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김지하-김진명의 '손학규' 밀어주기

최근 문단에도 대선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 문인들의 정치참여 논란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특히 한국문단의 원로 간판격인 황석영(63) 소설가의 '총대론'은 현 대선 정국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14일 정계 안팎을 한껏 뒤흔들며 다음날 각종 매스컴의 1면을 장식한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의 한나라당 탈당이 황씨의 작품이라는 게 '공공연한 노코멘트'다. 이른바 '한나라당의 삼국지' 판 자체를 뒤흔들어 놓은 것이다.

◆ 황석영-김지하 “'손'과는 한솥밥 동지”

소설가 황석영씨의 '총대론'은 지난 1월 22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새 정치질서 만들기에 나라도 총대를 멜 생각이 있다”고 언급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 발언의 파장이 커지자 황씨는 지난 2월 5일자 오마이뉴스에 '개똥 폼 잡지 말고 현실의 저잣거리로 내려오라'는 장문의 글을 기고했다. 황씨는 이 기고문에서 “이제부터 나는 점잖지 않을 것이며 예전으로 돌아가련다”라고 선포하면서 '중도'를 위한 현실정치 참여에 나설 것을 기정사실화했다.

(사진설명1=“새 정치질서 만들기에 나라도 총대를 멜 생각이 있다”고 발언한 황석영 소설가)

그런데 황씨의 이 기고문 게재 이후 '총대론' 사태는 더 걷잡을 수 없이 번잡해졌다. 사흘 뒤인 지난 2월 8일 후배 시인 이승철(49)씨의 반박기사 '작가 황석영은 진실의 광장으로 나와라'가 잇따른 것이다. 이씨는 황씨의 '총대론' 의도 상당 부분을 납득할 수 없다면서, 특히 현실정치판의 '새판짜기'를 염두에 뒀을 황씨의 지난 1월 행보에 유감을 표했다.

“지난 70~80년대 나와 인연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 그리고 최근에는 조중동 3개 언론사 사주들도 만났어. 아름다운 재단의 박원순이도 만나 '아름다운 모습으로만 살지 마라'고 충고도 했지. 현재의 정치구도가 깨어져야 해. 예컨대 손학규를 범여권 후보로 끌어오면 우리에게 승산 있는 게임이 될 거야.”

무엇보다 이씨는 진보적 작가라고 일컬어지는 황씨가 보수언론을 대표하는 조·중·동 사주와 잇달아 회동했음을 짚으면서, '안티 조선일보' 작가로 명성이 자자한 황씨의 전력을 살펴봤을 때 한마디로 '쇼킹'하다는 반응.

이씨는 “황씨 표현대로 '개똥폼' 잡고 있는 여러 인사들과 오찬과 만찬을 하고 새벽 4시까지 인사동에서 통음을 마다 않으면서 자신의 주머니돈을 써가며 정치철학을 피력하고 다닌 것”이라면서 한국문단의 원로 작가로서의 명망에 얼룩을 튀겼다고 펜촉의 날을 세웠다.

이렇게 문단은 문단대로 홍역을 치르는 가운데 손 전 지사는 몇몇 측근들의 만류에도 '한' 탈당을 선언했고, 여기에는 소설가 황씨가 있었다. 사실 황씨와 손 전 지사는 지난 1970년대 구로공단에서 함께 자취하면서 노동운동을 한 막역한 사이. 황씨의 내심이 진정 '중도'에만 맞춰져 있는가에 대한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도 이들의 이같은 배경이 한몫하고 있다.

여기에는 시인 김지하(65)씨도 동행하고 있다. 김씨는 손 전 지사와 서울대 문리대 6년 선후배지간인 동시에 40년 가까이 민주화운동을 함께 하면서 절친하게 지내왔다. 그러나 김씨는 황씨처럼 적극적인 손 전 지사 밀어주기에서는 한 발짝 물러서 있다. 그럼에도 실질적으로는 동일 '라인'에 서서 '할 말 다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눈초리로 따갑다.

김씨는 “정치를 말하더라도 승화된 언어로, 담론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라면서도 “가장 중요한 건 균형인데 완전한 균형이란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기우뚱한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역시 '중도' 세력을 통합중인 손 전 지사를 지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손학규를 이만큼 띄운 민심대장정 당시 김씨는 “정치는 따뜻해야 한다”면서 언론과 함께 손 전 지사를 찾아가 격려해 준 전적도 있다.

특히 김씨의 발언을 눈여겨 본 이들이라면 김씨가 지난달 한 인터뷰에서 “박근혜는 대선 근처에 갈만한 사람 아니다”“이명박은 운하개발 치명적이며 직격탄 막을 것”이라고 언급했음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 김진명-이문열 “정치참여는 작품으로?”

