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원 명분 위한 회동에 불과…손학규, 체면 세울 수 있을까


[투데이코리아=임요산 칼럼] 영수회담 개최를 놓고 여야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야당과의 대화가 없다는 여론을 의식해 지난 1일 신년 좌담회에서 '못 할 것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작년도 예산안 단독 처리에 대한 사과나 유감 표명 없이는 응하지 않겠다고 뻗대고 있다.

영수회담이 무엇인가. 독재정권의 유산이다.
독재자가 중대한 정치 국면에서 야당 지도자의 협조를 얻으려고 고안한 발명품이다.

청산해야 할 봉건-독재시대 용어
독재자들은 회담에서 정치적 양보를 하거나 상대의 미래가 걸린 모종의 언질을 주거나 하여 야당 지도자의 체면과 기분을 살려주곤 했다. 때론 정치자금까지 쥐어주기도 했다.

더 올라가면 영수회담은 조선시대 당쟁과도 연결된다. 송시열은 '노론의 영수'로, 윤증은 '소론의 영수'로 불렸다. 요컨대 봉건시대의 잔재이기도 한 것이다.

영수(領袖)란 말부터 고리타분하다.
본래 의복에 관련된 말이다. 영(領)은 옷이 목에 닿는 부분에 대는 깃이다. 수(袖)는 양팔을 꿰는 소매다.
옷깃과 옷소매는 옷맵시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여기서 지도자를 영수로 부르는 관행이 생겼다.

청와대가 영수회담 대신 '청와대 회동'이라고 불러달라고 언론에 주문하는 것은 옳다. 그것이 민주주의에 부합한다.

민주주의 수호천사처럼 행동하는 민주당이 독재시대 유산인 영수회담에 집착하는 것은 우습다. 혹시 이명박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비난해 온 것과 같은 맥락일까?
민주화 시대에 형식에 그치기 쉬운 영수회동이 과연 필요할까.

격 높으면 자주 만나기 힘들어
그보다는 격을 낮춰 자주 만나는 게 중도실용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를 상대하는 효과적 방법이 아닐까.

만남의 격식보다는 무엇을 논의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이 대통령이 굳이 야당에 협조를 구할 사안이라면 개헌과 과학비지니스벨트 위치 선정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개헌은 한나라당 내에서도 동력이 쉽게 실리지 않고, 민주당은 강 건너 불로 여기고 있다.
과학벨트는 민주당 안에서조차 호남권과 충청권으로 갈리어 있는 상태다.

한마디로 빅딜 재료가 마땅치 않다. 밥만 먹는 회동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회동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2월 임시국회 등원을 위한 명분을 여기서 찾기 때문일 것이다.

등원 명분 얻기 위한 회동인데
그러나 손 대표는 예산안 단독 처리에 대한 사과 또는 유감 표명을 회동의 마지노선으로 삼고 있다.
처음에는 오로지 “사과”였다가 “유감 표명도 가능”으로 한 단계 낮추긴 했지만 손 대표가 지나간 일에 집착할수록 답답한 정치 스타일만 국민에게 각인된다.

원론적으로는 만날 수 있다고 했지만 급할 것 없다는 속내를 가진 게 이 대통령이다. 손 대표의 등을 떠밀고 있는 것은 민주당을 사실상 지휘하고 있는 박 원내대표이다.

회동을 둘러싼 여야, 민주당 내부의 힘겨루기 관전 포인트는 결국 손 대표가 체면을 얼마나 살릴 수 있느냐에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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