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소득 양극화 정도가 미국을 제외한 주요 선진국들보다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 같은 '소득 쏠림', '중산층 축소' 현상의 근본 원인으로 외환위기 이후 경기 침체와 성장률 하락을 지목하며 분배구조 개선 보다는 우선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 소득양극화 영국.일본.독일보다 심해

소득 양극화란 중간 소득 계층이 줄어들면서 소득 분포가 양 극단으로 쏠리는 현상을 말한다.

17일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소득양극화의 현황과 원인'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4년 현재 한국의 ER지수(소득 5분위별, 전 가구 기준)는 0.0665로 미국(0.0833)보다는 낮았지만 미국과 함께 대표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영국(0.0653)이나 인접 아시아 국가인 일본(0.0507)을 웃돌았다.
노르딕 모델의 스웨덴(0.0563)과 유럽대륙 모델의 프랑스(0.0434), 독일(0.0474) 등 상대적으로 복지와 분배를 강조하는 유럽국과의 격차는 더욱 컸다.
ER(Esteban & Ray) 지수는 계층 간 소득격차를 계층의 비중으로 가중 평균한 값으로, 소득 양극화 정도를 측정하는데 활용되며 높을수록 양극화가 심하다는 뜻이다.

각 나라의 1인당 소득(구매력 기준)이 1만5천 달러에 이른 시점을 기준으로 비교해도 한국(2000년 0.0562)은 일본(1987년 0.0363)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지난 84년 이후 우리나라 ER지수(소득 10분위별, 도시근로자 기준)는 93년 0.018로 최저치를 기록한 뒤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0.021까지 급등했다. 지수는 2000~2001년 다소 낮아졌으나 2002년부터 다시 완만하게 상승하고 있다.

또 다른 양극화 지수인 울프슨(Wolfson)지수 역시 비슷한 추이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소득 양극화는 곧 중산층 축소로 이어져 97년 64.8%였던 중산층 비중이 지난해 59.5%로 8년 동안 5.3%포인트나 낮아졌다.
◇ 소득불균등 지수는 양호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소득 불균등 정도는 아직 심각한 수준이 아닌 것으로 조사됐다.

'소득 불균등'은 계층 간 소득 분포가 고르지 못한 상태를 말하며, 소득 양극화가 심각하다고 반드시 소득 불균등 정도까지 심한 것은 아니다.

1인당 국민소득 세계 1~30위 국가의 소득 5분위 배율을 토대로 소득 균등 정도를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13위를 기록했다. 소득 수준(28위)에 비해 상대적으로 분배구조가 평등한 셈이다.

우리나라의 소득불균등도(소득 5분위 배율)는 5.03으로 30개국 평균인 6.37을 크게 밑돌았다. 우리나라 보다 더 낮은 나라는 일본(3.4), 스웨덴(4.0), 노르웨이(3.9) 등 정도였다.

전 가구 기준 지니계수 역시 우리나라는 0.35로 일본(0.31) 보다는 높지만 미국(0.46), 영국(0.38), 호주(0.44) 보다 낮았다.

그러나 소득 5분위 배율이나 지니계수 등 소득 불균등 지수도 양극화 지수와 마찬가지로 외환위기 직후 급등한 뒤 안정세를 보이다 2003년 이후 다시 높아지고 있다.
◇ 성장저하, 경제 선순환 단절이 양극화 원인

연구소는 실증 분석을 통해 우리나라 소득 양극화의 주요 원인으로 ▲경제 성장률 하락 ▲ 수출과 내수 간 성장률 격차 확대 ▲ 비정규직 및 자영업자 비중 확대를 비롯한 노동시장 변화 등을 지목했다.

외환위기 이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급격한 시장지향형 금융시스템 도입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를 키우고 실직자를 양산해 일정 부분 양극화를 부추긴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수출 증가가 투자와 고용 확대를 거쳐 소비 확대로 이어지는 경제의 선순환 고리가 외환위기 이후 끊어진 사실이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됐다.

외환위기 이후 작년까지 수출은 연평균 11.6% 늘어난 반면 내수는 오히려 0.02% 감소해 수출과 내수의 상관관계는 70~97년 0.98에서 98~2005년 -0.36까지 낮아졌다.

이는 수출이 부품.설비의 수입의존도가 높은 IT산업 위주로 재편되면서 수출 호조가 국내 부가가치나 고용 창출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 성장률 1%P 높아지면 양극화 0.57% 개선

연구소는 성장을 통해 좋은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것만이 중산층을 복원하고 소득 양극화를 막는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작년을 기준으로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추가 상승할 경우 소득 양극화 지수(ER지수)는 0.57% 낮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성장 잠재력 회복과 고용 확대를 위해 정부는 노후불안, 국민연금 고갈 우려, 지나친 사교육비 부담 등 중산층의 소비 불안 요소를 해소하고 기업의 투자와 창업을 독려하는 한편 교육훈련과 직업중개 등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ALMP)'을 펼쳐야 한다고 연구소는 조언했다.

또 저소득층이 빈곤을 대물림하지 않도록 공교육 강화 등을 통해 평등한 교육 기회를 보장하고, 재정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사회 복지 지출 규모와 복지 행정 인프라를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구소는 보고서에서 "현재 우리나라가 당면한 문제는 소득 불균등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소득 양극화가 계속 심해지는 것"이라며 "따라서 정책의 초점을 소득 이전을 통한 분배 개선 보다는 성장을 통한 중산층 복원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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