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한미FTA…도전과 응전] ⑤법률분야

한미FTA가 정식 발족되면 농업과 축산 제약산업에서 큰 피해를 볼것으로 다들 예상하고 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법률분야에서도 엄청난 변화가 닥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른바 미국발 '허리케인'의 파장이 엄청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재천 의원(사진, 민생정치모임 소속 국회의원, 변호사)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169개 법률이 한미 FTA와 충돌한다고 한다.

이런 법률들이 차례로 수술대에 올라야 한다는 뜻이고, 이 와중에 우리 생활에 알게 모르게 끼칠 영향은 그야말로 막대할 것으로 여겨진다.

'외환위기' 이후 상법 등 법률이 일부 개정되면서 우리가 겪었던 혼란을 회상해 보면 169개 법률의 대변신은 그야말로 허리케인을 능가하는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법률 분야가 한미FTA로 겪을 격동기는 일반시민들에게도 힘든 시기가 될 전망이다.

그뿐만 아니다. 투자자 소송 제도 도입 등 소송제도 대수술, 법률서비스 부문, 법학교육 문제 등이 특히 영향을 받을 것으로 생각되는 부문이다.

◆미국식 제도 유입, 사법부독립과 행정권 침해 우려

지난 2000년 미국의 세계적 물류회사 UPS는 캐나다 연방정부를 상대로 1억6천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국제중재기관인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에 제기했다.

이 회사는 캐나다의 우편기구 '캐나다포스트'의 자회사인 소포배달업체가 모회사의 우편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이 특혜 혹은 우회적 지원이며 이로 인해 자유로운 경쟁이 이뤄지지 않아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UPS가 소송의 근거조항으로 삼은 것이 바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11장의 분쟁처리 절차에서 예정한 이른바 투자자-국가간 소송(Investor-State Dispute:이하 ISD로 약칭) 제도다.

우리 법률 체계만 공부한 사람들에게 이 ISD 제도는 조금 낯설다. 사실 이 우편물 소송을 이해하기 위해 북미자유무역협정 ISD를 조금 들여다 보면 우리 법률/소송 시스템과 아예 체질이 다른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한때 국제 업무를 다루는 변호사들이나 법학자들,법학도들 사이에서는 이 케이스가 잠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문제는 이제 한미 FTA가 지금의 안대로 비준되어 버리면(통과 과정에서 한미 양국의 입법부가 대폭 수정과 재교섭을 요구하거나 아예 비준이 안 될 수도 있겠지만) 한때의 지적 호기심으로 외국 사건을 들여다 보며 느끼던 '신비로움'이 '당혹감'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에 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그 당혹감이 그야말로 일상이 되어 우리 법률 시스템과 사회를 흔들 것이라는 점이다.

우선 ISD가 한미 FTA호를 타고 우리 땅에 상륙한다는 것을 가정할 때 다가오는 당혹감은 '직접 보상 체제'가 깨진다는 것이다.

우리 헌법은 '수용시 법률이 정한 보상'을 규정하고 있다. 다만 현재까지는 직접 수용의 경우만 염두에 두고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현재 한미 양국이 FTA 협상을 타결지으며 도출한 안에 들어 있는 ISD는 수용과 유사한 형태의 간접수용까지 보상의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렇게 되면 보상 규모를 무척 크게 잡아야 한다는 우려가 있다. 간접 수용이 도입되면 지금까지는 무시되어 온(국민에게 감수를 요구해온) 사소한 피해 부분까지 전부 금전적 보상으로 처리해 주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간접수용 도입땐 보상규모 기하급수적 증가

"보상금지불시점을 채권 발행 등의 방식을 통해 좀 유예할 수 있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민노당 모 의원실에서는 "보상액으로 잡을 정부예산 규모가 워낙 늘어나 정부예산에 타격이 클 것이기 때문에 그런 사소한 기법은 아예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한다.

정부가 외국 회사가 제기할지 모르는 소송에 대비해 예비비를 천문학적 규모로 잡아야 한다는 예산편성상의 부담감이 엄청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실질적인 부담도 부담이지만, 언제 소송에 걸릴지 모르니 항상 긴장하고 투자자 소송에 대비해야 한다는 심적 압박감도 상당한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여기에 소송을 예방한다는 취지로 매 행정행위마다 자문을 구하거나 검토를 한다는 것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소모할 것이라는 예측을 행정기관들에서는 하고 있다.

