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언론의 기술유출 사건 보도를 접할 때면 “산업스파이는 21세기 가장 큰 산업 중 하나”라고 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우리나라도 그동안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기술개발을 위해 R&D에 꾸준히 투자, 첨단기술을 많이 확보하게 됨에 따라 중국 등 경쟁국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술유출 분야를 보면, 몇 년 전만 해도 휴대폰·반도체 같은 IT산업이 주종을 이루었으나, 최근에는 자동차·조선 등 주요 기간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제 우리 경제의 거의 모든 산업이 기술유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첨단기술 보호를 위해 이미 범 정부 차원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1996년부터 외국과 연계된 영업비밀 유출행위에 대해 ‘산업스파이죄’를 적용하고 있다. 일본은 영업비밀을 포함한 지적재산 보호를 국가 생존문제로 여기고 영업비밀의 국외 사용·공개 행위 등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다. 대만도 반도체·생명공학 등 첨단기술 분야 핵심인력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으며, 최근 급속한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는 중국 역시 지난 2003년 ‘국가안전법’을 제정하는 등 산업기밀 보호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도 올해 4월말 산업기술 유출을 방지하고 첨단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 시행하고 있다. 지난 8월 21일에는 국무총리 주재 ‘산업기술보호위원회’를 개최, 40개의 ‘국가핵심기술’을 지정하는 등 제도적 장치는 선진국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 법을 만들어도 기업 스스로가 보안관리를 허술하게 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밖에 없다. 이제는 기업 스스로 보안에 대한 의식을 새롭게 해 보안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최근 발생한 국내 주요 기업의 핵심기술 유출사건을 보면 대부분 전·현직 직원들이 유출의 주범으로 나타나 기업들의 보안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한상의 조사결과에서도 국내기업의 보안비용 규모가 해당기업 연간 예산의 1.8%에 불과, 크게 미흡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조사결과는, 기업이 보안 인프라를 구축하고 싶어도 당장의 성과로 나타나기 쉽지 않은 보안업무의 특성상 투자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은 불법 기술유출만 규정하고 있는 게 아니다. 기업이 부도 또는 M&A 등으로 국가핵심기술을 외국으로 수출하려는 경우에 대해서도 국가가 관리하되, 국가안보 및 국민경제 파급효과 등을 고려해 아주 제한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에 대해 일부에서 “FTA시대의 글로벌 기술협력이나 국내 기업의 해외공장 건설 등 글로벌 트렌드에 반하는 또 하나의 규제가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지식정보 시대의 산업강국을 지향하는 우리나라가 국가간 경제장벽이 사라진 글로벌 경제전쟁시대에 생존하는 길은 ‘우리가 개발한 기술을 우리 손으로’ 지킬 수 있는 기술보안 역량을 강화하고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가난할 때는 보안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보안(safety)문제는 선진국 진입을 위해 우리가 갖추어야 할 필요조건인 것이다.

오영호/ 산업자원부 제1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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