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휴면예금관리재단 산파역 김현미 의원

말에는 거침이 없고, 내용은 진보적이었다. 하지만 저속한 표현이나 허황된 레토릭으로 치닫지 않고 콘텐츠를 충실히 제시하며 이어졌다.

김현미 의원은 열린우리당이 연이은 탈당 사태로 속칭 반토막 정당으로 대혼란을 겪고 있는 가운데서도 재벌지배구조 개선과 여성정치인 리더십 등을 연구하며 국회의원 본연의 의정활동을 펴 왔다. 지난 2월 출자총액제한 제도 완화에 강력히 반발, 정부 당국을 긴장시킨 인물이다. 법률 영역에서도 고도의 전문분야에 속하는 공정거래법에 대해 연구해 출총제 제한의 이론적 배경과 실질적 집행에 대해 감시의 눈길을 번뜩이고 있다.

최근에는 휴면예금을 활용해, 저소득층과 신용불량자 등에 대한 신용대출업, 일명 마이크로 크레디트를 현실화시킨 금융통이기도 하다.

김현미 의원을 만나 그룹(재벌) 지배 구조 개혁과 서민 금융 활성화에 대한 비전, 경제 전반에 대한 식견을 들어봤다. 아울러 여성정치인으로서 가진 포부와 사명감, 앞으로 우리 나라 여성정치인이 가져야 할 목표는 무엇이 되어야 할지 쾌도난담을 이어봤다.

-휴면예금관리재단 설치 아이디어를 어떻게 얻었는지?

▲2005년 6월 10일 서민금융보호와 마이크로크레디트를 위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IMF 체제 이후 우리 나라 은행은 살아남는 게 목표가 되어 금융'기관'이 아닌 금융'기업'이 돼 버렸다. 공공성과 공익성이 저하됐다는 것이다. 이러면서 서민들이 금융으로부터 차단되는 일마저 생겼다. 이들이 정상적 금융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양극화가 해소된다고 생각해 공청회를 열어 마이크로 크레디트를 고민했다. 재원 자련이 문제였는데, 이 공청회에서 휴면예금을 이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와 검토에 들어갔고 결실을 보게 됐다.

-현재 휴면예금 규모는 어느 정도가 되는가? 이 은행 휴면계좌 예금을 강제 출연하면 법률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까?

▲처음엔 휴면예금을 강제출연시키는 아이디어를 냈으나, 금융기관들의 반발이 심했다. 은행예금은 최종거래 후 5년, 보험은 3년이면 소멸시효가 완성돼 법적으로는 예금주의 소유가 아닌 금융기관 자산이 된다. 하지만, 이는 금융기관의 영업노력에 의한 소득이 아니라 일종의 불로소득이 아닐까?
처음엔 위헌 논쟁마저 있었지만 1년여간 설득 끝에 금융기관들이 자발적으로 최대한 많은 액수를 '자발적으로' 출연하기로 매듭지었다. 약 연 1천억원 정도 출연을 예상하고 있다.

-이 재단이 향후 지원할 사업목표를 자세히 들려달라.

▲신용불량자만 300만이다. 이렇게 금융으로부터 소외된 계층이 정상적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금융서비스를 할 것이다. 무담보, 무보증으로 서민들에게 대출을 할 예정이다. 그리고 저소득층 창업 취업 등에 신용대출사업을 할 것이다. 이를 가리켜 '마이크로 크레디트'라고 한다.

또 저소득층이 보험에 들어 뒀는데, 일시적 사정으로 보험금 납입이 어려워진 경우 자금을 단기 지원, 유지하도록 돕는다. 마이크로 인슈어런스라고 새롭게 떠오르는 부분이다. 이런 경우 보험을 해약하게 방치하면, 결국 사회부조제도로 처리해야 하므로 사회부담이 더 커진다. 이를 미연에 예방하자는 취지다.

-재단의 관리, 구성은 어떻게 이뤄질까?

▲재단법인으로 설립하며, 이사회는 15명으로 구성한다. 이사장, 감사 1명, 그리고 재경부 복지부, 노동부, 금감위에서 차관급이 각각 나오고, 업계와 민간에서 각기 추천을 받는다.

