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상왕정치 이기심 아닌 정상회담 수혜주 만들기인듯

방미 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현지시각 20일 "남북 통일에 의욕을 갖고 열망을 가진 후보가 당선되도록 이번 대선에서 가능한 지원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이번 대선 과정에 개입할 것인지 주목된다.

또 김 전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민주신당 국민경선이 요동을 치고 있는 상황이라 더욱 눈길을 끄는 것.

이와 관련, DJ의 최측근인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특정한 후보를 염두에 둔 발언이 아니다"라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박 전 실장은 "동교동측이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한나라당에서 탈당시켰다거나 여권으로 들어오라는 사인을 보냈다는 얘기가 있으나 그런 일은 결코 없었다"면서 손학규 지원설을 공식 부인했다. 이에 따라 손 후보보다는 다른 후보를 의중에 둔 발언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는 등 논란은 증폭되고 있다.

◆통일열망 후보, 아직 실체는 없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손학규 후보는 일단 아니다'라고 단정지을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손학규 후보 외에도 어느 범여권 후보에게도 구체적인 지지 의사를 밝힌 바 없다. 자신을 찾아온 잠룡들에게 많은 정치적 메세지를 던져 상왕 정치라는 평가를 받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특정인을 밀어주겠다는 내심을 비친 적은 없다. '당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이런 문제에 신경써야 할 것', '지금 범여권 후보가 중점을 둘 것은 한나라당 당선을 막는 것' 등 덕담이나 의례적인 발언 혹은 어느 누가 해도 되는 정도의 공통된 과제 정도를 던진 게 전부다.

'대세'를 따라온 정치인으로 평가받는 김 전 대통령은 그간 될 법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치적 철학 계승을 요구해 왔을 뿐, 누구를 밀겠다는 '대의'를 택한 적은 없다. 바꾸어 말하면 이번에도 시간을 끌다가 대의보다는 대세에 따라 범여권 후보가 될 법한 사람이 명확해지면 그를 통일열망을 가진 후보로 치켜올리면서 밀 것이라는 전망은 그래서 가능하다. 일단 '통일 의욕'이라는 '코드'를 새로 던진 것일 뿐, 아직 누구를 구체적으로 정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상회담 역풍 우려에 '통일후보' 지금 거론 곤란한 점도

지금 김대중 전 대통령이 누가 남북 통일에 가장 열망이 큰 후보인지 지명을 하기 어려운 사정은 또 있다. 남북 정상 회담이 지지부진하게 끝나는 경우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 현재 남북 정상 회담 전인 9월 말에 6자 회담 일정이 잡혀 있고, 정상 회담이 10월 2일에서 4일에 잡혀 있다.

이렇게 되면 6자 회담 제 2단계 회의에서 원활한 집행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 정상회담은 경색된 분위기에서 진행될 수 밖에 없다. 또 미국이 북한 핵 동결을 종전의 선행조건으로 내세운 마당에(일전의 호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말함) 남북정상회담이 '우리 민족끼리'라는 대전제를 논하는 선에서 겉돌 가능성은 사실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이런 경우 섣불리 어느 범여권 정치인이 통일 열망이 큰 후보냐를 놓고 미리 거명을 했다가, 정상회담의 사실상 실패 후 그 후보가 역풍을 맞도록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 정상회담 부진으로 맞을 역풍은 그 어떤 악재보다도 타격이 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9월 말 현재 어느 범여권 후보도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4배 이상 차이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아예 재기불능으로 대선정국을 고착시킬 덫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서도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인지, 실패인지, 그도 아니면 적어도 본전인지 정도를 가늠해 본 다음에 통일후보론을 다시 들고 나오는 한 단계 뜸을 들이는 수순이 안전하다는 계산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럼 왜 벌써부터 언급하나?

그러므로 아직 범여권 후보 중 가장 적당한 재목이 선정되기도 전이고, 정상회담의 결과 자체도 확실히 예견할 수 없는 상황에 섣불리 "나는 000후보가 통일 열망이 가장 높은 후보라고 생각한다"고 선언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왜 '미리' 이런 승부수의 대강을 공개한 것일까?