서울특별시의 어느 공무원은 "서울시야 외국 기업과 직접적으로 마주칠 상황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본질적으로 중앙부처나 우려할 사안 아니겠느냐"고 전제하면서도, "외국 기업을 상대로 하는 거래라든지 수용 문제 등은 부담감이 커서 (행정기관으로서는) 추진에 애를 먹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위축감으로 인해 행정기관이 제대로 일할 수 없는 상황도 올 것이라는 우려다.

그 다음 당혹감은 행정심판이나 행정재판에서 우리 법률과 판례를 기준으로 재판하던 때와는 차원이 다른 공격능력을 원고(민간회사)가 쥔다는 점이다.

즉 행정기관의 우월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독일, 일본법을 이어받은 우리 행정법계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미국식 제도에 익숙해져야 한다. 행정기관으로선 그야말로 '대등하게' 민간과 싸우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렇게 되면 위에서 말한 소송대비로 인한 부담은 물론, (인정하기는 싫지만) 상당히 권위주의에 기반해 이뤄져 온 기존의 행정시스템이 모두 개혁을 맞이하지 않을 수 없다는 문제가 다가온다. 타의로 행정부분이 다른 나라 기업들의 입맛에 맞게 대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

◆ 권위주의 기반 행정시스템도 대수술 전망

여기에 검찰과 경찰, 국세청 등의 수사도 행정작용으로 본다면(이견이 있긴 하지만) 더 심각하다. 기업 활동에 방해를 받았다면서 소송을 제기하면 도대체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비명이 나오게 된다는 것. 이미 일부에선 앞으로 '론스타 사건'과 같은 국제적인 사건이 또 터진다면 수사가 거의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마지막으로, ISD는 사법부의 재판결과까지 손해배상 대상으로 삼고 있어 사법부(법원)의 독립성, '준사법기관'인 검찰의 수사기능과 공소유지기능의 위축 우려는 물론, 국가 사법체제가 아예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우리 사법부의 판단이 (양국 합의 하이기는 해도) 국제중재재판소에 의해 재단된다는 것은 '사법 주권' 문제와도 연관된다. 이런 ISD를 덜컥 허용해 주면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실제로 미국의 저명 법조인 산드라 오코너 연방대법원 판사조차 일찍이 "(미국) 헌법 3조는 연방법원에 각 사건과 논란의 결론을 내릴 권한을 부여한다. 그러므로 미 의회는 이러한 법률적 권력의 핵심을 연방법원 아닌 다른 심판위원회(tribunal:국제중재기구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임)에 양도하지 않을 것"이라며 ISD문제를 처리할 권한을 중재재판소라는 국제기구에 위임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중재재판이란 이례적인 제도에 한 나라의 사법권을 굽힐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미국 법조인들도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시민단체들도 이 중재재판 제도를 이례적으로 본다는 것이 정태인 전 청와대 수석이 여러 곳에서 되풀이한 주장이다. 실제로, 미국-호주 FTA에서는 호주측의 반대로 이 제도가 제외됐다.

하지만 한미FTA는 NAFTA와 같은 형태의 ISD를 도입한다는 데 양측이 합의해 UPS건과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검찰의 수사를 거쳐 이미 재판과 국세심판이 진행중인 론스타 사건의 경우 당장 ISD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일각에서는 지적한다.

이런 위험성 때문에 정부에서도 나름대로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알려진 바에 따르면 법무부의 주도 하에 '공공정책 입안시 미리 외국인 투자자들의 ISD 제기 가능성을 사전에 검토'하는 제도적 장치를 둔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현재 설립추진 중인 '법무공단'에 'ISD 전담 태스크포스'를 두려고 한다는 소리가 나온다.

물론 정부의 바람대로 모든 공격 가능성을 걸러낸다든지 이번 한미FTA를 계기삼아 ISD를 '쓴 약'으로 받아들이고 우리 행정과 사법 제도를 더 선진적으로, 국제적 표준에 맞게 고쳐보는 것도 의미가 깊을 것이라고 낙관론을 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작은 이익을 위해 한 국가의 사법주권과 행정효율성을 모두 포기한다는 것은 과하다는 소리가 적지 않다. 실제로 심상정 의원은 ISD 도입은 위헌이라는 주장을 이미 연초부터 펴고 있다.

결국 위헌론까지 나오는 ISD는 이번 국회 비준에서 특히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