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권도전 출사표 '강운태' 前행정자치부 장관

"교육사업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해 신한국을 건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열어나가겠다"

대권도전을 선언한 강운태 전 행자부 장관의 포부이자 출사표다.

봉사단체 빛나는 대한민국 연대를 이끌고 있는 강운태 전 장관<사진>을 만나봤다. 장 전 장관은 서울대 외교학과 출신으로 행시에 합격, 내무부(행정자치부의 전신)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광주시장, 농림부장관을 거쳐 행자부장관을 역임하고 민주당에서 정치활동을 하기도 했다.

지난 1월에는 오랜 공직 경력에 기반한 국정운영 로드맵인 '똑똑한 정부 빛나는 대한민국'을 출간하기도 했다. 최근 정치계 거물들과 부지런히 접촉, 정가의 시선을 모으고 있는 그이지만, 집에서는 가사분담 잘 해주는 평범한 초로의 남편일 뿐이라고.

-학부 시절 외교학을 전공했고 국정 참여를 오래 했던 이력이 눈에 띄는데 현재 북핵 문제 등 한반도 주변 정세에 대한 분석과 대응방법을 듣고 싶다.

▲대단히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결국 해법은 주변국에 신뢰를 주면서 국익을 추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대목에서 통일 직전 독일의 처신을 생각해 보게 된다. 콜 정부는 미국, 소련, 불란서, 영국에게 신뢰를 주면서 통일에 성공했다.

독일이 아무리 경제 강국이라 한들 이들의 묵인 내지 도움이 없었다면 통일을 이뤘겠는가? 결국 북핵 해법은 주변과의 끊임없는 대화다.우리의 경우, 미국에 대해서는 민주주의 가치를 전세계에 확산하는 데 일조하는 파트너로,중국에겐 그쪽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어필해야 한다고 본다.

-현재 북핵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최근 한 일간지 보도에 따르면 현금 지원 금지 원칙이 깨지는 등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는데, 북한 지원에 대한 견해와 핵문제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

▲북핵 문제는 어떤 경우에도 불가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나 해결은 평화적으로 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현금 지원은 없어야 한다는 주장은 옳기는 하지만 너무 이상적인 답안이라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상대를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는 하나의 수단으로는 검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돈을 주거나 물자를 주는 건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우선은 그런 방법으로라도 북한과 대화를 이어가고 평화를 확보함에 우선을 두되, 장기적으로는 북한의 인적자원 향상에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줘야 통일 후에 도움이 된다.

-최근 고 윤장호 하사 전사 문제로 해외 파병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이 문제에 대한 강장관의 지론은.

▲단계적 철수가 마땅하다고 난 본다. 이라크에 가서 한국이 할 일은 대부분 했다고 생각한다. 한미 공조를 위한 노력은 해야겠지만, 국제적 여론이나 뭐 그런 부분도 감안해야 하지 않겠나. 외국도 대체로 철군 추세이므로 우리가 철군한다고 해도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명숙 전 총리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범여권 통합에 힘을 실어줬다는 보도가 나왔다. 기자의 짧은 생각으로는 한 전 총리보다는 민주당 사무총장까지 지낸 강 前장관에게 이런 주문을 하는 게 자연스러워 보이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입장은.

▲작년 10월초에 김대중 전 대통령을 1시간 정도 만났다. 남북관계, 대외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깊이있게 나눴다. 정치적인 문제로 다시 만날 생각이다.

-범여권통합에 대한 견해는.

▲통합당을 만들 뼈대가 중요하다고 생각. 정책을 중심으로 사람이 모여야지, 사람들끼리 모여 뭘 할지 그때부터 고민하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앞으로의 정치는 민주나 개혁, 평화도 중요하지만 봉사하는 정당, 정치, 리더십을 화두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최근 민주당이 구파와 신파로 나뉘어 갈등 중인데, 지금은 떠났지만 친정이니만치 민주당의 상황에 대해 코멘트 부탁한다.

▲슬기롭게 해결해야 하지 않겠나. 민주당이 그래도 (민주 진보 세력의 종가로) 정체성이 있는 당인데 국민 실망을 시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난 민주당을 떠날 때, 결별이 아니라 보다 더 큰 바다에서 나중에 만나자고 나간 것이다. 현재의 민주당은 너무나 적은 것만 생각하는 게 아닌지 좀 의문이다. 18대 총선을 너무 의식하는 게 아닌가 걱정도 된다. 나중에 민주당과 큰 바다에서 멋지게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4월초에 전당대회를 무사히 치르기를 희망한다.