이것은 통일 열망 후보론이 현재로서는 가장 적당한범여권 흥행 카드일 뿐더러 자신의 정치철학을 승계할 대선 주자를 고르는 데 적당한 지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이미 참여정부 초기 지난 국민의 정부에서 진행된 햇볕 정책을 특별검사 수사 대상으로 만든 것에 상당한 서운함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물론 이 와중에 한나라당이 강하게 압박을 넣어 어쩔 수 없이 끌려간 면이 크지만,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는 대북 정책에 관한 한 전통을 계승했다기 보다는 서로 갈라섰다고도 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그런 실수(?)가 없도록, 자신이 대선에 입김을 작용하는 조건으로, 자신의 정치철학을 계승할 후계자와 손을 잡겠다고 미리 공표를 해 두는 절차가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서는 필요한 상황이다.

더욱이 혹시 남북정상회담이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과 그로 인해 범여권 후보가 맞을 역풍만 생각해서 움츠리고 있다가는, 가장 좋은 호재를 그대로 흘려 보낼 수도 있는 위험부담이 있다.

또 청와대를 위시한 범여권은 지금 신정아 사건으로 곤란한 지경에 처해 있다. 정윤재 비리 의혹도 버티고 있다. 범여권은 그간 무기로 삼아왔던 도덕성과 참신성 면에 큰 타격을 입었다. 웬만한 동력으로는 범여권 후보의 폭발력에 불을 지피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 대목에서 정상회담과 통일 열망 후보론은 그야말로 쓸 수도 안 쓸 수도 없는 극약인 셈이다.

그러므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총대를 매고, "과연 DJ가 점찍은 후보가 누구인지?"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선에서나마 밑밥을 뿌려줄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본격적인 낚시는 10월초 정상회담이 제대로 치러졌는지 평가가 나온 후가 될 것이다. 이 대목에서 청와대나 범여권이 직접 나설 수도 없으니, 그나마 전직 대통령으로서 한발 비껴나 있는 그가 나설 수 밖에 없기도 하다.

문제는 그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상왕 정치, 정치 개입 지적이다. 그러나 범여권 후보들이 한나라당 대선주자 지지율의 1/4 수준으로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또 민주신당의 국민경선이 손학규 파동 등으로 계속 흥행 참패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상왕 정치라는 지적에도 불구, 직접 나서는 게 불가피하기도 하다. 또 김대중 전 대통령 스스로가 정치적 발언에 자제를 생각할 성격이 아니기도 하다.

10월 초면 정상회담 결과가 실체를 드러낸다. 즉 범여권에 보약이 될지, 극약이 될지가 판가름나는 것.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이 보약이 되는 경우 이를 수혜할 대상을 택하면서 힘을 실어주는 시점으로 10월 초중순을 고르게 될 것이다. 이때면 현재 급피치를 올리고 있는 신정아 사건 수사나 정윤재 사건 문제가 어쨌든 끝을 볼 무렵이기도 하다. 범여권으로서는 족쇄에서 풀려나는 셈이다. 더욱이 이 무렵에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압박할 특검이 시작될 시기이기도 하다.

범여권으로서는 한나라당을 압박하는 한편, 여유롭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미리 지금부터 달궈놓은 통일후보론을 꺼내 들면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통일후보론은 이런 점에서 10월 정국을 달굴 센세이션 거리가 될 공산이 크다. 대선 한달 남짓 전에 전직 대통령이 던질 승부수의 스케치를 지금 보고 있는 셈이다. 김 전 대통령의 스케치가 스케치로만 끝날지, 범여권 잠룡을 승천시킬 대형 프로젝트로 완성될지 남북관계나 그 밖의 정치상황들을 주시하면서 보는 것도 대선을 두 달여 남긴 지금 관전포인트로 삼을 부분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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