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일 前조선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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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서울시교육청에서 열린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의 국정감사. 여야의원들이 전날 한나라당 박영아 의원의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의원이 있다면 북한에 가서 국회의원 하십시오'라는 발언을 두고 논쟁을 벌이다 정회, 파행을 겪었다.

근대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결합한 민주주의가 선점한 것이다. 여기서 자유주의란 철학적 문화적 정치적 개념, 즉 다양한 종교와 사상이 서로 상대방의 존립을 관용하기로 약속한다는 의미의 다원사회의 조직 원리다(이 다원사회를 전복하려는 행위는 물론 법으로 금지된다). 그리고 국가권력의 남용과 거대집단의 횡포로부터 개인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의미의 자유를 말한다. 경제적으로는 사유재산의 신성성과 자유 시장경제를 핵심으로 삼지만 공동선 구현을 위해서는 시장의 실패를 견제할 국가개입의 여지도 얼마든지 예비하고 있는 제도다.

자유주의 이외의 원리와 결합한 민주주의도 물론 있다. 예컨대 루소(Rousseau)의 ‘일반의사(volonte general) + 직접민주제’하고 결합한 민주주의 사상도 있었다. 자칫 전체주의 독재로 흐를 수도 있었던 루소의 사상은 그러나 세계 어느 곳에서도 제도로서 구현된 적이 없다. 망해버린 독재자들이 간혹 차용(借用)하긴 했다지만-.

이밖에도 마르크스 레닌 이래의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와, 히틀러 무솔리니 이래의 나치즘 파시즘이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물론 대중민주주의까지도 ‘퇴폐’와 ‘부루주아 민주주의’로 찍어 추방했지만 그 모두 단명한 실패작으로 끝났다.

결국 최종적인 승자는 자유주의와 결합한 민주주의였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민주주의 하면 그것은 의례 자유주의와 결합한 민주주의를 지칭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보편적으로 인식되었다.

대한민국 건국헌법을 기초한 제헌의원들 역시 이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의식하고서 새 나라의 기틀을 짰으리라는 것 쯤은 이제 와 새삼스럽게 재론할 여지조차 없다. 이승만 박사를 비롯한 제헌의원들이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 말고 루소의 전체주의적 직접민주제, 레닌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그 아류인 인민민주주의, 모택동의 신민주주의, 그리고 그때는 있지도 않았던 북한의 주체사상을 흉내 내려 했을까?

일부는 자유민주주의로 못 박으면 사회민주주의는 어떡하란 말이냐고 묻는다. 그러나 그건 우문(愚問)이다. 사회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마련해 놓은 의회주의 안으로 들어 온 사상이요 정치세력이다.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만들어 놓은 헌법, 국가, 정부, 의회, 사법부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그 체제에 기꺼이 참여해서 다만 노동정책, 분배정책, 복지정책, 환경정책, 대외정책 등에서 보수정당이나 자유주의 정당을 상대로 대안(代案) 경쟁을 하려는 입장인 것이다.

일부는 또 지껄인다. "자유 평등 박애에서 왜 자유만 앞세우는 민주주의냐?" 이 말도 무식의 극치다. 자유민주주의는 평등도 박애도 자유 속에서 추구하자는 것이지, 평등과 박애를 하지 말자는 사상이 아니다. 그렇게 배웠다면 그건 비싼 등록금 들여 헛 공부 한 것이다. 자유와 단절한 평등론은 공산당의 멸망과 더불어 땅속으로 들어갔다.

이점에서, 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를 명시한다고 해서 사퇴했다는‘ 역사교육과정 개발추진위원회’ 자문위원 9명이나, 그것을 걸고넘어지면서 “자유민주주의 운운은 친일파가 좋아할...” 운운 했다는 야당 의원이나, 참 마주앉아 얘기조차 트기 어려운,무식하기 짝이 없는 위인들이다. 아니, 그들이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생떼를 부리는 것은 그들이 무식해서라기보다는, 속뜻이 다른 데 있는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게 뭘까?

박영아 한나라당 의원은 이런 답을 내놓았다 "자유민주주의 싫으면 북한 가서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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