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도.jpg
[투데이코리아=안병도 교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무상급식 서울시민 주민투표가 끝났다. 최종 투표율 25.7%로 주민투표 개표하한선인 33.3%에 못미쳐 투표함을 개함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이번 주민투표에 참가한 215만7000여명의 의사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영원히 어둠 속에 묻히게 된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시장을 지지한 유권자수가 207만5000여명이었으니 그보다 8만여명이 더 많은 주민의 의사표현이 묵살된 것이다.

이번 주민투표 과정에서 오세훈 시장은 차기대선불출마의 선언에 뒤이어 서울시장직까지 걸었다. 주민투표의 이슈를 시장신임론으로 끌어 올려 투표율을 높여 보려는 안간힘이었지만 결국 역부족이었음이 드러났다. 그런데 투표가 끝난 후, 여당 대표는 25.7%의 투표율이 ‘사실상의 승리’라며 투표반대 운동을 전개한 야당측에 공세적 입장을 보였다.

여당대표의 논리는 이렇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시장은 총유권자의 24.8%의 득표를 거두었다. 이번 주민투표에서 야당은 지지자에게 투표불참을 호소하여 야당안을 지지하는 사람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결국 이번에 투표에 참여한 사람은 오세훈시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고 그 수가 지난해 열린 6.2 지방선거 지지자보다 많으니 ‘사실상의 신임이며 승리’라는 것이다.

여당대표 논리의 타당성을 따지기 전에 현재의 주민투표 제도의 법리적 모순점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주민투표에서 개표 하한선을 33.3%로 둔 것은 주민투표의 남발로 인한 정치적 행정적 비효율을 견제하기 위한 입법정신에 기초한 것으로 안다. 특정 사안에 대해 적어도 주민 세명중 한명이 찬성 혹은 반대의 의사를 지니고 투표에 참석해야 그 결과를 ‘주민의 총의’로 간주한다는 취지일 것이다. 세명중 한명이라는 기준에 법리적 근거는 없으나 일반적 재보궐 선거에서 나타나는 평균투표율 등을 고려하여 33.3%의 투표율을 개표상한선으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조항은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나 제주도지사, 하남시장 소환 주민투표처럼 주민투표에 연관된 특정주체가 투표무산을 위한 불참운동을 벌일 경우, 본래의 취지와 달리 주민투표 무산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주민투표 현안과 직접 관계된 주체가 투표 불참 운동을 벌이면 그 반대 의견을 지닌 유권자만 투표장에 나가게 되고 결국 유권자의 33.3%라는 기준은 개표하한이 아니라 특정안의 찬성 하한비율로 왜곡되는 것이다.

실제로 2005년 열린 제주자치도 행정구역개편 주민투표의 경우, 36.7%의 투표율에, 찬성 57%, 반대 43%로 지금의 제주자치도가 성립되었지만 반대자들이 투표불참 운동을 전개했다면 20%에 못미치는 투표율로 행정개편안은 무산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처럼 주민투표를 두고 불참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될 경우, 투표참여 행위 자체가 특정 사안에 대한 지지를 의미해 민주주의 투표원칙의 하나인 비밀투표 원칙을 해치게 된다. 특히 주민투표 결정사안이 고도의 정치적 대립구도 속에서 투표가 진행된다면 투표참여가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일이 되고 만다. 반면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행위는 특정한 정치적 입장뿐 아니라, 무관심 혹은 중립의 입장을 포함하기 때문에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성향을 지닌 일반 유권자들은 ‘왠만하면’ 투표에 참여하지 않기를 선택할 것이다.

따라서 역대 주민투표에서 광범위한 투표 불참운동이 전개된 가운데 개표하한선인 33.3%의 투표율을 넘어선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 개표하한선 33.3%는 주민투표 자체를 거부하는 세력에게는 축복의 방어벽인 셈이다. 그러므로 주민투표의 남발을 막기 위한 취지라면 주민투표 청구를 위한 서명 하한선을 5%에서 크게 증가시키는 편이 투표율 하한선을 두는 것보다 낫다. 굳이 투표율 하한선을 둔다면 투표당사자의 불참운동등에 대비하여 하한선을 20% 내외로 낮추어야만 한다. 사실 이번 주민투표의 사실상 당사자였던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선거시 총투표율이 17.3%였던 점을 감안하면 20%의 하한선이 무리한 설정은 아닐 것이다.

아무튼 주민투표는 끝났고 이제 서울시장의 사퇴시점이 정치권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를 것이다. 여당 대표는 25.7%의 투표율을 근거로 사실상의 승리를 선언하고 민주당의 투표불참 운동을 반민주적 행위로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여당으로서는 10월 보궐선거가 부담스러운 만큼 내년 4월 총선에서 동반선거로 보궐선거를 치르기를 희망할 것이다.

반면 야당은 마찬가지로 25.7%의 투표율을 근거로 오시장의 즉각퇴진을 주장할 것이 명백하다. 야당 입장에서는 불확실한 미래에 승부를 걸기보다 주민투표의 여세를 몰아 가능한 빠른 시일안에 서울시장 선거를 치르는 편이 낫다. 만약 주민투표의 투표율이 오시장이 지난 선거에서 얻었던 지지율을 밑돌았다면 야당의 주장이 더욱 치열하고 공감을 얻을 수 있겠지만 25.7%의 투표율을 보인 만큼 여당의 저항 역시 견고하게 지속될 것이다.

25.7%! 여야가 서로의 승리를 주장하며 힘겨루기를 할 수 있는 투표율, 역으로 말하면 그 어느 편에도 함부로 휘두를 수 있는 칼을 쥐어주지 않은 투표율이다. 우리 국민의 오묘한 선택이 다시 한번 새롭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