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일 前조선일보 주필

지자체 재보선에서 경상도는 한나라당, 전라도는 민주당 판세로 나타난 것은 별 큰 주목 거리가 못 된다. 그러나 충청 지역에서 한나라당이 승세인 것은 주목할 만하다. 왔다 갔다 하는 추가 이번에는 한나라 쪽으로 온 것인가? 이 추세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유효할 것인지는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문제는 서울이다. 여기서는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에 대한 거부, 기성 정계에 대한 거부, 지배 엘리트 구조에 대한 거부, 20~30~40대의 뒤집고-엎고-허물자 정서, 살기 힘들다-눈꼴시다-보기 싫다-본때 보여주자 정서가 단연 압도했다.

이 정서를 원외(院外) 좌파가 상대방을 타격하는 동력으로 선점하는 데 성공했고, 민주당이 그 좌파적 대의명분과 세(勢)에 밀려줬으며, 반면에 한나라당은 세상 돌아가는 판세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의 일관된 통찰, 전략, 나침반, 교전수칙 없이 황망히 왔다 갔다 하다가 좌초했다. 이런 서울 판세가 전국적인 추세를 감(感) 잡게 하는 한 중요한 지표라 쳐도 큰 잘못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범좌파는 앞으로 민주당을 ‘여럿 중 하나’로 치는 ‘탈권(奪權) 2012’ 연대를 추구할 것이다. 그것이 좌파 통합 정당이 될지, 후보 단일화가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범좌파는 이번 연대 패턴이야말로 ‘2012 승리’를 확실하게 담보한다고 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담보물을 아마 틀림없이 만들어낼 것이다.

안철수 현상은 이번 서울 선거에서 ‘타도 한나라당’을 하는 데 결정적인 몫을 했다. 그가 앞으로 신당으로 정말 나갈지, 대선에 나설지, 그리고 그럴 경우 그가 우선은 독자적인 신당으로 먼저 갈지 아니면 처음부터 범좌파와 합해서 할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안철수 현상이 반(反)우파, 친(親)좌파 쪽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점만은 예상할 수 있다.

한나라당은 다른 지역에서 우세였다 해도 서울의 패배를 가벼이 봐선 안 될 것이다. 스스로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한나라당이 내년 서울 총선과 (대선에서도) 타율적으로 환골탈태당할 개연성은 커졌다. 당위론적으로 평가하더라도 오늘의 한나라당 같은 것이 과연 어떤 존재이유를 갖는 것인지는 이미 오래 전에 희끄무레 해졌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썩어도 준치”라던 그 나마의 ‘믿을 데’마저 적어도 서울에서는 이제 다 돼가고 있고-.

광우병 소동이 나자마자 “어마 뜨셔라” 꼬랑지를 내렸을 때부터, 그리고 어쭙잖게 “나는 보수 아니다, 중도실용이다” 했을 때부터 이미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니게 되었다. 좌파는 좌파니까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그런다고 봐줄 리가 없고, 우파는 이명박과 한나라당한테 뒤통수를 맞았으니까 그래서 역시 봐줄 리가 없고-.

비(非)좌파 유권자들에게는 결국 그들을 대표해 용맹정진해 줄 믿을 만한 투쟁정당이 없는 현실이다. “그래도 덜 나쁜 쪽을 찍어야...” 해온 그들의 ‘꿩 대신 닭’ 충정도 이번 서울 선거판에선 효험이 없었다. 한나라당, 쿠오바디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는데... (cafe.daum.net/aestheticism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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