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과 탐욕의 利己主義는 화합과 상생의 걸림돌

▲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지난 3월 26일은 ‘민족의 영웅(英雄)’ 안중근(安重根, 1879~1910) 의사가 서른두 살 젊은 나이로 순국한 지 112년 된 날이었다.

또 일제 강점기 청산리 전투와 봉오동 전투 등 무력 투쟁의 구심점 역할을 한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가 경술국치(庚戌國恥) 이듬해 중국 서간도(西間島)의 옥수수밭에 설립된 지 올해로 110주년을 맞았다.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 1867~1932) 6형제와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 1858~1932), 백하(白下) 김대락(金大洛, 1845~1914), 석오(石吾) 이동녕(李東寧, 1869~1940) 등 이른바 혁신 유림(儒林)들이 대거 신흥무관학교 설립과 운영에 참여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재산과 목숨, 자식 등 모든 것을 희생한 위대한 선각자(先覺者)요 투사(鬪士)들의 대서사(大敍事)였다.

이런 선조들의 피땀 어린 희생(犧牲)과 분투(奮鬪)가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과연 선열(先烈)들의 희생과 기대에 걸맞은 사회와 국가를 영위하고 있는가.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권을 비롯해 행정 사법 공기업 등 각계 지도급 인사와 공직자 상당수의 행태는 실망감을 넘어 분노를 일으키게 한다.

문재인 정부의 공정거래위원장을 거쳐 청와대에서 ‘임대차 3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전월세신고제)을 주도한 김상조 전 정책실장은 법 통과 하루 전인 작년 7월 서울 청담동 자기 소유 아파트의 전세 보증금을 상한선의 3배인 14%(1억 2000만원)나 올려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김 전 실장은 살고 있는 서울 성동구 금호동 아파트 전세 가격이 올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예금 14억 여원을 보유하는 등 자금 여력이 충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 전 실장은 임대차법 부작용으로 전세난이 일어나자 “불편하더라도 조금만 기다려 달라” “집값이 안정될 것”이라고 했었다.

세입자 보호를 명분으로 전·월세 인상률 상한선을 5%로 제한하는 임대차법을 대표 발의했던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법 통과 한 달 전 자기 소유 아파트 임대료를 9% 가량 인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반 국민은 전셋값 못 올리게 막아 전세 구하기도 힘들게 만들더니 자신들은 이득을 취했다.

차관급인 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은 세종시 연서면 스마트국가산업단지와 인접한 간선급행버스체제(BRT)역 인근 노른자위 땅을 사들여 투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송병기 울산시 전 경제부시장도 교통건설국장 재임 시절 매입한 땅 앞에 아파트·도로 건설 사업계획을 승인, 아내와 함께 3억 6000만원의 시세차익을 거둔 것으로 확인됐다.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는 2012년 세종시 국회의원에 당선된 직후 세종시 전동면 일대 농지를 1억 3860만원에 사들여 3년 뒤 농지 일부가 대지로 전환됐고, 그 땅값이 4배 가까이 올랐다.

당 대표 시절인 2019년 한국도로공사는 이 땅에서 5km 떨어진 곳에 서울~세종간 고속도로 나들목(연기 IC)을 만들기로 했다. 주민들이 ‘이해찬 나들목’이라 부르는 이것을 설치하느라 전체 공사비도 4000억원 늘어났다는 얘기다. 그는 ‘LH 땅 투기의혹 사태’와 관련해 “위는 맑아지기 시작했는데 아직 바닥에는 잘못된 관행이 많이 남아있다”며 “그것까지 고치려면 재집권해야 한다”고 했다.

이른바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로 촉발된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의혹 사례가 가히 전국적으로 연일 줄을 잇고 있다.

‘지분 쪼개기’ 땅 구입 등으로 투기 의혹을 받는 여권의 국회의원·지방자치 단체장만 10명이 넘고, 여기에 기초·광역 지방의원과 각급 고위 공무원 공기업 간부 등을 포함하면 그 숫자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이런 위선(僞善)과 ‘내로남불‘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특히 사회 지도층인 고위 공직자의 탐욕(貪慾)과 이기주의(利己主義)는 국가와 사회의 화합(和合)과 상생(相生)을 해치는 중차대한 공공선(公共善) 파괴행위다.

김조원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지난해 8월 다주택 논란으로 청와대를 떠나며 ’직(職) 대신 집을 택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역시 지난해 8월 서울 서초와 충북 청주에 보유한 아파트 중 청주 아파트를 팔기로 하면서 ’똘똘한 한 채‘ 논란을 빚었다.

