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 용의자 사이다크라미 라차발리조다(30)가 24일(현지시각) 모스크바 지방법원에 출석해 앉아 있다. 라차발리조다를 포함한 용의자 4명은 지난 22일 모스크바 북서부 크로커스 시청 테러 혐의로 체포됐으며 지금까지 파악된 사망자는 어린이 포함 137명으로 집계됐다. 이 용의자는 조사 과정에서 고문을 받아 귀가 잘린 것으로도 알려졌으나 확인은 되지 않았다. 2024.03.25. 사진=뉴시스
▲ 러시아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 용의자 사이다크라미 라차발리조다(30)가 24일(현지시각) 모스크바 지방법원에 출석해 앉아 있다. 라차발리조다를 포함한 용의자 4명은 지난 22일 모스크바 북서부 크로커스 시청 테러 혐의로 체포됐으며 지금까지 파악된 사망자는 어린이 포함 137명으로 집계됐다. 이 용의자는 조사 과정에서 고문을 받아 귀가 잘린 것으로도 알려졌으나 확인은 되지 않았다. 2024.03.25. 사진=뉴시스
투데이코리아=진민석 기자 |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테러로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이번 사태의 배후를 놓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신경전이 격화하는 양상이다.
 
미국은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를 주범으로 지목했고, IS도 90초 분량의 테러 당시 현장 영상을 공개하면서 배후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배후설에 대한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양측 간 ‘진실게임’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24일(현지시간) 러시아 타스통신 등 주요 외신을 종합하면, 지난 22일 모스크바 북서부 크라스노고르스크의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에서 무장 괴한이 벌인 무차별 테러로 인한 사망자 수는 137명으로 늘어났다.

특히 이번 테러 직후 IS가 스스로 배후를 자처하며 아프가니스탄 지부 이슬람국가 호라산(ISIS-K) 조직원들이 가담한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dpa 통신에 따르면, 호라산의 선전매체 아마크는 텔레그램을 통해 공개한 90초 분량의 테러 현장 영상에는 테러 용의자로 보이는 한 사람이 피 묻은 옷을 입고 흉기를 든 채 공연장 복도를 뛰어다니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그러나 IS의 배후 자처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의 연계설에 대한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는 연설을 통해 “(범인들은) 우크라이나 방향으로 도주했다”며 “초기 정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쪽에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창구가 마련돼 있었다고 한다(a window was prepared for them on the Ukrainian side to cross the border)”고 이 같이 밝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푸틴의 주장 속엔 이번 테러를 명분 삼아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대한 자신의 정책을 강화함과 동시에 내부 결집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워싱턴포스트(WP)는 우크라이나 군사정보기관을 인용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고 2차 동원을 시작하기 위해 이번 사태를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특히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테러 책임을) 우크라이나로 떠넘길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푸틴 대통령의 주장과는 다르게 미국 등 서방국가들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이번 테러를 호라산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그간 중동 지역 내전에 러시아가 개입하면서 호라산뿐 아니라 IS 본부와도 거듭 충돌해왔기 때문이다.
 
미국 안보 컨설팅업체 수판그룹의 콜린 클라크 대테러 분석가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호라산은 지난 2년간 러시아에 집착해왔으며 선전매체를 통해 자주 푸틴 대통령을 비판해왔다”며 “러시아가 아프간, 체첸, 시리아 등 중동지역에 자주 개입한 것을 언급하며 크렘린궁이 무슬림의 피를 손에 묻히고 있다고 비난했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미국 일찍이 테러 가능성을 포착하고, 공격을 모의 중이라는 첩보를 러시아에 공유하기도 했다.
 
에이드리언 왓슨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지난 23일 성명을 통해 “이미 이번 달 초 (호라산이) 모스크바 테러 공격을 모의하고 있다는 첩보를 러시아에 공유했으며 러시아에 있는 미국인들에게도 주의를 당부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해당 첩보를 전해 들은 직후인 19일 “이런 노골적인 협박은 러시아 사회를 불안정하게 흔들고 위협하려는 도발”이라고 비난하며 흘려들었다는 후문이다.
 
이번 테러는 ‘137명의 사망자’라는 거대한 숫자를 차치하더라도 큰 의미를 내포한다.
 
푸틴 정권이 러시아인들에게 강조해온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이다.
 
CNN은 이번 테러가 대선에서의 압승으로 종신 집권의 길을 열게 된 푸틴 대통령의 이미지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며 “푸틴 대통령이 5연임에 성공한 직후 러시아가 대학살의 소용돌이에 빠졌다”고 꼬집었다.
 
안드레이 콜레스니코브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 센터 선임연구원은 워싱턴포스트(WP)에 “프리고진의 반란 때처럼 푸틴 정권은 위중한 상황에서 거듭 약점을 드러내고 있다(the regime shows its weakness in such critical situations)”고도 분석했다.
 
한편, ‘모스크바 테러’의 용의자 4명 가운데 4명이 러시아 법정에서 자신들의 혐의를 시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24일 AP통신에 따르면, 모스크바의 바스마니 지방법원은 타지키스탄 국적의 19세~32세 청년 용의자들 4명을 “집단 테러로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희생시킨 테러 범죄” 혐의로 공식 기소했다.
 
이들 중 미르조에브, 라차발리조다, 파리두니 등 3명은 자신들의 범행을 시인하고 유죄를 인정했으나 4번째인 부상자 파이조브는 재판 내내 휠체어에 앉은 채 눈을 꼭 감고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러시아 법원은 테러 피의자 4명에 대해 오는 5월 22일까지 구금을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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