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을 눈 앞에 두고 집 안팎으로 분주하다.

집안에서는 봄맞이 청소와 새단장이 시작됐고, 집밖으로는 봄 기운 쐬러 나들이 인파가 늘어난다.

이럴 때 집 인테리어와 바깥 나들이를 한꺼번에 즐기며 실속을 챙길 수 있는 '보물상자'가 있으니, 서울 중구에 위치한 황학동 중고품시장이다. 일명 '황학동 벼룩시장' 혹은 '황학동 만물시장'으로 유명하다.

황학동 벼룩시장 언제 생겼나

황학동의 지명은 예전 논밭이었던 이곳에 황학(黃鶴)이 날아왔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현재 신당5동 관내에 옛 자연부락의 하나인 백학동이 있어 이에 견줘 생긴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청과시장으로 이름 높았던 황학동에 중고품시장이 들어선 것은 육이오전쟁 이후다. 일사후퇴로 피난 온 월남민들이 청계천변에 판자촌을 짓고 자리를 잡으면서, 마땅한 생계대책이 없었던 이들은 고물을 모아 팔기 시작했다. 이것이 황학동 중고품시장의 시초다.

지난 1970년을 전후해 이곳 주변의 청계천이 복개되고 삼일아파트가 준공되면서 황학동 고물상들은 보다 전문적인 골동품상으로 발전했다. 정부의 경제개발계획과 새마을 운동 등이 맞물리면서 도시, 농촌할 것 없이 낡은 생활 가재도구들이 고물이 돼 이곳 황학동으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사진1=황학동 벼룩시장의 진수 '골동품' 상가.)

이렇게 호황을 누리던 황학동 골동품 시장은 뜻밖에 88서울올림픽과 86아시안게임 유치로 위기를 맞았다. 지난 1980년대 초 이들 국제경기 유치가 결정되면서 정부가 외국인들의 눈을 의식해 열악한 환경 내에 소재한 황학동 골동품점들을 대부분 장안평으로 이전하는 계획을 추진한 것이다. 이로 인해 1983년 대부분의 골동품 고미술상가들이 장안평으로 옮겨가면서, 한때 130여 곳에 달하던 황학동 골동가게들의 수가 20여 군데 안팎으로 대폭 줄어들었고 골동상권도 소실돼 버렸다.

(사진2=故백남준씨의 비디오아트를 떠오리게 하는 황학동 중고 전자상가 모습.)

이를 기점으로 황학동은 골동품시장에서 본격적인 중고품시장으로 탈바꿈했다. 황학동 삼일아파트 1,2층 상가와 아파트 뒷편에는 전자골목, 가구골목, 자동차 부속품골목, 의류골목 등이 대거 들어섰다. 지난 1990년대 황학동은 아파트 상가를 중심으로 한 중고품점과 도로변 노점상의 골동품점이 병존하게 됐다.

'장마전선' 드리운 황학동

그러나 지난 26일 찾은 황학동 벼룩시장은 찾는 발길이 없어 썰렁하기 그지 없었다. 평일인 탓도 있지만, 주말 또한 예전의 북적거림에 비할 바가 못된다.

1차 타격이 지난 1980년대 국제 경기 유치와 연관돼 있었다면, 2차 타격은 다름 아닌 지난 2003년에 본격 시행된 청계천 복원 프로젝트였다.

청계천 고가가 헐리면서 특히 황학동 벼룩시장 쪽 즐비하던 노점들이 들어 설 자리가 없어졌고 급기야 정부가 저소득층 생계대책 차원에서 동대문운동장에 노점 자리까지 마련해 주는 해프닝을 빚었다.

문제는 황학동 벼룩시장이 또 한번 해체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현재 1평 남짓한 상가 내에서 골동품상을 운영하는 이모씨(61)는 황학동에서만 30년을 장사꾼으로 일궈 왔다. 이른 오후 시간에도 불구하고 작은 곤로에 불을 피워 놓은 채 유리창문 안에 모자를 덮고 잠이 든 모습이었다. 그만큼 손님의 발길이 드물다는 것.

(사진3=1평 남짓한 공간에 이씨가 운영중인 골동품 상가)

이씨는 요즘 황학동 장사 경기는 어떠냐는 기자의 물음에 "모름지기 장사는 장사꾼 사이에서 해야 잘되는 법인데 청계천 복원 사업은 장사꾼들을 갈라놔 해체시켰다"면서 "노점들이 다 동대문운동장으로 옮겨가고 여기(황학동 벼룩시장)는 더 장사가 안된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이어 "같은 물건을 취급하면서 여긴 가게 보증금에 월세에 소득세까지 다 내고 있는데 어떻게 정부가 노점을 합법화해서 동대문운동에 버젓이 자리를 마련해 주느냐"고 불만을 하소연했다.

이씨는 또 "동대문운동장 가보면 일주일에 한두번도 아니고 매일장처럼 노점이 더 거창하게 벌여 놨다"면서 "그들 중 상당수가 몇억에서 수십억씩은 갖고 있는 재력가"라고 덧붙였다.

실제 6평 남짓한 공간에 자리 잡은 한 주방용품 중고상가가 치르고 있는 상가임대료가 보증금 5천만원에 월세 170만원 선이었다. 상가 안팎 외형적 허술함에 비하면 실로 큰 액수였다. 이에 비하면 같은 물건을 다루되 아무런 세도 치르지 않는 노점들의 수익률이 높은 건 당연지사.