서울시 재건축 사업과 관련해 억대 뇌물을 챙긴 혐의로 징역형을 복역한 김명수 전 서울시의회 의장(민주당)이 출소 후 지난 해 5월 중견 건설사인 서해종합건설 고문으로 채용된 것으로 최근 밝혀져 문재인 정부와 여권의 ‘부동산 적폐청산’이 거꾸로 가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김진욱 공수처장은 지난 달 7일 김학의 전 법무차관 불법 출금(出禁) 수사를 무마하려 했다는 의혹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조사하면서 자신의 승용차를 제공해 은밀하게 과천 공수처 청사로 들어오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처장은 이날 1시간 가량 피의자 신분인 이 지검장을 만나고도 출입기록과 조서를 남기지 않아 ’황제조사‘라는 지적이 일었다.

또 주진형 열린민주당 최고위원 딸 주모씨가 지난 1월 5일 같은 당 최강욱 대표의 8급 비서로 정식 임용됐는데, 한·미 복수국적자가 국가공무원에 임용된 유일한 사례여서 ’아빠 찬스‘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대중(大衆)의 모범을 보여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는 일에 몰두한다면 그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겠는가.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선비정신을 새삼스럽게 거론하는 까닭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고귀한 신분’을 뜻하는 노블레스와 ‘책임이 있다’는 오블리주가 합쳐진 프랑스어다. 1808년 프랑스 정치가 가스통 피에르 마르크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이 말은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한다. 남보다 많이 누린다는 것은 사회적 신분이 그만큼 높기 때문에 가능하다. 따라서 국가나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에게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가 지워짐은 당연한 이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시작은 초기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의 공공정신은 로마를 고대 세계의 맹주(盟主)로 자리매김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들에게는 봉사와 기부 등의 행위가 의무인 동시에 명예로 인식되면서 경쟁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고위층이 전쟁에 참여하는 전통은 더욱 확고했는데, 로마 건국 이후 500년 동안 원로원(元老院, Curia lulia)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줄어든 것도 계속되는 전투로 귀족들이 많이 희생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이러한 전통이 이어진 서양에서는 구체적인 사례도 많다.

대표적으로 회자(膾炙)되는 것이 ‘칼레(Calais)의 시민<조각가 로댕의 작품으로 유명>‘ 얘기다. 프랑스와 영국이 왕위 쟁탈을 노려 ‘백년전쟁’을 벌이던 1347년, 약 1년 간의 교전에서 끝까지 버티던 프랑스 북서쪽 항구 도시 칼레시민들이 항복하자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저항에 대한 책임을 물어 칼레 시민 6명에게 교수형을 명한다.

이때 가장 먼저 자원한 사람이 칼레 시 최고 부자였던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였다. 이어 시장과 법률가 부자 상인, 그의 아들 등 상류층이 잇달아 도시를 구하겠다며 나섰다. 에드워드 3세는 죽음의 대열에 동참한 6명의 당당하고 결의에 찬 모습에 놀란다. 이를 지켜본 왕비는 그들의 용기에 감동하여 왕에게 자비(慈悲)를 간청, 결국 6명의 시민은 목숨을 구하게 된다.

영국도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Eton College) 출신들이 1.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2천여 명이 전사했고, 포클랜드전쟁(1982년 아르헨티나 코 앞 영국령 포클랜드 섬을 놓고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벌인 75일간의 전쟁) 때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둘째아들 앤드루가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해군 장교였던 앤드루 왕자는 자신의 헬기로 적군의 미사일을 유도하는 작전에 참가했다.

징집을 피해 외국으로 달아난 아르헨티나 지도층 자식들과 확연히 달랐다. 목숨을 걸고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왕자의 인기와 함께 왕실과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자긍심도 치솟았다.

1950년 발발한 6·25전쟁에 미국의 정치인과 장군의 아들 142명이 참전, 35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과 미8군사령관 워커 중장의 아들이 참전했고, 유엔군사령관 벤플리트 장군의 아들은 해군 조종사로 북한 상공에서 전투중 실종되었다. 남의 나라 전쟁에 아들을 참전시킨 정신은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다.

서양에만 이런 정신이 있는 것이 아니다. 동양에서도 일찍이 ‘선비정신’이 있었다.

논어(論語) ‘자장(子張)편’의 첫 머리는 “선비는 위급함을 당하면 목숨을 걸고, 이득을 보게 되면 의로운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士見危致命 見得思義)라고 가르치고 있다.

논어의 ‘태백(泰伯)편’에서 증자(曾子)는 말한다.

“선비는 (인·仁의 실천을 위해서) 뜻이 넓고 굳세어야 한다. 짐은 무겁고 길은 멀기 때문이다”(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라고 했다. 나라를 위하고 선(善)을 위해서 살신성인(殺身成仁)하는 것이 선비정신의 근본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신분(身分)이 높거나 많이 가진 이들의 솔선수범 사례가 적지 않다.

신라의 화랑(花郞) 관창(官昌, 645~660)이 계백(階伯, 출생일 미상~660)장군이 이끄는 백제결사대와의 황산벌 전투에서 끝까지 자신을 희생하여 신라를 구했고, 안중근 의사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으로 조국(祖國)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다.

