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권의 책 선보인 前 시사저널 기자 이문재 시인


시인 이문재(48)는 그의 본의와는 별개로 문학기자들이 꺼려하는 취재원 리스트에 이름 올라 있다. 이씨 역시 '시사저널' 문학담당 기자로 시작해 시사저널 취재부장까지 거친 '만만치 않은' 인사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시사저널을 떠나왔으므로 기자생활을 접은 지 채 2년이 못 된다. 그런데 최근 소위 '시사저널 사태'가 벌어져 시사저널로부터 더 자유로울 수 없는 몸이 됐다. 이제 이씨는 시사저널 밖에서 시사저널을 위해 펜을 들고 있는 모양새다.

이와 함께 이씨는 계간문예지 문학동네 편집위원으로 활동한지도 2년 남짓하다. 게다가 요즘은 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예창작과 초빙교수로도 활동 중이다. 그 와중에 시도 쓰니, 이씨는 엄살이 아니라 정말 숱한 밤샘 작업들을 일상으로 견디고 있었다.

이씨가 이렇게 바쁜 이유도 결국 타고난 '글쟁이'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씨가 최근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에 연재했던 글을 묶은 시모음집 '꽃이 져도 너를 잊은 적 없다'(이레)와 느림에세이 '이문재 산문집'(호미) 그리고 시사저널 전·현직기자들이 함께 쓴 '기자로 산다는 것'(호미)을 한꺼번에 선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다음은 이문재 시인과의 일문일답]

-최근 어떻게 지냈나.
▲ 21년동안 월급쟁이였죠. 그중 19년을 기자 생활로 보냈고, 시사저널은 2005년 5월 말에 그만뒀습니다. 요즘은 경희사이버대 초빙교수를 맡아 경희대에서 하루를 다 보내요. 제가 경희대 78학번이니 내년이면 벌써 인연 맺은 지 30년이네요.

-대학시절 류시화 시인과도 각별했다는데.
▲ 국어국문학과 동문으로 군 입대 가기 전까지 1, 2학년 내리붙어다녔죠. 야외 수업할 때면 함께 벌떡 일어나 노래도 부르고 했었죠. 가곡이나 송창식씨 노래를 많이 불렀어요. 워낙 괴짜로 놀았었죠. 당시 분위기는 창작하는 친구들이 파격적으로 굴어도 학교 선생님이나 선후배와 동료들이 막거니 비판하지 않았어요. 외려 인정해 주는 분위기였죠. 류시화씨한테는 아직도 도움을 많이 받아요.

-김훈 소설가와도 한 직장에 몸을 담았었는데, 한 문장으로 담아낸다면.
▲ 한 줄로 쓰라면 아예 안 써요. 어떻게 한 줄로 써요? 멋있는 분이죠. 김훈 선배는 10년을 같은 직장에 다녔어요. 직업으로도 삶으로 봐서도 선배에요. 이를 테면 맛있는 음식에서부터 전통문화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가르쳐 주신 분이죠.

-최근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죠. 그 사태를 바라보고 있는 언론이나 지식인 사회에서 외면하고 있는 것 같아 더 그래요. 편집권이 누구에게 있는가. 좀 더 크게 봐서 한국 언론에게 편집권이 있느냐. 시사저널 사태에서 눈 여겨 봐야 될 것은 '시사모(시사저널을 사랑하는 모임)'가 결성돼서 미디어 소비자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거예요. 아주 작은 희망이지만 대단히 유의미하죠. 언론 스스로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한 생존의식 때문에 편집권을 소중하게 혹은 순결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시사저널 전·현직 기자들과 의기투합해 '기자로 산다는 것'도 출간했는데.
▲ 쓰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았는데 서로 겹치지 않도록 하려고 십 몇 년간 애용했던 단골 술집 이야기를 썼어요. 시사저널이 최고의 매체는 아니지만 '괜찮은' 매체였고 지금도 한국 언론계에 꼭 있어야 할 매체라고 생각해요. 제가 거기 몸담았었기 때문에 실은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이야기하는 거죠.

-시사저널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되길 바라는지.
▲ 무엇보다 기자들이 빨리 편집국 복귀해서 기사를 써야죠. 경영진과 충분히 합의할 수 있을 것으로 봐요. 그 매체가 없어진다면 한국 언론은 정말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치욕스러워해야 해요. 지난 MBC PD수첩 보도도 사실 늦은 감이 있었죠.

