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즈음에’에 대해서 이렇게 풀었다

▲연예칼럼니스트 구창환
[투데이코리아=구창환의 연예칼럼]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안녕하신지요. 처음 보내드린 곡이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였습니다. 공감하시는지요. 음... 누구나 스스로의 나이에 대한 무게는 스스로 감당해 내면서 지냅니다.

10대 때는 거울처럼 지내지요. 자꾸 비춰보고, 흉내내고, 선생님 부모님 또 친구들을... 그러다 20대 때쯤 되면 뭔가 스스로 찾기 위해 좌충우돌 부대끼면서 그러구 지냅니다. 가능성도 있고 주관적이든 일반적이든 객관적이든 나름대로 기대도 있고 그렇게들 지내지요.

자신감은 있어서 일은 막 벌리는데 마무리를 못해서 다치기도 하고 아픔도 간직하게 되고 그럽니다.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서 유리처럼 지내지요. 자극이 오면 튕겨내버리든가 스스로 깨어지든가 그러면서 아픔 같은 것들이 자꾸 생겨나고 또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면 더 아프기 싫어서 조금씩 비켜나가죠. 피해가고 일정 부분 포기하고 일정 부분 인정하고 그러면서 지내다 보면 나이에 'ㄴ'자 붙습니다.

서른이지요. 뭐 그때쯤 되면 스스로의 한계도 인정해야 되고 주변에 일어나는 일도 뭐 그렇게 재미있거나 신기하거나 그렇지 못합니다."

김광석은 콘서트장에서 '서른 즈음에'에 대해서 이렇게 풀어주었다. 우리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노래로 풀어주던 가수였다. 정열적으로 혼신을 다해 노래를 부르는 김광석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관객들은 많이 있을 것이다.

그의 얘기 속에서 웃고,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때론 눈물을 머금는 관객들이었다. 친한 형과 포장마차에서 소줏잔을 기울이며 나누는 인생이야기였고 오래동안 함께 했던 친구와 함께 떠나는 가을 여행이었다.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얘기 속에서 무엇을 느끼는지 상관하지 않았다. 김광석은 그러했다.

몇 년 전부터 걸그룹과 아이돌들이 대중문화를 이끌어왔다고 할 수 있다. 텔레비전을 켜면 나오는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들은 화려한 영상들이 함께 해서 우리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있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나와서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고 노래방에 가서 부르는 노래들은 아직까지 90년대에 멈추어있다. 우리들의 20대 시절을 함께 하던 문화의 아이콘은 김광석이었던 것이다.

김광석은 민중가요를 부르던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서 시작하여 '동물원'에 참여하면서 대중들과 만나게 된다. 그가 불렀던 '거리에서' 라는 곡은 가수 김광석이라는 이름은 모르고 부르는 사람이 많았을 정도였다.

특히,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에서의 가창력은 그의 가능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동물원은 그의 음악적 욕심을 채워주지 못했다.

전업가수를 거부했던 동물원을 떠나서 솔로가수로 데뷔한 후 그의 첫 번째 앨범은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자작곡들이 많았지만 김광석 자신의 색깔을 내지는 못했다는 평이었다. '기다려줘' '너에게' 등의 곡이 기억될 정도이다.

김광석이란 이름이 알려진 것은 2집의 '사랑했지만'이다. 이 노래는 가요차트에까지 진입할 정도로 인기곡이 되었고 그의 이름 또한 대중들에게 자리 잡았다.

'나의노래'가 실린 3집, '일어나'가 담긴 4집, 그리고 '다시 부르기I, II'를 통해 인기 가수로서 확고한 위치를 자리잡아간다. '다시 부르기'는 가요계에서 묻혀있던 주옥같은 노래를 다시 세상에 알리는 작업으로, 자신이 예전에 즐겨 부르던 노래 대부분이었다.

여러 장의 앨범과 주옥같은 노래는 주로 콘서트에서 전달되었다. 가끔 텔레비젼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그가 가장 애정을 쏟았던 건 콘서트였다. 1989년 10월에 시작한 콘서트는 1995년 8월에 1,000회를 맞이했다. 그의 이런 열정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은 소극장 콘서트를 하나의 문화로 정착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대중의 편안한 아저씨로 지내던 1996년 어느 날, 갑작스런 '김광석 자살'이라는 비보가 전해졌고 이제 그의 노래는 몇 장의 남겨진 앨범에서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2000년 9월, 폭발적인 관객동원으로 흥행에 성공한 히트작 '공동경비구역 JSA' 영화음악에 그의 '부치지 못한 편지'와 '이등병의 편지'가 삽입되면서 김광석은 없지만 그의 노래가 우리와 함께 했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북측 병사 송강호의 영화대사 “갸는 와 그리 빨리 죽었다냐?”는 송강호 뿐만 아니라 그를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의 외침이었다.

영화감독 박찬욱은 김광석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 했다.
“ 김광석, 나와 같은 학번이다. 만난 적은 없고, '공동경비구역 JSA' 음악을 만드느라 그의 노래들을 오백번쯤 들었을 뿐이다. 그 영화의 전투 장면에서 '부치지 않은 편지'를 부르는 김광석의 목소리는, 남북 병사들의 총성, 폭음, 고함 소리에 맞써 싸워 끝내 이기고 있다. 그것은 선동보다는 격려의 음악, 감상이 아닌 위로의 노래였으니, 그때는 몰랐는데, 김광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우리는 그가 있어서 80년대를 버텨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故) 김광석. 안타깝게도 나는 그의 공연을 한 번도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적이 없다. 창피한 고백이지만, 그가 1000회 이상의 콘서트를 하며 초대를 했었지만 나는 그 곳에 한 번도 가지를 못했다. 하지만 나의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김광석의 '나의 노래'는 어디를 가나 언제나 나와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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