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방송국 박경주 대표·전민성 편집장

지난달 10일 발생한 여수 출입국 화재 참사는 이미 대부분 언론의 관심에서 저만큼 비껴났다.

그런 가운데 여전히 이 문제를 주요 현안으로 삼아 중점적으로 취재하고 다루는 언론매체가 있으니, 바로 이주노동자방송국이다.

이 땅의 밑바닥을 함께 일구며 뛰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편견 없이 담아내고 있는 이주노동자방송국은 국내 유일의 이주노동자 전문 언론이다.

월 급여도 없이 순수 활동가로서 언론을 꾸려나가고 있는 이주노동자방송국의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지난달 28일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이주노동자방송국을 찾았다.

지난 26일까지 여수 장례식장에 남아 사망자 가족들과 생존자 인터뷰까지 마무리하고 올라온 전민성(38) 이주노동자방송국 편집장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뒤이어 태국 출신의 파나타(32) 기자가 합세했고, 손꼽히는 예술가인 박경주(39) 대표까지 함께 마주하게 됐다.

6~7평 남짓한 방송국 규모에 그 어떤 물질적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이들이 일궈 나가고 있는 일들은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울 만치 놀라운 소명이다.

[다음은 박경주 대표와 전민성 편집장과의 일문일답 내용]

-이주노동자방송국을 어떻게 꾸리게 됐나.

▲김경주 대표=기존의 이주노동자 관련 기사는 조선일보나 한겨레나 노선이 다를 게 없었다. 다뤄봤자 심층기사는 없고 정부 보도자료나 포토뉴스가 대부분이었다. 이주노동자 관련 문제는 미디어 왜곡이 심각했다. 이주노동자 관련 문화활동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혔다.

그래서 처음에는 게릴라 사이트처럼 열어서 저는 동영상기자를 하고, 전민성 편집장은 기사를 쓰면 되겠다 생각해서 시작했다. 한국 사람들 욕하는 거 한 일년만 웹사이트로 꾸려 보자 싶었는데 너무 커졌다(웃음). 이제는 방송국이 더 잘 커서 이주노동자들이 주체적으로 자기 이야기할 수 있고, 2세들이 투표권을 받는 등의 현재보다 미래에 힘을 실을 수 있는 매체가 됐음 좋겠다.

▲전민성 편집장=박경주 대표는 독일에서 8년간 이방인 삶을 살면서 예술가이자 문화활동가로서의 관련 작업을 계속해 왔다. 그러다가 한국에 들어와 이주노동자 안에서도 독립적인 언론매체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제의를 해 왔다. 저도 외국에서 5년 정도 언론 관련 공부를 하다 들어온 상태였다. 언론이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판단이 강했고, 어떻게든 공부한 것 가지고 사회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던 중에 박 대표는 제 소망에 구체적인 만들어 준 거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방송국은 2005년 5월 18일 개국할 수 있었다. 당시 마땅한 사무실도 없어 박 대표의 방에서 개국했다. 점차 이주노동자와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영상교육, 기사작성교육, 사진교육, 미디어교육을 진행하면서 인력을 여기까지 꾸려왔다.

-재정이 열악해 운영상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사진1=박경주 이주노동자방송국 대표 겸 예술가)
▲김 대표=사무실 운영비가 제일 많이 나간다. 한달에 순수 60~70만원은 드니까. 저희는 월급 받는 사람이 없다. 제가 예술가로 받은 문화예술진흥기금이 사실 여기에 쓰인다. 활동비로 30만원 받는 사람이 두 명 있다. 재정적인 부분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굉장히 고민 많다. 다국어 개편이 전면적으로 이뤄지면 배너를 달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저는 한국사람이 돈 내는 것보단 이주노동자들이 돈을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정부분에서 최소 반은 이주노동자 쪽에서 나와야 한다. 그래야 자기 목소리에 자립성이 생기는 것이다. 문화부에서 돈을 받아서 예쁜 노동자 역할만 할 수는 없지 않나. 외부 사업으로 올 하반기 창작아동동화 시리즈로 5권 정도 지원받아 만들 계획을 하고 있다. 그건 좀 팔리게 만들어 보려 한다(웃음).

-이번 여수 참사를 지켜보며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김 대표=여수 참사를 방화로 단정적으로 기사 나가는 거 보고 우리끼린 다 웃었다. 정부 가 말 그대로 보도자료 흘리는 거다. 라이터라니, 웃기는 이야기다. 한국사회는 믿겠지만 우리는 방화라는 거 안 믿는다. 기사 모니터링을 계속 하고 있었는데, 정부가 '방화다''김모씨가 문제를 많이 일으켰던 인물이다' 이러니까, 그것만 기자들이 드르륵 쓰더라.