중고 가구용품상을 운영중인 김모씨(54) 역시 황학동에서 25년 정도 장사를 해왔다. 김씨는 "한창 잘 될때 10명 왔다면 지금은 1명꼴도 안될 만큼 손님이 줄었다"면서 "이 골목 시작부터 저끝까지 100여 상가가 있다면 대부분 권리금만 찾을 수 있어도 다 손털고 나오려 한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김씨는 이어 "여기서 그나마 장사가 되는 건 중고 주방용품 상가인데 왜 그런 줄 아냐"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김씨에 따르면 "경기가 안좋다 보니 가정 주부들조차 거리로 나오면서 손쉽게 식당운영업에 많이 뛰어드는데 뛰어드는 족족 망해서"란다. 워낙에 식당 개업과 폐업이 잦자 중고 주방용품 상가는 덕분에 회전이 된다는 것이다. 이들 주방용품 상가 외 다른 업종 중고상은 월세도 못치러 집집마다 빚들이 수두룩하단다.

김씨는 이와 함께 "이런 와중에 상가건물주들은 월세를 내려주기는 커녕 올려 받으려는 움직임"이라면서 "롯데건설이야 건물 하나 헐면 몇 층짜리가 올라가니 매입하려 들고 상가주들도 그 핑계 대면서 더 박하게 군다"고 하소연했다. 상인들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손님도 줄고 상가임대료도 갈수록 부담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4=최근 롯데캐슬 등으로 황학동에 눈독 들이는 롯데건설과 이에 맞선 황학동 노점들의 대결구도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일반 상가 건물에 입주한 상인들 또한 땅값 상승 분위기에 한몫하는 롯데건설을 그리 곱게 보진 않는 분위기.)

황학동 중고품시장의 터줏대감 격인 이씨와 김씨 이외에도 이날 만난 여러 상인들의 말에 따르면 황학동 시장은 안으로 안으로 곪아가고 있다. 결국 황학동 벼룩시장의 전형을 유지하려면 이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대책이 시급히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중고품시장은 '타임머신'과 '보물상자'

어찌됐든 사연 많고 사정 많은 황학동 벼룩시장 기운 북돋기에 우리 또한 한몫해 보는 건 어떨까.

지하철 2호선 신당역 11번 출구로 나와 청계천을 건너지 않고 오른쪽으로 끼고 돌면 황학동 벼룩시장 영역이다. 북적거림이 싫지 않다면 볼거리 측면에서 주말이 더욱 좋다.

'새 것' 빼고 없는 게 없다는 이곳 시장은 그야말로 '중고품들의 천국'이다. 아주 오래된 골동품부터 최근 전자제품 중고까지 품목은 잡다하며 상품은 즐비하다.

특히 황학동은 호기심 많은 아이들의 교육 현장으로도 손색없다.

(사진5=크기 순서대로 진열된 바이올린이 앙증맞다. 기타와 바이올린이 함께 전시될 수 있는 것도 황학동 벼룩시장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사진6=황학동 중고품시장에서 음향가전 빼놓으면 섭하다.)

사진7=무슨 공구들이 저렇게 많나 싶어 눈길을 뗄 수 없는 한편, 저 안에 사람이 앉아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사진8=최근 황학동 시장의 메인은 중고 주방용품이다. 중고 도매가에 소매 또한 가능해 무척 싼 편이다.)

(사진9=황학동 벼룩시장이라면 충분히 친근하고 낯익은 정경.)

(사진10=몇 년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밀리터리룩의 한 단면을 이곳에서도 볼 수 있다. 정말 오래된 군용 소품들이다.)

(사진11=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상들도 여럿 된다.)

(사진12=황학동 중고품시장에서는 꽤 친근한 아이템 '중고 카메라'점.)

(사진13=청계천변을 따라 중고책방도 꽤 눈에 띈다. 고서적 전문, 어린이전집 전문, 학습서 전문, 잡지 전문 등의 중고책방을 비롯해 일반 중고 책방까지 한번쯤 눈길 가고 손길 가는 책들을 갖추고 있다.)

중고책방들을 지나다 보면 대개 원가의 20~30%선에서 판매금액이 책정돼 있었다. 기자도 한 중고책방에서 매우 깨끗한 상태의 파울로코엘료 소설 '오자하르'(2005년)를 2천원에 구입했다. 어린이 전집을 주로 판매하는 한 중고책방에서는 전집 상자를 뜯지도 않은 채로 쌓아두고 있었다.

황학동 중고카메라점에서 판매하는 카메라들도 타지역 중고카메라점에 비하면 거의 1.5~2배 정도 싸게 책정돼 있었다. 대개 15~20만원 내외인 미놀타사의 x-300 기종의 바디와 표준렌즈 금액을 물으니 10여만원 안쪽이었다. 온라인 카메라 동호회 회원들끼리도 6~7만원선에서 거래되는 하프판 카메라인 올림푸스사의 pen-ee3의 경우도 3만원이면 충분히 구매가능하다.

장식 인테리어 골동품 소품들은 의외로 싸진 않다. 출처를 묻자 대개 수입산이라고 답했다. 무엇보다 가격 메리트가 있는 건 물량공세에서 우위를 점한 주방용품들이었다. 자잘한 그릇, 접시들부터 주방용기 종류는 총 망라돼 있었다.

물론 중고품인 만큼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만나는 물품들은 꼼꼼히 체크해 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 최근 황학동 중고품시장의 기세는 아무래도 한풀 꺾인 모습이다. 그러나 황학동 벼룩시장의 명성에 버금갈 만한 중고품시장은 국내에 아직 없다.

과거와 현재를 공존하는 살아있는 노천박물관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황학동 중고품시장은 굳이 무언가를 사지 않더라도 눈 구경만으로 즐겁다.

산들산들 봄바람에 맞춰 카메라 하나 메고 황학동 벼룩시장 나들이에 나서 보는 건 어떨까.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