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작 '반야' 낸 장편 전문 송은일 작가

인사동은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서울에서 몇 안 되는 곳이다.

큰 길은 옛 것을 찾는 현대 사람과 현대건물들이 즐비하지만 골목골목에는 옛 정취 그대로 남아있다. 골목으로 발을 딛는 순간 다른 세계에 온 듯 한 느낌마저 든다.

송은일 작가와의 만남도 그랬다. 인사동 골목 어귀의 찻집에서 만난 송은일 작가는 어스름하면서 고즈넉한 그 곳과 많이 닮았다. 애써 꾸미지 않고도 멋이 나는 옛 것처럼, 송은일 작가는 세월이 만들어준 소탈한 멋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또 하나의 장편소설, 그녀 아닌 사회의 선택

▲ 송은일 작가

언제부턴가 송은일 작가 옆에 장편 전문 작가라는 명칭이 붙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의 발표한 작품 대다수가 장편소설이다.

“제가 장편을 고집한다는 것은 오해에요. 제가 장편을 쓰는 것은 현실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죠” 장편 전문 작가라는 타이틀을 거부하는 송은일 작가는 작가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신춘문예에 당선되기만 하면 작가가 되는 줄로만 알았죠.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어요. 신춘문예로 등단한 신인 대부분이 작품하나 내보지 못하고 사라지고 있죠. 지방 일간지의 경우는 더해요”

현실의 어려움 앞에 그녀도 예외는 아니었다. 광주일보 신춘문예에서 단편으로 등단한 송은일 작가는 오랫동안 작품을 발표하지 못했다.

“흔히 말하는 시류를 표현하기에는 단편이 좋은데 신인이 단편을 쓰기란 쉽지 않아요. 의뢰가 안 들어오니까요. 그래서 아직 얼굴을 알리지 못한 작가들이 장편을 쓰는 거에요. 장편은 자신을 알리고자 하는 하나의 방편인거죠”

장편 전문 작가라는 말이 긍정적인 의미만은 아니라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 그녀에게서 작가로서의 삶의 고충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는 금세 웃으며 “이야기 짓는 것이 재미있다”고 말한다. 글쓰기가 유일한 취미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당당하게 맞서는 모습에서 현실을 발견해

송은일 작가의 작품을 보고 사람들은 '내용이 비현실적이다', '인물들이 하나같이 아름답고 멋있느냐'고 말하기도 한다. 이번에 나온 신작 '반야'도 그런 소리를 들었다. 송은일 작가도 이런 반응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작가의 말'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현실적인 것에 나약함이 포함됐다. 활자매체와 영상매체 구분 없이 인물들은 고충을 겪을 때마다 힘없이 쓰러졌고 사람들은 '현실적'이라며 환호했다. 송은일 작가는 그런 상황을 거부한다. “제 작품은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에서 좀 더 인간애와 동지애가 강조돼요. 다른 것들에 비해 인물들이 더 씩씩할 뿐이지 비현실적인 것은 아니에요”

그런 비판은 송은일 작가의 소설에서 여성이 두드러지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녀의 소설에서 여성이 힘을 가지고 있고 아름답게 표현돼있기 때문이다. “저는 고통을 딛고 일어서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 속에 여성들의 삶이 좀 더 씩씩해지길 바라는 제 소망도 들어있죠. 저는 여성성이 강화돼야 여성의 힘이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내면의 힘을 외면으로 나타내다보니 결과적으로 아름답게 표현된 것뿐 이죠”

사회와의 타협 여부를 떠나 인물들이 사회 안에서 자기 자신을 획득하는 것이 강해지기를 바란다는 송은일 작가의 생각은 소설 전반적으로 잘 녹아있다.

◆번뇌의 인물 반야, 자유가 통하는 세상을 꿈꾸다

신기를 가졌다는 이유로 평범한 삶을 살 수 없었던 반야는 끊임없이 번뇌하는 인물이다. 신기를 가진 무녀로서의 삶과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삶 속에서 충돌하는 반야에게 사람들은 자신의 짐을 털어놓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그것을 알면서도 반야는 신기로 세상과 맞서려 한다. 하지만 신기는 영원하지 않았고 반야는 힘이 없는 천민일 뿐이었다.

'모든 인간은 동등하고 자유로우며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가꿀 권리가 있다는 그 쉬운 원리가 통하는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했다'라는 어귀는 작가의 생각을 극명하게 나타낸다. 예나 지금이나 강한 사람들에게나 살기 좋은 세상이다.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

독자들은 때론 작가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사회 역시 그렇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대접받고 작품성과 상관없이 책을 많이 출간하는 세상이다. 소위 송은일 작가는 중앙 문예지에 속하지도, 베스트셀러를 만들지도 못한 작가다.

이 시대 작가로 살아가는데 어려운 여건을 가진 편인데 그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금 한국 문단은 소수 문인이 독보적으로 문단을 이끌어가죠. 이런 세태에 박수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렇게라도 한국 문단이 유지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에요. 이것을 극복하고 다수가 함께 공존하며 사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작가 스스로가 깨우쳐야 해요”

한번 마음먹은 일은 끝을 본다는 송은일 작가의 뚝심은 그녀를 작가로 만들었고, 힘든 여건 속에도 글 쓰는 것을 포기하지 않게 만들었다. 큰 사회적 대의를 가지고 문학의 길을 걷고 있지 않다는 송은일 작가. 다만 '내가 할 수 있고 나를 표현하는 것이 글쓰기' 라고 말한다.

“만약 제가 사회에 기여를 한다면 글쓰기를 통해서일 테고, 저를 가꾸는 일 역시 글쓰기를 통해서 이뤄질 테죠”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