프에 따르면 K씨는 “사실 (MB쪽으로부터) 압박 많이 받는다”며 김씨를 돕는 게 어렵다는 뜻을 비쳤다. K씨는 이때 “동생도 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씨는 K씨의 집안 여동생이 현재 이 전 시장의 캠프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사람의 부인이라고 설명했다. J씨도 김씨의 부탁에 “여하튼 나도 고민할게”라는 말로 확답을 피했다. 이들을 통해 돈을 받았다는 김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으로선 이들이 유일한 증언자다. 그러나 이들이 결국 입을 닫는다면? 김씨의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일 수밖에 없다.

이날 녹취 테이프, 금품수수 내역서와 함께 김씨가 제시한 자료는 당시 이 전 시장 측이 공판 때마다 위증을 요구하며 건넸다는 '예상 질의서'였다. 김씨는 당시 이 전 시장 측과 직접 만나 답변 내용을 구성했고, 이 질의서 위에 김씨가 나름의 메모를 남겨뒀다고 밝혔다. 변호인 예상 질의서 사본이나 자필 메모 역시 증거능력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김씨는 “상대쪽(이 전 시장 쪽)이 선임한 변호사의 질문 내용이 내게 넘어온다는 자체가 위증 교사를 받았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김씨는 기자회견에 앞서 기자들에게 기자회견문, 금품 수수내역서, 2007 국민승리위원회에 제출한 검증 요청서 사본을 각각 한부씩 돌렸다.

이 중 경선관리위원회에 제출한 검증 요청서에는 96년 선거부정사건 당시 이 전 시장의 위증교사·살해위협 건, 이 전 시장의 자전적 에세이집 '신화는 없다'의 베스트셀러 조작 건, 상암동 랜드마크 빌딩 건립 추진과정에서의 낙찰 방해 건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 외에도 이 전 시장의 범법행위와는 관련이 없는 이 전 시장 개인의 행적과 관련한 내용도 다수 포함돼 있어 검증 대상으로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경선준비위의 이사철 대변인은 “이 전 시장으로 오랫동안 수행한 운전기사를 해고한 사건을 검증해 달라고 하는데 범법행위도 아닌 것을 어떻게 검증하라는 것이냐”며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이 대변인은 또 “만일 김씨의 주장이 허위사실로 밝혀지면 검증위가 직접 고발하지 않고, 당 지도부가 최고위원회를 통해 의결한 뒤, 법률지원단을 구성해 고발조치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시장 캠프 측은 일단 조용히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법적 대응도 당분간 자제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전 시장 캠프의 조해진 특보는 “상황이 워낙 유동적이라 좀 더 기다릴 것”이라며 “지금처럼 자료를 (경선관리위에) 제출하면 이에 반박하는 자료를 제시하는 식의 대응을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시장측은 김씨가 2월 말 출간하기로 예정된 '이명박 리포트'가 당초 2002년 출간하기로 했던 것과 내용상 변화가 있다며 의문을 제기하는 등 혼란한 상황을 수습하고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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