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폭로…무차별 언론공격에 '침몰'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전격적인 대선 불출마 선언으로 인해 많은 정치부 기자들이 졸지에 '양치기 소년'이 되었다.그동안 신문 지상에 수없이 나왔던 'DJ-정운찬 밀약설' '정운찬-손학규 손잡는다' '범여권후보 정운찬 낙점' '정운찬 제 3신당창당 임박'등이 모두 졸지에 소설이 되어 버렸다.

과연 정 전총장은 처음부터 정치에 뜻이 없었는가?결론은 '아니다'. 정 전 총장은 분명 대선주자로서의 의지를 불태웠고 그 방법론으로는 6월초쯤 신당(가칭 선진 미래당) 창당을 준비했다. 정 전 총장 중심의 의원들과 시민단체 인사들은 지난달 22일 오후 대전 리베라호텔에서 1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결의대회까지 개최했다.

당시 이들은 “범여권의 정계개편 작업이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대전, 충청 등 중부권이 중도혁신의 새로운 정책정당 건설을 추진하기 위한 동력을 제공하자는 목적에서 모였다. 사실상 정 전 총장의 정치참여에 대비한 지원조직”이라고 밝혔다.

또한 “정 전 총장이 정치참여를 선언할 경우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추진한다는 구상 아래 가급적 5월 중순까지 전국 16개 시도에 유사한 조직의 본부를 꾸린 후 6월초 정책중심 정당을 표방하는 신당 창당 계획까지 갖고 있다”고 속내도 드러냈다. 이날 행사에서는 이창복 전 의원과 유재인 대전대 교수가 정책정당 건설 및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강연을 했고, 열린우리당 양승조, 통합신당모임 박상돈, 무소속 권선택 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처럼 외각조직을 강화하며 적극적인 모션을 취하던 정 전총장이 갑작스럽게 불출마 선언을 한데 대해서는 의견들이 분분하다. 우선 정 전 총장이 밝힌 대선 불출마 이유는 역량 부족이다.
"국가의 미래와 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지지해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는 정치세력화 활동을 통해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태껏 그런 세력화 활동을 이끌어 본 적이 없는 저는 국민들 앞에 정치 지도자로 나설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한발 뺐다.불출마 선언으로는 뭔가 부족함이 많아 보이는 대목이다.

정 총장의 불출마선언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역량부족'보다는 '의지박약'으로 보인다.
불출마 선언 즈음에 터져나온 온갖 확인되지 않은 루머들이 터져 나오면서 정 전 총장은 적잖이 당황 한 것으로 보인다.특히 정 전 총장이 “정치를 할 만한 돈이 없다”는 이야기에 열린우리당 정대철 고문이 “돈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 걱정 마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심기가 많이 불편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당시 정 고문과 모임을 함께 했던 열린당의 통합추 의원에 따르면, 정 전총장은 경기고-서울대 선배인 정 고문과 만난 자리에서 "정치를 할 만한 돈이 없다"며 현실적인 애로사항을 토로했고, 이에 정 고문은 " 돈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며 정 전 총장에게 결심을 촉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당사자인 정 전 총장은 “만난 사실은 있으나 돈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라는 입장. 대선 출마를 선언하지 않았음에도 정치권에선 연일 정 전 총장을 향한 비판의 논평들이 쏟아져 나온것도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했다.'충청 지역주의의 부활을 노린다' '정치자금에 문제가 있다' 는 비판은 평생 학자로 살아온 정 전 총장으로선 이를 견뎌내기가 만만찮았을 법 하다.

특히 대선이 다가갈수록 점점 강도가 센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접으려면 빨리 접는 게 좋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게다가 최근 논란이 불거진 '3불 정책'과 관련 범여권 진영의 정서와 정 전 총장의 입장이 달랐던 점도 적잖은 부담을 겪었던 것 같다.

정 전 총장 측근들도 시간이 흘러 갈수록 힘을 잃어갔다. 초반전의 정 정총장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은 사라지고 “나오려면 '오픈프라이머리'를 거쳐라”는 등의 이야기가 흘러 나왔기 때문. 한발 더 나아가 이들은 열린우리당 초, 재선의원 5명에게 불출마선언전에 러브콜 보냈으나 부정적인 대답을 들었다.

정 전 총장의 제자 일부를 포함한 정운찬 지원 그룹인 김영춘, 송영길, 임종석, 김형주, 우상호 의원에게 “우리에게 와달라는 제의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정 전 총장이 확실하게 깃발을 든 것도 아닌데, 현역의원들이 무엇을 믿고 그런 결단을 내리겠느냐”고 답변했다는 것이다.

항간에 떠도는 정운찬 전 총장의 '양자설' '스캔들'등도 불출마선언을 한데 일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3족이 '멸문지화'를 당할 각오가 되어있지 않으면 대권경쟁에 함부로 뛰어들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대선캠프에 모여든 책사들에게도 적용되는 논리이자 법칙이다. 대통령 선거전은 전형적인 고위험 고수익 프로젝트다.

출혈 없이 이익만 챙기겠다고 작심한 부류는 여지없이 중도탈락한다. 고건 전 총리가 그랬고, 이번에는 정 전 총장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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