방화를 했다면 왜 이 사람이 방화를 하려 했을까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곧 고향에 돌아가야 할 사람이 자기도 살아야 하는데 왜 불을 질렀을까. 처음 여수에 불이 났다 했을 때, 누가 너무 화가 나서 불을 내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내부 일지 같은 것을 거리낌 없이 보여주면서 방화로만 이야기하더라. 내부 일지는 그렇게 보여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독재시대 조작이나 다를 바 없다. 다 뒤집어 쓴 거다. 저는 김씨가 CCTV를 휴지로 가린 것도 심정적으로 CCTV가 싫어서였을 거 같다. 누가 지켜보면서 감시당하고 있는 기분이 좋은가. 김씨는 CCTV 화면을 치약으로 바른 적도 있었다고 했다.

저는 일전에 괴소문 돈 뚝방 성폭행 관련 기사 보고 놀랐다. 기자는 추측으로 기사를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런 소문이 도는데 외국인이 성폭행 했다더라. 기자는 특종이라고 썼겠지만 나머지 이주민들은 어떤 선입견을 지고 살아야 하나. 그런 걸 막고 대변하기 위해서 우리가 필요하다.

이번 여수 참사도 우리는 너무 열악해서 내려갈까 말까 이틀간 망설였는데 정부가 방화라고 기자회견 하고나서 언론들이 아무생각 없이 받아쓰는 것 보고 분노해 내려갔다. 저는 여기서 모니터하고 전 편집장이 지난 12일부터 26일까지 현장 취재했다.

▲전 편집장=보호소 시설은 그간 숱한 인권침해로 여러 차례 지적돼 왔다. 특히 여수 출입국은 보고된 인권 침해사례가 많이 있었다. 지난 2005년 여름에도 한 이주노동자의 다리 한쪽에 괴사가 있었는데 8개월간 방치해 두 다리가 모두 섞어 잘라낸 적이 있다.

여수 출입국은 지난 2005년에 지은 신축건물이다. 그런데 화재 대비 시설이 전혀 갖춰 지지 않았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시공 설계 자체부터 인권 침해 사례다. 사람의 생명을 얼마나 경시하는지, 불이 났는데도 단지 도망가는 걸 막기 위해 문을 안 열어줬다는 것 또한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생존한 이주노동자들이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와중에도 수갑을 채웠다. 이를 중국대사가 방문해서 항의하고 나서야 풀어줬다. 생존자들 대부분 소방관이 오기 전까지의 아수라장을 생생하게 전율하면서 정신적 공황 상태였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외상 치료만 마치고 이주노동자들을 얼마 지나지 않아 청주 보호소로 보내버렸다.

그리고 어제(27일) 생존자 중 18명을 출국시켜 버렸다. 그들이 이번 사건의 최대 증인인데 사건을 빨리 무마해 일단락 지으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일반적으로 여권, 체불임금 해결 등의 절차를 거치면 훨씬 오래 걸린다. 이번에 참사당한 우즈베키스탄 이주노동자는 1년간이나 출입국 보호소에 있었다. 임금이 몇천만원 체불돼 있었으니.

이주노동자 단속 추방 정책이 사람을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대하는지 그것을 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인권이 유린되는지에 대해 정책적 개선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고로 분명 제고되어야 할 문제이다.

-관련 정계 혹은 관계와는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이뤄지고 있나.

▲전 편집장=지난 2005년 고용화재 실시하면서 노동허가재 상재를 위해 민노당의 단병호 의원과 소통한 바 있다. 그러나 발의 인원 부족으로 결국 흐지부지됐고, 노회찬 의원으로 담당이 바뀌었다. 법사위 대정부 질의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 노회찬 의원 질문하는 것을 봤다. 소통이 잘 되고 있는 것 같진 않다.

-불법체류자 단속은 현실적이지 못한데.

(사진2=전민성 이주노동자방송국 편집장)
▲전 편집장=실은 현실적이지 못한 불법체류자 단속은 노동권 권리 박탈이라든가 취약 임금이라든가 노동권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다. 산업연수생 폐지도 아직 안됐고 고용허가제도 합법 테두리 안에 뒀지만 현실적이지 못하다.

처음 이주노동자들이 입국할 때 '이런 일을 할 것이다' 했는데, 다른 일을 시키는 상황일 때, 언어 소통 문제도 심각하다 보니 이탈자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회사를 바꿀 경우 입국 당시의 지정된 사업주 허가가 아니기 때문에 합법으로 들어와도 미등록으로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다. 국내 40여만명의 이주노동자 가운데 절반 가량이 불법체류자라는 것은 그만큼 관련법이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다국어 사이트 개설 이야기를 들었다.