또 재원 출연과 투명한 운영이 문제인데, 국회에 매년 전체 보고를 하게 해서, 국민들의 감시를 받게 할 것이다. 금융기관들이 최대한 많은 출연을 하도록, 잘 운영되도록 국민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바라봐 주면 좋겠다.

-재단 예산으로 저소득층이나 신용불량자에게 '패자 부활전' 기회를 주는 취지는 좋지만, 자칫 도덕적 해이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또 지원 대상이 대출 등을 제대로 상환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 보이기도 합니다. 혹시 이런 예산 잠식 가능성은 어떻게 보는가?

▲무보증으로 하게 되니까, 도덕적 해이 아니냐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는 일종의 고정 관념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은행가'라는 무하마드 유노스 박사의 자서전을 봐도 도덕적 해이 즉 담보도 보증도 없이 대출했다가 떼이면 어떻게 하느냐는 우려를 깨기가 힘들었단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 저소득계층 대출이 오히려 회수율이 더 높다는 조사가 있다. 우리 나라만 해도 사회연대은행, 부스러기사랑나눔회에서 이런 사업을 시도하고 있는데 대출금을 정상적으로 갚는 비율이 90%가 넘는다. 그러니 회수가 안될 거란 우려는 '편견'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발의부터 통과까지 2년이 흘렀고, 또 그 와중에 홍문표 의원안, 남경필 의원안 등 유사법안도 몇 건 제출된 것으로 안다. 이렇게 처리가 늦어진 배경이 무엇인지, 또 막판 조율에서 유사법안들과 어떻게 처리를 했는지 과정이 궁금하다.

▲유사법안들은 휴면예금을 복지재원으로 활용하자는 의견들이어서 내가 제출한 서민금융에 특화된 안으로 조율을 거쳐 타협을 끌어냈다. 엄호성 의원의 법안과는 갈등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엄 의원은 휴면예금을 예금주가 가진 다른 은행 계좌를 찾아 그쪽으로 이체해 주자는 안이라 이를 예산으로 활용하고 싶어하는 내 법률안과 충돌이 컸다. 결국 6개월간 한시적으로 엄 의원의 아이디어대로 30만원 이하 휴면예금은 주인을 찾아 이체처리를 해 주고, 이후로는 내가 제안한 휴면예금관리재단 예산으로 쓰기로 했다.

-지난 2월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완화를 골자로 하는 공정거래법이 통과됐을 때 강력히 반발했다. 출총제 제한에 대한 의견, 재벌 개혁에 대한 소신에 대해서 피력해 달라.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완화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이런 이유다. 우리나라 재벌기업의 지배구조 핵심이 순환출자이다. 순환출자 때문에 기업 회장들이 소유지분 자체는 4%대에 불과하지만 백퍼센트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순환출자문제는 경제 민주화를 얘기할 때 핵심적 쟁점이다. 재벌그룹의 불법,탈법 상속이 부실경영의 원인이 된다. 또 기업 오너들은 속성상 다소 무리한 확장을 할 수밖에 없다. 이를 감시, 통제해야 하는데 순환출자를 방치하는 상태에서는 어렵다.

기존처럼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둔다고 해서 기업 지배구조를 원천적으로 개선할 수는 없다. 다만 악화는 막을 수 있는 무기였다. 그러나 공정거래법 개정을 하면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장치는 마련하지 않고 출자총액제한제도만 풀어주는 결과를 만들어 놨더라. 이에 반발한 것이다.

이런 반대 운동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반대해 나갈 것이다. 정부당국이 원칙없이 대기업 뒤따라가기 정책을 택한 것에 대해 이의제기할 것이다. 참여정부가 탄생할 당시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린 처사다. 이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예전에 백분 토론에 출연했을 때, 여성적 리더쉽을 강조하신 적이 있다. 포용적이며 깨끗하고 보살필 줄 아는 정치를 여성적 리더쉽의 특징이라고 말씀하신 걸로 기억한다. 여성적 리더쉽에 대한 의원 개인의 의견을 듣고 싶다.

아울러, 2007년 대선 혹은 가까운 장래에 여성 정치인이 청와대에 입성할 가능성이 과연 있겠는지, '잠룡'으로 언급되는 박근혜 의원이나 한명숙 의원을 예로 들어 의견을 듣고 싶다.

