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은 왜 ‘남쪽 눈에만 사과로 보이는 수준’마저 거절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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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코리아=국희도 칼럼] 지난 1일 북한 국방위원회가 한달 전(5월9일) 있었던 남북의 베이징 비밀접촉에서 남측이 자기네대표단에게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해 “사과를 애걸했다” “돈봉투까지 건넸다”고 폭로한 후 정가는 물론 사회에 한차례 회오리바람이 몰아쳤다.

우리 사회가 지난 며칠간 혼선을 빚었던 만큼 ‘폭로의 실체’를 제대로 정리해 볼 시간이 됐다. 북한의 감정적이고 과격한 표현에 현혹되지 말고 팩트만 정리해 보자.

우선 ‘돈봉투’ 발언은 우리가 정한 장소로 나온 북측 대표들에게 호텔비 교통비 등으로 전달한 ‘거마비’에 불과한 걸 북측에서 '뻥튀기'했다는 사실을 언론과 여론이 별 이의없이 받아들인 것 같으니 그냥 넘어가도 되겠다.

그렇다면 ‘사과를 애걸했다’는 표현 속에 담겨있는 팩트는 무엇일까.
즉 비밀 접촉에서 우리 정부는 북측에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해 ‘일정 수준의 사과’를 요구했고, 북한은 그걸 거절했다는 것까지는 분명한 사실인 듯하다.

그런데 북한은 왜 이런 요구를 거절했을까?
그들의 표현대로 “실제로 사과하라는 건 아니고, 남쪽에서 볼 때만 사과로 보이는 수준의 사과”를 남측으로부터 요구받았다면, 남북대화의 성사가 우리보다 더 필요하고 급했던 북한인 만큼 웬만하면 받아들일 만도 했을 법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거절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북한은 지난해 11월 도발한 연평도 포격 사건이후 “경제난에 빠진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적 원조를 받으려면, 남북대화부터 해라, 남북대화를 먼저 해야 북미대화도, 6자회담도 할 수 있다”는 미국과 중국 및 국제사회의 압력을 계속 받아왔다.

때문에 올초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 측에 남북대화를 시작하자며 평화 공세와 대화 제의를 계속해 왔다. 심지어 "천안함-연평도 사건도 의제에 올려놓고 만나자"고까지 했다.그걸 이번 북한 국방위원회식 표현법을 빌려서 표현하자면 “남북대화의 개시를 지속적으로 '애걸'해 왔다”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 저자세를 보여온 북한 당국이 정작 남북대화의 성사를 위한 비밀접촉에서는 정반대의 태도로 나왔다.
게다가 비밀 접촉이 결렬된 후 외교관례상 지켜져야 하는 비밀협상 내용과 참석자 명단까지 공개하는 비상식적 행동으로 아예 남북대화의 판까지 깨겠다는 행위까지 서슴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이유는 사실 간단한다. 우리측 제안에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측의 사과’가 분명하게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이번 비밀접촉 폭로 사건의 가장 중요한 팩트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도발임이 너무도 분명한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해서는 그들도 사과하는 모양새를 충분히 취할 자세가 돼 있었다. 하지만 천안함 폭침사건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그들은 여전히 천안함 침몰사건은 자신들과 전혀 관계가 없는 사건이며, 남한당국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해 왔으며, 국제적으로도 그러한 논지를 '일관되게' 강변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측이 “모양새만 그럴 듯하게 사과의 형태를 취해달라”고 했더라도, 그래서 북한이 사과하는 시늉만 취했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검사가 피의자에게 “형량을 절반으로 깎아줄 테니(아예 집행유예로 풀어줄테니) 살인을 한 건 너라고 인정만 하라”고 ‘꾀는’(애걸하는 것이 아니다) 플리바게닝과 같은 이치다.

북측이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사과를 하게 시킬 수 있다면, 그 표현이 '남쪽에서 볼 때만 사과로 보이는' 두루뭉술한 표현이라고 해도 결국은 ‘자신들의 천안함 사건 개입’을 최초로 시인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북한에 동조해 천안함 폭침 사건 자체를 부인하고, ‘좌초’내지, 우리 정부의 ‘자작극’이라는 전제 아래 수없이 많은 가상 시나리오를 써온 남한내 좌파, 종북세력들의 존재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리는 일이 될 것이다.

이들 종북 좌파세력들의 카페나 블로그에 가보면 알겠지만 이들은 여전히 천안함 사건을 남한당국의 자작 날조극으로 규정하고 있다. 좌파매체들 역시 ‘적어도 북한이 한 짓이라는 증거는 없다’라는 믿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판을 깨버린 의도는 분명하다. 나중에 통일부 장관이 밝혔지만 '자신들이 먼저 제안해 이뤄진 비밀접촉'에서도 남측이 천안함 사건에 대한 사과를 전제 조건으로 요구하고 나오는 등 절대로 피해갈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택한 극단적인 몸부림으로 해석된다.

남남 갈등을 증폭시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흔들어 보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남한내 종북세력들이야말로 북한 당국으로서는 정말로 대단한 지원군이니까.
이들을 지속적으로 자극해 주는 것은 남한 사회가 민주화된 이후 그들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대남 공격 방법이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 처음부터 거짓말을 해온 북한으로서는 그 거짓말이 억지로 사실로 믿어질 때까지 거짓말을 계속해야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결국 우리 정부는 천안함 폭침사건에 대해 남북 당국간의 직접 대화로는 어차피 해결되지 못할 사건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대북 전략을 짜야 한다.

즉 우리 정부가 과연 북한과 직접 대화할 필요가 생기거나, 의지가 있다면, 천안함 사건에 대한 그들의 진실 고백에 대한 기대와 사과는 아예 포기하고 대화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게 현재 정부가 북한에 대해 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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