-한미 FTA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인지.

▲서둘러서 될 일은 아니지만 결국 해야 한다고 본다. 다만 농촌이 피해를 볼 부분에 보상을 충분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농림부가 협상에 나설 때 들고 들어간 양허안 250개 품목을 앞으로 열릴 고위급 회담에서도 사수해 주기 바란다.

난 생명농업을 강하게 일으켜 FTA의 여파를 극복하자고 주장하고 싶다. 농업 선진국이 되면 새 시장이 창출된다. 청정 농산물, 브랜드화를 추진하고 우리가 다른 나라 농산물이 따라올 수 없게 그 분야를 장악하자! 생명 농업에 대한 농법 계발에 매진해야 할 때다.

-북한 주민 지원에 대한 견해를 들어보니 교육 문제에 관심이 깊은 듯 하다. 교육관을 피력한다면.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고의 경제 정책, 분배 정책, 지역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부 정책의 우선 순위에서 교육을 다시금 포인트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국가 경쟁력과 교육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인적 능력 계발만이 우리의 살 길이다. 대학 경쟁력을 강화하고 직업 능력의 향상시켜야 한다고 난 본다. 인적 능력을 키우는 게 잠재성장력으로 나타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울러 저소득층 지원의 한 방편으로 교육을 꼽는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고 싶다. 온라인으로 모든 강좌를 개방하는 하버드대학의 방침에 주목하고 싶다. 난 이런 방식으로 어느 계층이든 어느 지역주민이든 고른 교육을 받게 하는 걸 꿈꾼다. 이 방법을 적극 벤치마킹해서 서민과 중산층 등골을 휘게 하는 사교육비를 잡겠다. 여름과 겨울에 대학예비교육 같은 프로그램을 하는 것도 생각해 보고 있다.

-지금 서머 스쿨을 언급했는데, 일부 우수 학생이 아닌 전체 학생 혹은 상당수 학생에게 이런 혜택을 주려면 예산이 문제가 될 것 같다. 이 부분은 어떻게 풀것인가.

▲교육엔 과감하게 투자를 해야 한다. 정부의 군살을 빼서 조달할 요량이다. 경상 경비 중 상당 부분 감축이 가능하다는 게 내 계산이다. 예를 들어 민간부분에 국민연금 등 기금 운용, 공기업 분야 등을 이양해서 비용절감 효과를 낼 수 있는데 이 정도면 저런 계획이 모두 가능한 것이다.

-일자리 확충 문제에 대해 비전은 좋은데 너무 어마어마한 계획이라 실감이 잘 안다. 구체적으로 방안을 들려달라.

▲우리 나라가 주요 선진국보다 고용률이 10% 정도 낮다. 이걸 난 극복하고 싶다. 노무현 정부가 일자리 29만개 만들었는데 난 50만개를 만들겠다.

50만개를 대체 어떻게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난 이런 생각이다. 지금까지의 일자리정책은 경제성장을 하면 일자리는 자동으로 는다는 안일한 정책이었다고 난 본다. 성장률에만 집착할 게 아니라, 일자리가 늘어나는 경제성장을 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 중심 구조를 갖고 가면 지금의 일자리 부족 문제 해결이 절대적으로 곤란하다. 그래서 난 중소기업 위주로 육성을 하려고 한다. 우리 나라 중소기업이 전체 고용 규모의 88%를 차지하는데 생산부가가치는 37% 밖에 안 나온다. 이건 비효율적이다. 중소기업이 많은 사람 고용하고 그 인원으로 많은 수익 올리는, 고생산부가가치 산업이 되게끔 유도하려 한다.

그래서 산업자원부를 중소기업부로 바꿔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싶다. 그리고 지금의 영세한 서비스업이 아닌 규모있는 서비스업을 말하는 것이다. 태국같은 의료와 관광의 믹스를 참조하고 있다. 지금 생각엔 의료산업을 관광지로 이름높은 제주에 육성하고 싶다. 성형을 전문으로 하는 의료법인이 관광명소 제주에 있다면 수술과 관광을 겸해 방문하는 외국인이 참 많이 들어올 수 있지 않겠나.