▲여성정치학에서 보살핌의 정치, 배려, 관용,모성과 연결지어 여성리더십을 얘기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내 생각엔 보살피고 이런 부분에만 집착하는 건 여성리더십의 진면목이 아닌 것 같다. 정치인은 자원봉사자와는 1차 역할이 다르다.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퍼스털리티간의 교감에 그치는 건 정치인 역할은 못한 것 아닐까?

정치인은 이런 차원을 넘어서서 법률과 정책, 예산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본다.개인적 봉사활동도 물론 훌륭한 영역이지만,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더라도 막상 제도와 법과 예산을 편성할 때엔 타인의 삶을 돌보지 않는 정치를 하는 건 위선이라는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정치적 태도는 '위선'이라고 본다. 유세를 할 때마다 가난한 사람들의 손은 잡아주지만, 실질적으로 복지 정책에 대해 박 전 대표는 어떤 정책이냐? 감세 정책 아닌가? 이는 여성정치인으로서는 그저 유권자를 현혹하는 것 아닌가?

여성정치인은 여성적 리더십, 섬김과 봉사의 정신을 실제 정책으로 반영하는 것까지도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한명숙 전 총리는 박 전 대표와 대비되는 인물이다. 한 전 총리는 따뜻한 배려, 헌신, 약자를 위한 정책의 제도화와 예산 투입에 모두 신경쓰는 정치인이다.

카메라 앞에서의 제스처는 따뜻하지만 막상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 예산 편성엔 냉정한 박근혜 전 대표와는 다르다고 본다.

-근래에 박근혜 전 대표를 이순자 여사와 동급 아니냐고 발언했다가 강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 해프닝에 대한 소견을 들려달라.

또, 오랜 세월 '정당의 입' 역할인 부대변인, 대변인을 하면서 '말의 정치'에 대해 누구보다 노하우가 풍부하리라 생각한다. 막말과 위트 사이에 균형을 잡는 나름의 방법이 있나?

▲박 전 대표와 이 여사는 각각 박정희 대통령 시대와 퍼스트레이디 대행과 전두환 대통령 집권기 퍼스트레이디였다. 쿠데타 세력이 세운 군사정부의 퍼스트레이디 역을 했다는 점에서 유사하지 않나? 둘이 동급이라고 부분에 박 전 대표 지지자들이 기분나빠 한다면, 그럼 이순자 여사쪽이 박 전 대표만 못하단 소리인지. 그럼 이순자 여사쪽에선 기분이 좋을까? (웃음)

아울러 모 언론에서는 이 발언을 막말로 지칭했는데, 다른 언론사 조사결과로는 이 발언이 막말이 아니라는 의견이 오히려 압도적으로 높았다. 막말과 위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는 건, 글쎄, 잘 모르겠다. 어렵네. (웃음) 다만 공격을 하더라도, 핵심은 짚지만 저속하지는 않게 하는 게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요새 대학생들은 보수화 경향이 뚜렷하고 자기 계발이나 취업 준비 외에는 관심이 없다고 한다. 인생 선배로서, 그리고 민주화를 위해 고민하다가 정계에 일찍이 투신한 입장에서 이런 세대에 대해 논평해 달라. 또 6.10항쟁 20주년을 맞이해, 젊은이의 사회참여 문제에 대해서도 한 말씀?

▲우선 젊은이들이 더 이상 민주화 이런 걸 밤새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됐다는 징표 같아서 한편 뿌듯한 마음이 들고, 대신 대학 강연 등에서 젊은이들을 만나면 몇 가지 당부를 하게 된다.

토익 공부도 좋고 시쳇말로 '스펙'을 다듬는 것도 중요하다. 열심히 공부하고 자기 계발을 하도록 해라.

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사회,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세상은 불행하다. 이런 세상이 되지 않게 노력해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항상 생각하라는 주문을 한다.

또, 분단국가 현실을 항상 자각하고 민족문제에 대해 고민해라. 우리가 지금 풍요롭게 누리고 살지만 이런 것이 남북관계 경색으로 일거에 흔들릴 수 있지 않나? 이런 민족문제에 대해서도 항상 관심을 열어 두라고 부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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