‘상생과 나눔’의 대명사로 통하는 경주 최부자는 지금도 집 안내 현판에 ‘명부(名富)의 격조와 품격을 갖춘 경주 최부자’라고 소개돼 있다.

12대 300년 동안 연이어 만석(萬石)을 한 영남의 대표적 명문가인 이 집안에선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家訓)에 따라 1년 소작수입의 1/3인 1천석은 빈민 구제에 사용했고, 재산이 만석을 초과하면 소작료를 낮춰 사회에 환원했다.

지리산 자락,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운조루(雲鳥樓)’라는 아흔아홉 칸 고옥(古屋)이 있다. 조선조 영조 때 삼수부사(三水府使)를 지낸 류이주(柳爾胄·1726∼1797)가 지은 운조루의 사랑채와 안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곳간에는 통나무 속을 비우고 만든 원통형 쌀뒤주가 하나 있다.

쌀 3가마가 들어가는 뒤주 하단부의 자그마한 문에 ‘他人能解’(타인능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다른 사람도 마음대로 이 구멍을 열 수 있다’라는 뜻으로, 누구라도 와서 쌀을 필요한 만큼 맘껏 가져가도 좋다는 가난한 이웃에 대한 살뜰한 배려(配慮)가 담겨있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풍전등화(風前燈火)의 나라와 백성을 구한 성웅(聖雄) 이순신 장군의 위국헌신(爲國獻身)과 무용담(武勇談)은 세계인이 추앙할 정도다.

또한 9대가 정승 판서 참판을 지낸 명문가 자손인 우당 이회영 선생 가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 사례라 상찬(賞讚)받아 마땅하다. 경술국치 후 우당 선생 6형제와 가족은 만주로 가서 항일 투쟁의 기틀을 마련하고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세계 여느 사례와 비교해도 부족함 없는 우리 선조 이야기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기간 경상도 안동에서 창의(倡義), 6부자와 동생 등 7명이 전투에 참가한 포의지사(布衣之士) 기봉(岐峯) 류복기(柳復起 1555~1617, 증직·贈職 이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일가족의 의병활동 및 기민(飢民) 구휼(救恤)사례는 선비정신의 진면목(眞面目)을 여실히 보여준다. 류복기는 1592년 임란(壬亂)이 일어나자 올곧은 선비의 뜻을 세워 “이 몸의 죽음을 어찌 아까워 하겠는가?”(身死何惜·신사하석)하고 6월 1일 안동에서 처음으로 의병을 일으켰다.

일가족이 모두 구국 전장(救國 戰場)에 나선 예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우 드문 일로, 특히 다섯째 아들 의잠(宜潛)은 부형(父兄)을 따라 열 살에 안동에서 140여 km 떨어진 ‘홍의(紅衣)장군’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 1552~1617)가 이끄는 창녕 화왕산성(火旺山城 600m 고지) 방어전에 자원해 척후 및 연락병으로 활약했다.

류복기와 장자 우잠(友潛) 등 10대의 다섯 아들, 그리고 아우 묵계(墨溪) 류복립(柳復立 1558~1593, 진주성 싸움에서 순절, 증직 이조판서) 등 7명은 대구시 망우당공원의 임란호국영남충의단에 위패(位牌)가 모셔졌다. 정부는 이들의 우국충정(憂國衷情)과 호국정신(護國精神)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16년 10월, 35억원의 예산을 들여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아기산(鵝岐山) 자락에 기산충의원(岐山忠義院)과 안동충의역사체험장을 개원했다.

이렇듯 우리 선조들의 빛나는 선비정신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11년 전 북한 어뢰에 폭침당한 천안함에 갇힌 아들 같은 수병(水兵)들을 구하겠다고 53세의 나이도 아랑곳 않고 얼음장 같은 서해에 몸을 던져 구출작전을 펴다 산화한 해군 특수전여단(UDT/SEAL) 소속의 한주호 준위의 솔선수범(率先垂範)이 경이롭기만 하다.

요즘 사회 지도층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살아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를 보노라면 별의별 사유가 다 나온다.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병역비리, 탈세, 전과(前科) 등 지도층 인사로서 부적합한 반(反) 오블레스 노블리주 행위가 차고넘친다. 비록 낙마(落馬)까진 하지 않았더라도 말끔하게 넘어가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사회 지도층의 도덕성이 이렇게 추락했는지 후세(後世)들에게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많은 것을 받는 사람은 많은 책무(責務)가 요구된다."(Much is given, much is required.) 미국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1917~1963)가 1961년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한 말이다.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잘 표현해준 명언이다.

서구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나 우리의 선비정신이나 모두가 같은 나라 사랑이고 국민을 위하는 상류층의 도덕적 정신무장이다.

지금과 같은 위신(威信)과 염치(廉恥)가 상실된 가치 전도(顚倒)의 시대,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반드시 새기고 실천해야할 소중한 덕목(德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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