▲김 대표=영어, 태국어, 네팔어, 중국어, 러시아어, 파키스탄어, 한국어 사이트로 각각 운영할 방침이다. 한국어는 현재 운영되고 있고 영어, 태국어, 네팔어는 다음달부터 시범운영 들어가서 7월 즈음엔 정상 가동할 예정이다. 한국말 가능한 이주노동자 편집장을 이미 찾았고 관련 미디어 교육이 중요하다. 이주노동자 시민이 주체가 돼서 다국어가 열리는 건 처음이다. 외국에서도 인터넷 대안언론으로 관심이 많아 문의들이 온다.

-제5대 인터넷기자협회 부회장에 지명됐다. 소감은.

▲전 편집장=이번에 선출된 이준희 인터넷기자협회 회장이 세계인터넷기자협회를 구축하는데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이주노동자방송국도 다국어 사이트를 준비 중이어서 다국적 차원에서 함께 갈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인터넷기자협회에도 여러 가지 소수자의 목소리를 반영하는데 한 몫 할 수 있었음 좋겠다.

-철저한 소명 없이는 견뎌 내기 힘든 일일 것 같다.

▲김 대표=이런 일은 심리적 부담감이 크다. 내가 벌여 놓은 것에 대한 사회적 책임감이 커서 접는다 해도 어깨가 무겁다. 저도 너무 너무 힘든데 책임감으로 버티고 있다. 이것을 시작한 사람이 이 일이 어떤 일인지 잘 아니까. 이게 자리 잡고 그 안에서 잘 굴러갈 수 있을 때까지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전 편집장=자신이 이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면 힘들다. 돈도 안 되고. 이주노동자 공동체를 취재해 언론을 통해 기사가 나가면 “이런 일을 하는 방송국도 있구나” 하시면서 “그런 정신 계속 가졌으면 좋겠다” 좋게 생각해 주시는 분들 이야기 들으면 힘이 난다. 언론으로서 소수자의 목소리를 계속 담을 수 있는 매체가 되어야겠다는 초심 생각이 많이 난다.

-이주노동자방송국의 내일은.

▲전 편집장=이주노동자방송국의 모토가 국경 없는 네트워크 형성이다. 외국 이주노동자들의 소식도 받아서 이주노동자들이 각 나라에서 처한 여러 어려움들을 공유할 수 있었으면 한다. 각 나라 이주노동자들의 권리 향상과 그들의 소통을 매개할 수 있는 진정한 미디어로 성장할 수 있길 바란다.

▲김 대표=타이틀은 이주노동자 방송국이지만 이주노동자만을 위한 방송국은 아니다. 이주민과 내국인의 문제는 이주민만이 풀 수 없는 문제다. 한국어 사이트는 그래서 필요하다. 한국 사회 안에서 작지만 굉장히 소중한 역할 계속할 거다. 이주민 사회와 내국인 사회가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그 사회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나중에 거대한 방송이 되지 않더라도 충분히 의미있다.


◆파나타(32) 이주노동방송국 기자 미니 인터뷰

태국출신 파나타(32)씨는 한국에 온지 5년째 접어든다. 한국남자와의 국제결혼이 그녀의 입국 사유였다. 물론 현재 한국남자와 결혼해 잘 살고 있다. 남편은 어떤 사람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남편은 우리 큰 아들이에요”라고 농을 던질 정도.

파나타씨가 이주노동방송국과 인연을 맺은 건 지난 2005년 10월 영상교육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그녀는 “제가 태국에 있을 때부터 영상 편집에 관심이 많았다”면서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여기 와서 영상 촬영과 편집을 배워 이제는 혼자 할 수 있다”고 수줍은 듯 자랑했다.

파나타씨는 이주여성긴급전화(1577-1366) 태국어 전담 상담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주여성긴급전화는 몽골, 중국, 러시아, 영어, 베트남어, 태국어, 한국어 등으로 상담가능 하단다.

파나타씨에게 상담하면서 어떤 사연을 상담할 때 가장 힘드냐고 물었다. 그녀는 “저는 운이 좋아 제 신랑은 좋은 사람이지만 다른 태국인들은 나쁜 사람도 많이 만났다”면서 “우리 사무실은 상담 위주여서 이혼 증거와 증인이 없으면 재판과정에 톤이 낮을 수밖에 없다. 다른 상담소 보내면 변호사비 몇 백을 내야 한다”면서 안타까워했다.

파나타씨는 이번 다국어 사이트 개설 과정에 태국어 사이트를 만드는 데에 컴퓨터 기기도 협찬할 정도로 열성이다. 이주노동자방송국 일이 어떠냐는 물음에 파나타씨는 “일은 재미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라면서 거침없는 답을 줬다.

이제는 한국인으로 이주노동자들을 돕고 있는 파타타씨의 내일도 그녀의 열성적 활동만큼이나 밝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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