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코리아=국희도 칼럼] 지난해 6월 여당인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추천한 조용환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도중에 후보자에게 천안함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했고, 조 후보자는 “국가의 발표를 신뢰하지만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확신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적절치 않다”고 답변했다.
여당은 이 발언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헌법재판관이 될 자의 국가관에 문제가 있다’면서 반대 의사를 표명했고 결국 임명동의안은 표결에 부쳐지지 못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가 지난 9일 여야는 국회 본회의에서 조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처리하기로 하고 표결에 부쳤다. 그런데 아뿔사! 재석의원 252명중 찬성 115명, 반대 129명, 기권 8명으로 부결되고 말았다. 헌재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부결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초래되고 만 것이다.

이 결과로 이제 헌법재판소 재판관 공석 사태는 8개월째로 접어들게 됐으며, 언제 이 위헌적 상황이 해결될지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이강국 헌법재판소 소장은 22일 국회로 항의 서한을 보내 "국회가 헌법재판관을 선출하는 것은 헌법상 권한인 동시에 의무이며 국민에 대한 책무"라고 국회를 꾸짖었다. 헌재 소장이 국회에다 대고 국회의원의 의무를 다하라고 호통을 치고 있는 지금의 사태 역시 우리 헌정사 초유의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의 책임이 조 후보자의 애매모호한 국가관 때문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판사는 증거 채용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직업이다. 그럴 듯한 증거들이 제시됐다고 쉽사리 확신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분명해 보여도 의심해 보고 다른 면은 없는지 살펴야 하는 것이 법관의 기본적 태도이다. 판사 출신들의 이러한 태도는 성격으로 굳어져서 일상생활에서도 법정에서처럼 사고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킬 정도다.

그런데 여당의원들은 다수가 믿고 있으면 확신해야 한다는 식의 추궁으로 ‘국가관’을 검증했고, 그것이 하필 소수자의 목소리도 귀 기울이고 대변해야 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청문회 자리였던 것이다.

기본적으로 야당이 추천하는 헌법재판관 후보는 어쩌면 “국가관이 의심스럽다”고 여당에 추궁당해도 합리적 의심을 할 줄 알고 쉽사리 확신한다는 말을 내뱉지 않는 신중한 인사여야 한다. 이제까지 헌법재판소가 자랑스럽게 내세운 위헌 결정은 이런 소수의 목소리를 내는 재판관들의 열정과 노력에 힘입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헌법재판관이라는 자리는 여야가 이념 문제를 놓고 소모적 정쟁이나 벌이면서 무한정 비워 놓아도 되는 자리가 절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던 오랜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도 9분의 1로 배분한 야당 몫의 헌재 재판관 임명은 어김없이 국회 동의를 통과해 왔다. 그가 아무리 진보적 의견을 밝히는 인사였어도 말이다.

헌법재판소는 9인의 재판관으로 운영되며 가장 중요한 위헌 심판의 경우 6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1명이 부족인 현 상황에서는 가령 어떤 위헌 사안에 대해 8명 재판관 가운데 5명이 위헌의견을 내더라도 합헌이 된다. 헌법 재판관 1명이 갖는 무게가 그만큼 무거운 것이다. 이로 인해 재판관 1명이 공석인 헌재는 간통죄, 낙태죄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들의 판결을 미루고 있는 형편이다.

국회의원은 입법기관이다. 그런 국회가 이런 위험한 위헌 상황을 만들고, 여야는 ‘나몰라라’하며 4.11 총선 준비에만 열을 올리느라, 합의에 의한 임명동의안의 처리라는 자신들의 헌법적 의무를 방기한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민주통합당은 이미 부결된 조용환 후보를 4월 총선 이후 새로 구성되는 19대 국회에서 다시 추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이번 국회는 조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재상정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국회에서 이미 판결이 내려진 사람을 다시 추천하겠다는 것은 오만함의 극치이며, 제1야당이 자신들이 추천한 인물의 동의안을 애초 부결되도록 방치한 것은 지탄 받아 마땅한 행위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번 조 후보자 임명동의안의 부결은 야당의 책임이 여당보다 더 크면 컸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 정가의 분석이다. 진보 성향의 조 후보자에 대해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여당과 표결 전에 충분히 협상을 해서 동의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힘썼다면 부결될 리가 없는 사안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다수의 힘으로 헌법정신을 무시한 여당이나, 뚜렷한 전략도 없이 ‘설마 낙마되겠나’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표결에 동참한 한심한 작태에 대해서는 민주통합당도 할말이 없게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같은 후보를 총선으로 야당이 제1당이 돼서 새로 구성되는 국회에 상정해서 통과시키겠다고 하는 자세를 곰곰이 따져보면 이번 조 후보의 탈락은 야당의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나라고 의심을 하더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소 귀에 경 읽기’겠지만 제18대 국회는 초유의 위헌적 상황을 만든 것으로 역사의 죄인이 되었으며 이를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헌재 재판관 후보자부터 어서 빨리 새로 추천해 국회에 상정하는 것이 입법기관으로서의 최소한의 책무이며 자신을 뽑아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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