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도로 열린당'이 등장해 '그 인간이 그 인간'이라는 말이 있었다.

헌데 요즘은 '도로 영남당'이라는 말이 나와 '너희들도 별수 없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범여권이 갖은 우여곡절 끝에 헤쳐 모인 게 고작 '도로 열린당'이라는 딱지가 붙더니 이번에는 한나라당의 '내 식구 챙기기' 인사를 두고 '도로 영남당'이라는 꼬리표가 붙고 말았다.

한나라당의 인사가 신문에 나왔다.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 만들기 위해 11명의 핵심을 당직을 임명했는데 11명 가운데 10명이 부산 경남 대구 경북 등 이른바 '영남' 출신 이라는 것이다. 개밥에 도토리처럼 단 한 사람만 호남 사람이 끼어 있었다. 가장 유권자가 많은 수도권이나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충청도는 개밥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나라당의 인사는 이번 '대선을 스스로 포기하겠다'는 것 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여론조사에서 50%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자만심에 빠져 영남 사람으로도 대선을 치를 수 있다는 한심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게 사실이라면 정권교체 싸움을 일찍 포기하는 게 여러 사람 고생시키지 않고 더 낫다.

이 명박 후보의 생각이 이 정도라면 정권교체는 이미 물 건너갔다고 보는 게 옳다. 화합을 통해 정권을 빼앗겠다고 입에 거품을 무는 사람들의 생각이 이 같이 좁아터져서 어떻게 큰일을 한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이 후보의 머리가 생각보다 나쁜 것인지, 측근들의 머리가 안 돌아가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번 인사는 경상도 사람들의 마음에는 쏙 들지 몰라도 수도권이나 전라도 충청도 사람에게는 한마디로 '실망' 그 자체다. 큰 싸움을 앞두고 장수를 적절하게 배치한 화합의 인사가 아니라 '내 식구 감싸기' '내 식구 밥그릇 챙겨주기'에 급급한 밴댕이 속 같은 인사다. 내 식구는 나중에 감싸고 다른 식구를 챙겨 그들을 내편으로 만드는 지혜가 있어야 하는데 참으로 아쉽다.

영남의 표는 어차피 이 후보에게 간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게 충청도 표심이다. 비록 유권자의 수는 적지만 과거 2차례의 대선에서 판도를 뒤집은 게 그들이다. 지난 대선에서 이인제 후보가 충청도를 등에 업고 이회창 후보를 물 먹인 일이 있다. 그 전에는 김종필 총재가 김대중 후보와 손을 잡는 바람에 이회창이 또 물을 먹었다.

이번에도 충청도에서 사고(?) 칠 위험이 있다는 것을 한나라당은 알아야 한다. 그 당사자가 누구인지 몰라도 충청 표심을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복잡한 정치게임이 시작되면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순진한 사람들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는 사람이 반드시 나타나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한나라당은 뉴라이트를 등에 업고 대선을 치를 태세지만 범여권의 노사모나 386, 젊은이 들이 뭉칠 경우 그들의 응집력과 파괴력은 가늠하기 힘들다. 그들이 뉴라이트와 붙을 경우 저울추가 어떻게 움직일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민병호씨와 나기환씨는 저서 '뉴라이트가 세상을 바꾼다'는 책에서 이번 대선에서 뉴라이트가 노무현 정권의 386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올 대선은 누가 더 똘똘 뭉치느냐로 판가름 난다. 만에 하나 이번 인사에 실망을 느낀 사람들이 마음을 돌리고, 그들의 응집력이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한나라당은 치명상을 입게 마련이다. 한 표가 아쉬운 판에 이탈 표를 만드는 것은 이명박 후보가 바라는 것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비해 범여권은 5명의 주자들이 '도토리 키 재기' 같은 경선을 벌이고 있지만 일단 주자가 한 사람으로 결정되면 그때는 도토리가 아니라 주먹만한 '알밤'이 될 수도 있다. 여당의 기득권을 최대한 이용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권을 내주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범여권이 뭉칠 경우 그 돌파력이 한나라당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할 수도 있다는 게 대선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한나라당이 정권을 찾아오려면 국민들로부터 '뭔가 다르다'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벌써부터 하는 행태가 지역과 자리나 따지고 있는 걸 보면 그들의 뜻대로 국민들이 손을 들어줄지가 문제다. 개인이든 정치든 먼저 마음을 비워야 사람이 꼬이는데 한나라당의 이번 인사는 마음을 비운 게 아니라 '내 몫'을 챙긴 것으로 봐야 한다.

지금 하는 꼴로 봐서는 범여권도 '도로 열린당'이고, 자만심에 차있는 한나라당도 '도로 영남당'이다. 그래서 이번 대선은 생각보다 치열하면서도 뜻하지 않은 변수가 나올 가능성이 아주 커졌다. 국민들은 논공행상이나 자리싸움, 지역싸움, 이권 단체로 전락해 버린 시민단체를 자신의 선거도구로 활용하는 후보를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명박 후보가 승리하고 싶다면 11명 가운데 적어도 7명은 전라도나 충청도 강원도와 수도권에 자리를 주어야 한다. 아주 '확실'한 승리를 장담하고 싶다면 1~2석만 빼고 다 내줄 수 있어야 한다. 이번 뿐 아니라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 한다. 어느 특정 지역에서 몰표가 나온다고 대권을 차지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명장은 전쟁터에서 자기와 출신이 같은 장수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출신이 다른 장수, 자기에게 대들었던 장수, 관계가 소원했던 장수, 심지어는 투항한 적군의 장수를 먼저 챙기고 어깨를 다독거린다. 그래야 충성스러운 장수를 많이 얻을 수 있다.

이번 인사로는 사랑하는 10명의 장수를 내 곁에 붙들어 놓을 수는 있어도 20명, 30명, 100명의 더 많은 장수를 내편으로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장수를 만들지 못하면 군사도 만들지 못하고 결국 정권교체의 꿈은 '일장춘몽'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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