올 초 소설가 김진명(49)씨와 이문열씨도 '정치적' 소설 덕분에 분주했다.

김진명씨의 신작 소설 '나비야 청산가자'에는 손 전 지사가 실명으로 거론되며 여권 신당의 후보로 선출돼 대통령에 당선된 뒤 북한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

이 소설의 1권 '신당의 전략' 부분을 보면 “손학규는 시대가 필요로 하는 새 정치인”이라면서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드러난 모든 행적이 깨끗하고 정의로울 뿐만 아니라 경기도지사 시절에 일자리 6만개를 창출했기 때문에 경제 마인드와 실적을 가지고 국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실제 손 전 지사의 행보와 흡사하게 그려냈다.

사전 선거법 위반 아니냐는 반응들에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선 주자의 소설 실명 등장만 가지고는 사전선거운동을 금지한 선거법 위반으로 볼 수는 없으나 저간 무상배포 등 통상적 판매 외의 방법이 동원될 경우 사전선거운동으로 볼 수 있다”고 밝히면서 일차적 논란은 수그러들었다.

'문학권력'으로 까지 불리면서 꾸준히 정치적 발언을 해 왔던 이문열씨의 신작 소설 '호모 엑세쿠탄스'의 정치적 행보도 역시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이씨는 '건전한 보수' 혹은 '보수 꼴통'이라고 까지 불리면서 어찌됐든 '보수'의 축에 놓여 있는 인사.

이씨는 이 소설에서 “고시 합격보다 학생운동 경력이 출세하고 고위직에 이르는 데 훨씬 빠른 지름길”이라는 구절 등으로 386운동권과 현 정부의 실정을 비틀면서 “남한의 햇볕이 그들의 옷을 벗기기 위함이란 걸 빤히 알면서 김정일 정권이 이른바 선군 정치의 옷을 벗어 던지고 개혁·개방으로 나올까”라고 햇볕정책을 문제 삼기도 했다.

실제 이씨는 지난 16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때 동향 출신 소설가 김주영씨가 열린우리당의 공천심사위원으로 맞서 눈길을 끌기도 했다.

◆ 작가의 신념 vs 작가적 오명

앞서 짚은 황석영, 김지하, 김진명, 이문열 작가 등 정치의 계절만 돌아오면 잇따르는 문인들의 '정치판 발담구기'에 대한 문단의 목소리도 찬반양론으로 나눠져 시끌벅적하기 이를 데 없다.

특히 소설 텍스트를 뛰쳐나와 현실정치 참여 발언을 한 황씨에 대한 논란이 빗발친다. 먼저 원로 시인 고은(74)은 “작가들이 신념이 있다면 정당에 가입해서 활동해도 무방하다”면서 “우리는 1970~80년대 작가들이 소리도 내고 거리로 뛰쳐나가기도 하면서 사회와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동조했다.

그러나 반론에 기반한 후폭풍이 훨씬 거세다. 김용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은 어느 사석에서 “총이 있어야 총대를 멜 것 아니야, '구랏빨'만 가지고 어떻게 총대를 메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고 냉소한 것으로 전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 또한 “본인들은 부인하겠지만 '나 아니면 안된다'는 인식에 기반한 '권력지향'”이라고 꼬집어 말했다.

이즈음 황씨와는 동년배인 소설가 조정래(64)씨의 체험 깃든 발언은 호소력이 짙다.

“나는 노무현 후보자의 선거운동 막바지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칼럼을 썼고, 특히 탄핵정국에서는 두 번씩이나 야당을 비판하는 칼럼을 썼다. 이 정권이 올바로 가도록 노력했지만, 오늘의 상황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내게도 있다. 그래서 이 정권의 실패에 대해서 사회에 면목이 없고 때로 원망스럽기도 하다.”

아울러 조씨는 “정치는 필연적으로 오류를 범하게 돼 있기 때문에 작가가 정치세력에 들어가는 것은 자기 파멸의 길”이라고 뼈있는 조언을 던졌다.

이와 함께 이번 김진명씨와 이문열씨 신작소설 역시 '적합한' 작가적 정치참여는 아니라는 평이 대세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씨는 “정치소설은 시간과 거리를 두고 분석해야 하는데 '현재진행형'과 '르포라이팅' 식의 정치소설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흔히 '작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정부'라는 표현을 심심찮게 구사한다. 그만큼 '펜'이 지니는 호소력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펜'으로 얻은 대중의 관심과 애정을 '말'의 도마에서 풀어낸다는 것은 재고의 여지가 분명하다는 의견들이다. 또한 '갑골'에 새길 만한 '글'을 쓰려면 '현재진행형'보다 좀 더 책임감 있고 진중한 '펜'이 되어야 함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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