아울러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 걸 고민하는데 그 핵심은 규제 완화다. 이런 식(중소기업과 대기업 쌍두마차 시스템)으로 하면 2012년 일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돌파가 가능하다.

-강장관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좀 들려 달라.

▲공직자였던 선친 밑에서 자랐다. 선친은 정의로운 공무원으로 좌천을 많이 당해 가족들이 이사를 숱하게 다녔다. 상관인 군수에게 청탁을 해도 선친이 안 해 주면 안 될 정도로 고래힘줄같은 고집에 원칙주의자였다. 청탁을 온 사람이 몰래 쌀 한 가마를 놓고 가자 다음날 그걸 짊어지고 가서 돌려줄 정도로 엄격한 분이었다.

그러니 생활이 윤택하지 못했다. 대학 다니는 형님이 둘 있었는데 학비를 위해 내가 고교 자퇴 후 검정고시에 도전하자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17살 때 했다. 뭐 결국 고교 동창생들하고 같은 시점에 대학에 들어갔으니 내가 수재라서 속진을 한 셈이 된 건 절대로 아니다. 그저 본전은 건졌다고 해야 할까(웃음).그래서 난 지금도 검정고시 출신들 보면 반갑고 그렇다. 총동문회 회장도 한 바 있다.

-검정고시 총동문회는 결속력으로 잘알려져 있다. 이런 조직을 이끈 적이 있다면 재미있는 일화가 많을 것 같은데.

▲내 회장 일화라면, 농림부 장관 때, 검정고시동문회 명의로 화환이 왔더라. 난 그때까지 그런 단체가 없는 줄로만 알아서 대단히 감격했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바로 연락을 해서 내가 도울 일 있으면 바로 말하라 했다. 내가 그렇게 종종 신경을 쓰다 보니 자연스레 회장도 했다.

그때 많이 커져 이젠 시도 지부가 있는 걸 보면 뿌듯하다. 신문 보고 어려운 검정고시 출신자가 있는지 파악 후 장학금 전달도 했던 점이 기억이 새롭다. 다가오는 5월 5일엔 전동문을 설득, 헌혈 운동을 할 예정이다.

-지금 예비혈액이 모자라 준전시상황이라고도 하던데, 검정고시 동문회가 헌혈을 위해 발벗고 나서 움직인다면 당분간 적십자가 혈액수급 문제는 걱정 안 해도 것 같다.

▲앞으로도 그런 시기적절한 봉사 활동을 펴 국민에게 봉사하겠다(웃음).

-일 많은 부서만 옮겨 다니며 열정적으로 근무한 것으로 들었다. 사모님이나 가족은 그러면 좀 싫어하지 않는지.

▲사실 가족과 아내에겐 항상 미안하다. 아내는 고시 합격 후에 내무부 다니실 때 만났는데 항상 일 많은 부서로만 도는 남편인지라 잘 못 챙겨줬다. 불만도 많았을 법 한데 내색없이 내조를 잘 해줘 고맙다. 그래서 근간에는 내가 가사분담도 해 주고 그런다. 설거지라든지.

-호남출신으로서 아직 지역차별이 남아있던 문민정부 때 장관까지 한 비결이 있는지. 그리고 공직생활 중 보람있었던 부분을 회고한다면.

▲차별이라고 할 건 없었고 가끔 어려움은 있더라. 어려움도 있었지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 그러다 보니 조직에 어려운 일을 전부 나한테 주더라. 주는데(웃음) 운이 좋았는지 어찌어찌해서 대부분 멋지게 해내서 승진기회가 좀 많았다.

광주시장을 94년에 임명받고 갔는데 그때 광주비엔날레를 창설한 게 바로 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라 그런지 기억이 많이 난다. 당시 김영삼 정부에서 지방화와 세계화를 고민하던 때인데 난 지방의 장점을 살려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게 바로 정부의 슬로건에 맞는다고 봤다.

처음에 그런 대형 사업을 기획을 해서 내놓으니 문체부 등에서 반대가 많았다. 그래서 YS에게 직접 간청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내 말을 듣더니 현장에서 바로 OK 사인을 내줬다. 문체부에 외국 작품을 들여올 때 보험에 보증을 하는 그런 문제도 거부를 했는데 바로 대통령 지시로 풀렸다. 그러니 일이 일사천리로 속도가 붙었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