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을 '도박 공화국'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던 게임장 경품용 상품권제가 시작부터 특정 업체가 기획하고 문화관광부가 연출한 합작품이었다는 의혹이 속속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상품권 발행사 선정은 물론 상품권제 도입부터 관련 정책 결정 과정까지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상품권제, 시작부터 특정사가 기획'(?) =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2002년 2월 최초 도입된 경품용 상품권제가 태생부터 특정 업체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주장이다.

문화부측은 중국제 인형 등 조잡한 경품 유통과 환전 등으로 이용자 피해가 늘고 사행성이 심해져 건전한 소비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상품권제 도입이 불가피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게임장 업주들의 모임인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한컴산) 고위 관계자 등에 따르면 게임업체인 A사가 상품권으로 돈을 벌기 위해 게임장에서 상품권을 쓰게 한다는 아이디어를 내놓고 도입 과정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A사 임원을 겸임하고 있던 당시 한컴산 임원이 문화부 실무자와 거의 매일 강남 모처에서 만나 상품권제 초안을 만들었고 이것이 그대로 시행됐다"고 주장했다.

또 "A사는 제도 도입 이후 상품권을 장당 4천700∼4천800원에 게임장 업주들에게 판매해 인쇄비 50원 가량을 제한 나머지를 모두 가져가 많은 돈을 벌었다.
수천억원, 수조원을 벌었다는 소문이 업계에 파다할 정도였다"고 당시의 사정을 전했다.

실제로 이 업체는 그해 2월 상품권제 시작과 동시에 상품권 사업에 뛰어들었고 경영실적도 2002년 매출액 86억원, 순손실 81억원에서 2003년 매출액 216억원, 순이익 9억원, 2004년 매출액 373억원, 순이익 8억원으로 상당히 호전됐다.

한 게임업체 임원도 "다른 업체들이 경품용 상품권제에 확신이 없어 뛰어들지 않았을 때 A사가 가장 먼저 시장에 진입해 큰 이익을 봤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A사 K대표는 "상품권제 도입 당시 경품으로 지급할 수 있는 상품권은 도서상품권, 문화상품권, 호텔이용권이었으나 우리는 당시 경품용이 아닌 일반 판매용 상품권만 판매했다"며 "우리가 상품권제 도입을 위해 로비를 했다면 경품용 상품권 종류에서 우리가 빠졌을 수 있겠느냐"며 반박했다.

그러나 A사가 중견 게임업체로서 게임업계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갖고 문화부와도 일상적으로 접촉하고 있었음을 감안하면 일반 상품권 전문업체 등과 달리 게임업체와 상품권업체를 겸하고 있는 A사가 상품권제 도입에서 모종의 역할을 했을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증제도 A사 작품' = 작년 3월 시행된 상품권 인증제도 A사의 주도 아래 도입됐다는 정황이 적지 않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2004년 4월께 문화부가 A사와 밀접한 인사들을 모아 상품권에 대한 업계 의견을 수렴하는 모임을 열었고 이 자리에서 상품권 인증제 도입 방침이 마련됐다"고 밝혔다.

한컴산 고위 관계자도 "당시 A사가 경품용 상품권 시장을 주도해 떼돈을 벌다 딱지 상품권이 100여개나 난립하면서 상품권 가격이 장당 2천원대까지 떨어져 타격을 받자 인증제를 구상했다"고 말해 A사 주도설을 뒷받침했다.

A사 상품권을 사갔다 값싼 딱지 상품권으로 바꾸려는 게임장들로부터 환불 요청이 밀려들자 A사가 인증제를 도입해 딱지 상품권들을 몰아내려는 구상을 내놓았다는 것.

전직 임원 등을 통해 A사와 밀접한 관계에 있던 한컴산도 2004년 8월 상품권 인증제 초안을 문화부에 제출하고 시행을 촉구하는 등 A사의 인증제 구상을 지원했다고 이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또 이 과정에서 A사가 2002년 상품권제 도입 때와 마찬가지로 문화부 간부, 실무자와 긴밀한 관계를 십분 활용했다는 것이다.

반면 A사 K대표는 "우리 회사는 작년 들어 상품권 가맹점이 7천개를 넘어서는 등 자본, 사업능력 등 모든 부분에서 타 업체보다 우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로비를 할 필요가 없었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K대표가 2003년 2월부터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이 인증제 실시를 발표하기 불과 9일 전까지 개발원 이사직에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A사가 이번에도 정책 결정 과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A사는 실제로 인증제를 통해 발행사로 선정됐다 허위자료 제출 등의 이유로 나머지 20개 업체와 함께 모두 선정 취소된 뒤 작년 8월부터 실시된 지정제에서도 6개 업체와 함께 가장 먼저 재선정됐다.

◇정치권 로비 있었나 = A사가 자사 이익을 문화부를 통해 관철시키기 위해 정치권을 끌어들였다는 주장도 게임업계에서 흘러 나오고 있다.

한 게임업체 임원은 "인증제 도입 과정에서 문화부 간부가 피할 수 없는 엄청난 외압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정치권 로비가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해 업계에서는 여권 인사, 동향 출신 정치인 등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A사 임원을 지낸 한컴산 전 임원이 상품권 발행사들로부터 돈을 받아 정치권 등에 로비를 한 혐의를 받고 있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검찰도 여권 인사 로비설 등을 적극 수사한다는 방침이어서 수사 결과에 따라 A사를 둘러싼 많은 의혹의 사실 여부가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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