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이전에 인간적인 따뜻함을 보여야 존경받는 판사가 된다

▲정우택 논설위원
[투데이코리아=정우택 논설위원] 아침 신문에는 황당한 얘기가 일제히 보도됐다. 재판도중 39살 먹은 판사가 69살의 노인에게 “어디서 버릇없이 툭 튀어 나오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기가 막히고 말문이 막히는 말이다. 도대체 판사가 뭐 길래 할아버지 벌되는 노인에게 반말로 버릇없다는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런 말을 할 정도면 어떤 마음으로, 얼마나 군림하면서 거만한 자세로 재판을 하는지 짐작이 간다. 이 발언은 할아버지에 대한 모독만이 아니다. 국민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판사라는 권위적 잣대를 이용해 사람을 아주 우습게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A 노인이 재판을 받던 중 허락 없이 앞으로 나와 발언을 한게 판사의 눈에는 버릇없이 군 것으로 보인 것이다. 노인은 허락을 받고 발언을 하는지 뭐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그냥 자기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말을 했다고 했다. 판사가 한 말은 놀라웠다.

판사의 입장에서 보면 노인은 분명 버릇이 없었다. 판사 앞에서 허락도 없이 누가 말을 한단 말인가? 권위주의에 꽉 차있으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이보다 더한 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버르장머리 없는 늙은이야”하고 소리 지르지 않은 것을 고맙게 여겨야 할지도 모른다.

판사가 뭔가? 양심과 법에 판결을 하지만 재판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볼 마음의 여유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특히 재판을 받는 사람이 70세에 가까운 노인이라면 노인의 입장을 한번쯤 생각할 수도 있어야 한다. 법 이전에 70살 노인의 인생을, 삶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을 이런 식으로 하면 판사가 필요 없다. 공소 사실과 양측 변호인의 말, 당사자의 주장과 증언을 모두 컴퓨터에 집어넣고 판결을 부탁하면 된다. 아주 공정하게 재판을 해줄 것이다. 같은 전교조원를 재판하는 데 한 판사는 잘못이 없다고 하고, 또 한 판사는 잘못이 있다고 하는 이런 이상한 판결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판사는 판사 이전에 인간이어야 한다. 판사 이전에 누군가의 자식이고, 누군가의 남편이고, 누군가의 부모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재판을 하더라도 따뜻한 마음으로 재판을 할 수 있다. 그래야 최소한 노인이 허락 없이 말을 했을 때 버릇없이 없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허락을 받고 말씀하세요.” 이렇게 나와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법원이나 검찰에 다녀온 사람들이 모욕적인 취급을 당했다고 말하는 것을 흔히 본다. 법을 사랑하고, 인권을 지켜줘야 할 기관에서 오히려 모욕을 당한다는 것은 우리 사법제도가 아직도 일제의 잔재인 권위주의가 많이 남아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재판은 단지 잘 잘못만 가려주는 것이 아니다. 화해도 시키고, 인간적인 따뜻함도 보여주고, 못된 사람을 바른 사람으로 바로 잡아주는 게 판사가 할 일이다. 하지만 "버릇없는 노인사건"은 우리의 판사들이 이런 일과는 아직도 멀었다는 것을 그대로 말해주는 것이다.

물론 판사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재판을 냉철하게 하면서도 인간적인 정도 보이고, 따뜻함도 보이고, 덕이 넘치는 판사들도 많다. 법으로 엄하게 다스리지만 마음으로 감싸주는 판사도 있다. 그래서 이번 일은 수 천명 가운데 한명이 저지른 말실수로 치부할 수도 있다.

이유가 뭐든 70살이 다된 노인에게 40살도 안된 판사가 버릇이 없다고 내밷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 노인이 판사에게 욕을 하고, 멱살을 잡았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잘못이 있으면 정상적인 말로 제지하면 된다.

법원은 판사들이 재판을 하는 과정에서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교육을 시켜야 한다. 아무리 죄인이라고 하더라도 인권은 있기 때문에 반말 하지 말고, 권위적인 자세를 취하지 말도록, 자세를 낮추도록 내부적인 지도가 있어야 한다.

솔직히 재판 받는 사람들 앞에서 권위적인 모습으로, 반말로 말을 한다고 해서 판사의 권의가 올라가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더 반감만 생기고 욕만 먹는다. “내가 겸손할 때 오히려 존경받고, 나 자신이 높아진다.” 는 말을 판사들이 달달 외우게 시키고, 실천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우택 논설위원 jemed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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