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코리아=오만석 기자] 양해각서(MOU) 체결을 목전에 둔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가 인수자금 일부에 대한 건전성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그룹이 인수자금으로 제시한 항목 중 프랑스 나티시스 은행에 예치한 것으로 밝힌 1조2000억원에 대한 재검토 여부를 두고 채권단 내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러한 논란은 현대그룹이 시장의 예상을 1조원 이상 훨씬 뛰어넘는 인수금을 제시한 점, 채권단의 내부 심사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은 점 때문에 더 증폭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현대그룹이 제시한 나티시스 은행 예치금 1조2000억원이 실제로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이를 놓고 심사 당일 채권단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지만, 워낙 큰 액수에 현혹돼 도장부터 찍은 게 아니냐는 말들도 나오고 있다.

때문에 지금 채권단 내부에는 하루 빨리 매각을 추진하고 싶어하는 그룹, 졸속매각 의혹 때문에 몸을 사리고 있는 그룹, 이렇게 두 그룹이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현대그룹이 '현대상선 프랑스 법인의 예치금'이라고 설명한 거대한 자금을 총자산 33억원의 현대상선 현지법인이 보유하고 있다는 주장이 쉽게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주주협의회(채권단) 및 매각주간사는 "해당 자금에 대한 재검토는 없을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낸 바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주주와 주간사들이 자사 이익 챙기기에 바빠 본계약을 서두르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초 업계는 현대건설의 기업 순가치를 4조원 가량으로 보고 이를 크게 상회하지 않는 수준에서 인수 가격이 결정될 것으로 보았다. 또 계열사들을 통한 현금 확보 능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현대자동차가 인수전에서 승리로 끝날 것으로 대부분 예측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결과는 정반대였다. 현대그룹은 최종 입찰제안서에 현대자동차보다 무려 4000억원 가량이 더 많은 5조5100억원을 제시, 다른 평가항목이 다 머쓱할 정도로 통 큰 돈다발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 성공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인수가가 지나치게 부풀려졌다'는 점과 '외부투자 비율이 필요 이상으로 높다'는 점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현대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나오자마자 그날 관련주가 일제히 하향세를 탄 것도 이런 우려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채권단 멤버중에서 외환은행은 현대건설 매각 대금을 배당 등의 형태로 챙기려는 의도로도 본계약을 서두르는 인상이다. 매각 주간사들도 인수금액이 높아지면 수수료가 높아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인수자금의 성격은 상관없이 자금이 실제 존재하는지만 확인하는 '최소한의 검토'만 할 생각인 듯하다.

이런 심리 때문에 현대건설 매각주간사들은 지난 19일 해당 프랑스은행 예금에 대한 잔액증명서를 은행으로부터 발급받았음을 복수의 채널을 통해 확인했기 때문에 "재검토는 없을 것"이라고 공식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반면 정책금융공사, 산업은행 등 일부 주주와 매각주간사는 프랑스 은행 예치자금의 적정성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공적자금 등 3조원 가량의 현금을 투입해 정상화시킨 현대건설인 만큼 '졸속매각'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해당 자금이 실제 현대건설 인수에 쓰일 수 있는 성격인지 끝까지 규명해야 한다는 것.

이에 대해 현대건설 노조는 현대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직후 주요 일간지에 광고를 내고 채권단에 상세 심사 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채권단이 '돈의 논리'를 우선시했음을 감안하더라고, 경영권을 넘겨주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들을 제대로 살펴봤는지 등을 확인하자는 것이다. 양측의 양해각서 체결 시한인 이달 말까지 채권단으로부터 답변이 없다면 노조는 실사 거부 등 인수과정에 필요한 절차에 협력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현대그룹은 현재 논란이 되는 1조2000억원 규모 자금에 대해 주식매매계약(SPA) 완료 후 구체적 내역을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금융권 및 업계에서는 현대그룹의 이같은 반응은 최소한 MOU라도 체결되면 자금 출처에 약간의 문제가 있더라도 매수자 측에서 계약을 파기하려 들기 쉽지 않음을 염두에 둔 것 아닌가 해석하고 있다.

만약 채권단이 스스로 밝혔듯이 '공정하고 객관적인 심사'로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 것이라면 MOU 전에 구체적인 심사 내역을 공개하는 것이 순리인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 역시 이러한 잡음과 논란이 불분명한 재무구조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 자금 출처와 용처에 대한 정확한 청사진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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