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권 아주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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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 사회를 진단하는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용어가 ‘양극화’이다. 사회 양극화, 이념 양극화, 소득 양극화 등 많은 분야에서 양극화를 사용한다. 예를 들면 야후포탈 뉴스에서 양극화 용어를 사용한 건수가 약 2,040건이며, 반면 이를 비교하기 위해 ‘자유주의’란 용어가 사용된 뉴스건수는 약 300건이다. 또한 양극화란 용어는 좌우의 이념성향과 관계없이 많은 식자층과 언론들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럼 양극화는 우리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는 함축적인 표현인가? 우리가 무의식으로 사용하는 양극화라는 용어로 인해 많은 정책들이 왜곡될 가능성은 없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치권에서 여야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서민정책을 앞세우고 포퓰리즘 복지정책을 생산하는 이면에는, 많은 사람들이 양극화라는 용어로 압축하여 현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득양극화’는 오용된 표현, 실질적 소득불균형 지표는 그렇지 않아

양극화는 사전적 의미로는 ‘서로 점점 더 달라지고 멀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용어가 주는 메시지는 전체 국민들을 두 개의 진영으로 나눌 수 있으며, 두 진영은 절대 화합할 수 없다는 이미지를 준다. 양극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많은 분야 중에서 비교적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검증이 가능한 분야로 ‘소득 양극화’를 들 수 있다. 이를 통해 양극화 논리의 허상을 살펴보도록 한다. '소득 양극화'란 전체 국민들의 소득분포를 ‘잘사는 그룹’과 ‘못사는 그룹’의 두 진영으로 나눌 수 있고, 두 그룹의 소득격차는 극단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극을 달리는 두 개의 진영이 존재할 때는 절대 화합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소득 양극화로 현실을 인식하고 있으면 정책방향도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즉 잘사는 진영에 대해서는 빼앗고, 못사는 진영에게는 베푸는 정책이 정의로운 정책이란 논리적 고리를 가지게 된다.

우리 국민들의 소득분포 형태는 과연 양극화된 것일까? 양극화되었다면 중간층이 없고 빈곤층과 부자층만이 존재한다는 의미인데, 그처럼 심각한 것일까? 우리나라의 소득격차를 실증적으로 연구한 연구는 많이 존재한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소득분배 구조를 연구할 수 있는 자료가 없었으나, 지금은 정부 및 민간의 많은 자료들이 있어 국제간 비교를 손쉽게 할 수 있다. 최근에 발표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자료를 통해 살펴보자.1) 소득불균형 정도를 가장 간단하게 나타내면서 지금까지 보편적으로 사용된 지표로 지니계수를 들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소득을 가지는 상태를 0으로 표시하고, 한 사람이 모든 소득을 가질 경우를 1로서 표준화하여 직관으로 비교하기 쉬운 지표이다. 2010년에 한국의 지니계수는 0.31로 나타났다. 이 수준이 과연 양극화인가를 알 수 없으므로 단순하게 인지할 수 있는 방법이 국제간 비교이다. 지금은 자료와 방법론이 표준화되어서 국제간 수치비교는 비교적 신빙성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소득격차가 낮은 국가는 유럽이고 격차가 심한 국가는 미국으로 알려져 있다. 지니계수를 통해 유럽을 보면 독일 0.291, 프랑스 0.298, 스웨덴 0.248이며, 전체 유럽을 볼 때 0.3 수준이다. 반면 미국은 0.469로 가장 높은 수치를 보여준다. 이러한 객관적인 지표를 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소득격차에 대한 인식과 지표는 일치한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소득격차 수준은 유럽보다 심하지만 미국보다는 양호하다. 그런데 우리보다 훨씬 소득격차가 심각한 미국에서는 소득양극화란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국가인 것처럼 양극화란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양극화란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출처는 노무현 정부시절 청와대였다. 물론 이 시기 동안에 소득격차가 심각하게 악화되었을 경우에는 객관적 타당성이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를 통한 지니계수의 시계열 지표를 살펴보면 1990년 0.266, 1995년 0.259, 2000년 0.279, 2005년 0.298로 나타났다. 물론 우리의 소득불균형 수준이 점차적으로 조금 악화되었지만 양극화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할 정도로 심각한 변화가 있었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시작된 소득양극화라는 용어는 정권이 바뀐 지금까지 우리나라 소득불균형 수준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용어로 이미 정착되어 버렸다.

현실인식의 수준에 맞추어 정책방향이 결정, 용어선정에 신중해야

혹자는 용어가 뭐 그리 중요한가하고 반문할 수 있다. 어차피 소득격차가 존재하는 마당에 소득양극화이면 어떻고 지니계수면 어떤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현실을 인식하는 용어선정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나 모든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분야가 소득이고 본인 소득보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소득을 더 궁금해 하는 우리 국민들의 감성을 고려할 때, 현실을 가치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용어를 통해 표현해야 한다. 단 한 두개의 단어를 나열해서 전체 국민들의 소득격차를 함축적으로 표현할 때는 더욱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왜냐하면 현실인식의 수준에 맞추어 정책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소득격차가 양극화되어 있으면 정책도 양극단을 취해야 한다. 요사이 정부의 강한 시장개입 정책이 어느 때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복지정책, 조세정책, 기업정책 등 시장기능을 무시하고 정부개입적 정책이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과 정부에서 생산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사회가 소득 양극화되었다는 허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책은 경제적 합리성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정치적 과정을 거쳐서 현실화된다. 아무리 불합리한 정책이라고 해도 국회를 통과하면 현실화되는 것이다. 국민들의 표를 먹고 사는 정치권과 정권은 사람들이 원하면 어떠한 정책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 사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회통합이 중요하다. 그래서 정책은 성장과 함께 항상 소득분배를 소중한 가치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정책은 정확하고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소득격차는 절대 ‘소득 양극화’로 표현해서는 안된다. 양극화라는 용어는 주관적이며, 감성적이고, 투쟁적이다. 그래서 시장경제라는 소중한 기능을 함부로 훼손하는 극단적인 정책이 많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www.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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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1년 8월 11일자로 발표된 보도자료, ‘금융위기 이후 소득분배 추이: 국제비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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