-바쁜 기자생활하면서 어떻게 시를 써왔나.
▲ 시는 아무생각 없이 '써지니까' 써 왔다는 말이 맞을 거예요. 실은 30대 초반 넘어오면서 깜짝 놀랐죠. 내가 나를 완전히 도시에 빼앗기고 살아왔구나. 충격적이었어요. 지금이야말로 시를 써서 나를 지키고 주장해야겠구나. 그때부터 시를 다르게 생각했죠. 그때가 두 번째 시집 무렵이었어요. 낮에만 일하고 밤에는 시를 쓰자 싶었지만, 꿈 속 이야기죠. 기자생활이 비교적 자유롭지만 그래도 마감은 꼬박꼬박 돌아오고. 저는 시도 회사 편집국 컴퓨터로 썼어요.

-기자도 시인도 '알코올'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직업인 것 같은데, 소주 아니면 맥주?
▲ 맥주파죠. 술에 약해요. 소주는 반병만 마셔도 힘들어요. 그래도 술자릴 좋아하죠.

- 시는 바로 쓰는 편인가, 삭혀 쓰는가.
▲ 시 소재 만나면 바로 앉은 자리에서 다 쓰는 편이죠. 그런데 요즘은 자꾸 큰 그림을 그리려 해요. 문명, 미래, 지구 차원의 생태주의적 문제들. 그래서 관념적이거나 근본적이 방향으로 많이 가 있죠. 당분간은 생태주의적 초점의 글을 쓸 것 같아요.

-최근 나온 산문집 표제가 '이문재 산문집'이다. 싱겁다면 싱거울 수 있는데?
▲ 2년간 문학동네 편집주간이었기에 책 만드는 사람들의 고통을 알죠. 그래서 출판사 뜻대로 맡겼더니 '이문재 산문집'으로 표제가 나왔더군요. 실은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로 가려 했었죠. 제 요즘 삶을 대변하기도 하고, 바쁘게 사는 사람들에게 일침이 될 것도 같아서. 다음 판은 후자를 표제로 쓸 거에요.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굉장히 '건방진' 제목이 돼버렸어요.

-산문집을 낸 건 처음이었는데.
▲ 산문 에세이 장르가 실은 가장 힘들죠. 편집자들이 “이문재에 대해 다 알았다”고 그러더군요. 시에는 시인이 숨을 곳이 많은데 산문집은 숨을 곳이 없어요. 제일 멋있는 글쟁이는 산문집을 안내는 문인 같아요.이 산문집은 느리고 단순하게 살라는 생태론적 메시지가 많아요. 60~70년대 시골이 주 배경인데 도시에서 시멘트 아스팔트만 밟았던 이십대 친구들에게는 외계인 같은 이야기죠. 그래도 고민해 봐야 할 내용이라 생각해요.

-요즘 유명시인 위주로 시모음집이 많이 나오는데, '꽃이 져도 너를 잊은 적 없다'만의 차별화라면?
▲ 너무 서정적이거나 아름답기만 한 시는 배제하려 했죠. 가능하면 '산다'는 것을 뒤집어 보게 하는 시들을 뽑으려 했어요. 특히 제가 주안점을 둔 것은 단순히 시를 설명하기 보단 제 체험을 집어넣어 다르게 보려고 애를 많이 썼어요. 제 해설도 또 다른 시 정도로 자리매김 하는 거였죠.

-시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 시는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죠. 글 쓰는 행위처럼 자기를 둘러보고 세계를 성찰할 수 있는 행위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무엇엔가 홀리고 뺐기고 2차적 소비자가 되기 마련이죠. 무엇인가 쓸 때야 말로 고스란히 우주의 중심이 되니까. 시가 반인간적인 문명에 대해서는 무기였음 하고, 상처받고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위무하고 치유하는 악기였으면 좋겠어요.

▲이문재 시인은 1959년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2년 '시운동' 4집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김달진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산책시편', '마음의 오지', '제국호텔'이 있고, 산문집으로는 '내가 만난 시와 시인'이 있다. '시사저널' 취재부장과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지금 경희대와 경희사이버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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