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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코리아=박대호 기자] "어디로 가라는 말인지. 난 갈 곳이 없어. 갈 곳이…"

1일 오후 11시께 '노숙인 퇴거 조치'가 예정된 서울역 광장에 한 노숙인이 털썩 주저앉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허름한 옷차림의 그는 앞으로 3주간의 유예기간이 남았지만 그때까지 마땅한 거처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걱정하는 눈치였다.

노숙인 황모(31)씨는 "22일부터 노숙이 금지된다고 하지만 지금도 서울역에는 아예 못 들어 간다"며 "만약 서울역사 내에서 우리 모두가 밖으로 나가야 한다면 매일 이곳에 오는 밥차도 없어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서울역은 이날 폭염과 호우를 고려해 노숙인들의 강제 퇴거 조치 시행을 22일로 연기하기로 했다. 코레일은 "최근 노숙인에 대한 민원이 급증하고 노숙인 음주와 성추행 등 사고가 증가함에 따라 노숙인을 강제 퇴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전국홈리스연대 등 20개 시민단체들은 앞서 이날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숙인을 테러 위협 세력으로 둔갑시키고 빈곤의 문제를 질서와 규범의 문제로 호도하고 있다"며 "퇴거 조치를 즉각 철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이후 서울역 광장에서 천막 농성을 벌이며 자정께가 다 되도록 투쟁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천막 주변 곳곳에 자리를 잡고 누워 있는 노숙인들이 100명 남짓 됐다.

쪽방촌에서 생활하고 있는 A(43)씨는 현재 노숙인은 아니지만 노숙인 퇴거 조치 소식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농성장을 찾았다고 했다. A씨는 "노숙인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몇몇 노숙인들 때문에 갈 곳 없는 사람들까지 밖으로 내몰면 어떡하냐"고 호소했다.

서울역사 내에 머물지 못하고 지하철 서울역 6번과 7번 출구통로로 나와 벽 쪽으로 머리를 대고 잠을 청하려는 노숙인들 20여명도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만난 한 노숙인은 서울시의 임시주거와 일자리 지원 대책 등에 대해 "정부는 동절기에도 특별자활근로 인원을 늘렸다가 동절기가 끝나고 나자 예산 부족이라는 이유로 인원을 확 줄였다"며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반면 정부가 마련해 주는 임시주거지로 거처를 옮기려고 상담센터에 문의하는 노숙인들도 다소 있었다.

노숙인들을 상대로 상담을 진행하는 구세군브릿지상담보호센터 관계자는 "거주가 필요한 노숙인들을 상대로 자활근로 등을 소개시켜 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며 "1일 오후 3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상담을 진행했는데 대략 60여명의 노숙인들이 상담을 받으러 왔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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