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정치' 물꼬 텄으나 젊은층과 정치권의 괴리감은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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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코리아=신영호 기자] 지난 5일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홍대 인근의 한 클럽.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빨간색 카우보이 모자를 눌러쓰고 등장했다. 순간 20~30대로 보이는 180여명의 청년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공연장은 뜨거운 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이들은 민주통합당의 청년비례대표를 희망하는 정치 지망생들이다. 이날은 이들이 출마를 공식 선언하는 자리였다.
이틀 후인 7일 새누리당 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전체회의. 환갑을 맞은 박근혜 비대위원장 바로 옆자리에 약관(弱冠)을 넘긴 27세의 이준석 비대위원이 자리를 잡았다. 박 위원장과 이 비대위원은 이날 회의 안건에 대해 서로 의견을 교환했다.
2012년 정치권이 연출하는 현재 한국 정치의 한 단면이다. 젊은층이 정치에 참여하는, 그동안 한국정치사에 기록되지 않았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청년 정치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청년 정치의 징후는 있었다

청년들의 정치 참여에 앞서, 이런 일이 벌어질 낌새는 있었다. 20~40대 청년들은 지난해 치러진 10.26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참여해 정치 참여 욕구를 드러냈다. 당시 투표율은 전국 평균(45.9%)보다 높은 48.6% 기록했다. 특히 퇴근 시간대인 오후 7시부터 투표종료인 8시까지의 투표율은 5.7%로, 이날 시간대별 투표율에서 최고를 기록했다.
대학등록금·주거 등 생활문제서부터 남북관계 지역주의 등 국가적 의제까지 소외돼 왔던 이들은 투표를 통해 그동안 쌓여있던 불만을 표출했다. 10명 중 7명은 현 집권세력에 옐로카트를 빼들었다. 30대의 경우 10명 중 8명 가량이 (75.8%)당시 박원순 후보를 지지하면서 반여 성향을 나타냈다.
젊은층의 투표참여를 사망선고로 받아들인 건 정치권이다. 여야 모두 '변화' '시대흐름'을 외쳤다. 이것의 일환으로 나온 것이 이준석 비대위원과 민주당의 청년비례대표제다. 20~40대의 정치 참여 욕구와 표심을 흡수하고자 정계 입문 문턱을 낮춘 것이다.

'20대 정치가' 매력있지만 취약한 정당정치 구조선 성장 어려워
"정치 아카데미 등 정치 신인 길러내는 시스템 만들어야"


이 지점에서 정치권이 기획한 청년 정치라는 이벤트의 한계가 드러난다. 젊은층은 그동안 누적된 정치 참여 욕구를 정치인이라는 직업을 통해 해소하고 싶지만, 정치권은 이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줄 제도적 기반을 갖추지 않았다. 젊은층이 꿈구는 정치와 정치권이 그리는 청년 정치 간에 괴리가 생긴 것이다.
청년 정치라는 아이디어는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임기응변식 대응방안이었다고, 이번에 민주통합당 청년비례대표제에 응모한 시민운동가 최모씨는 말한다.

-청년비례대표제에 응모했는데
"민주당의 취지에 100% 동의해서 지원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청년 등 정치지망생이 정계에 입문할 수 있는 구조가 취약하다. 외국의 경우 어려서부터 지역단위에 정치 활동을 한다. 그러면서 점차 중앙무대에 진출한다. 이런 시스템이 없는 상태에서 청년 인재를 모시겠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다. 일종의 보여주기식 아닌가 싶었다."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비례대표 의석 준다고 하는데, 이거는 한시적 성격의 자리다. 비례대표의 활동 범위는 제한돼 있다. 또 청년 문제가 사람들의 눈에서 사라지면 청년 비례대표도 자연히 관심밖 대상이 된다.
꼼꼼하고 세심한 준비 작업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참가자들 사이에서 여러가지 말들이 오갔다. 대표적인게 '이미 뽑을 사람은 다 정해져 있다' '누구는 특정 의원의 입김 덕으로 신청했다' 등이다. 개인적으로 준비가 덜 철저했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온 것으로 생각한다."

-취지에 동의하지 않는데도 신청한 이유는 무엇인가
"민주당의 기획은,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지망생들의 정계 입문의 물꼬를 터줬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아까도 애기했듯이 정치지망생의 중앙 정치 진출은 쉽지 않다. 이번 일을 계기로 새로운 발상과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이 정계에 입문할 수 있도록 기초 토대를 만들어 나가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와 관련 최연혁 스웨덴 쇠데르턴대학 교수는 "정치인 충원제도가 하루 빨리 정착돼야 한다"고 말한다. 최 교수는 '청년 정치인 길러내는 스웨덴 정당정치'라는 글에서 "복잡한 의회 절차와 정책 입안 과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정치 신인들이 국회에 바로 들어가게 되면 기성 정당의 거수기 역할만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정치인을 공급할 수 있는 정치 아카데미, 정책 학교 등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분열의 정치가 아니라 설득과 타협을 기본으로 하는 생산적 정치인이 배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표적 청년 정치가는 누구‥英 데이비드 캐머런·토니 블레어

캐머런-vert.jpg대표적 청년 정치인으로 영국의 집권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이전 집권 세력인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꼽힌다.

캐머런 총리는 대학 졸업 직후인 22세에 보수당에 입당했다. 그리고 당 조사부 등에서 일하다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이때 그의 나이가 35세였다. 4년 뒤에는 섀도우캐비넷(야당에서 정권을 잡는 경우를 대비해 만든 예비내각)에서 교육 분야를 맡은 뒤 당수가 된다. 4년6개월간 당을 이끈 44세의 캐머런은 2010년 총선에서 13년 집권한 노동당을 밀어내고 집권에 성공했다.

마찬가지로 대학을 마치고 22세에 노동당에 들어간 블레어 전 총리는 30세이던 83년 하원의원이 됐다. 35세부터 6년간 예비내각에서 정책능력을 쌓았다. 그리고 41세에 당수가 됐다.
44세 때인 지난 1997년 18년 집권세력인 보수당을 꺾고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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