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적 경영체제 변화·계열사 통폐합 등 움직임 보여

[투데이코리아=이규남, 정단비 기자] 최근 한국경제연구원 심포지엄에서는 '현재의 저성장은 경제민주화를 추구하는 평등주의 정책체제에서 비롯됐다', '경제민주화가 기업활동을 범죄로 만들고 있다'는 등 격한 표현들이 터져나왔다.

현재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 유력 대선후보들이 모두 경제민주화에 대한 공약으로 대기업들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재계 역시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고 국민의 요구에도 부응하는 경제민주화 실천 방안을 신속히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며, 실질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곳도 있다.

이에 세계적인 경기 부진과 환율 하락, 수출 여건 악화 등으로 내년 경제여건이 녹록치 않을 것으로 점쳐지는 악수가 겹친 재계가 경제민주화에 대비해 어떠한 움직임을 보일 것인지 짚어보도록 하겠다.

경영체계 수평적으로 변화…계열사 자율책임경영제
따로 또 같이 3.0을 통한 안정과 성장

SK그룹은 지난 2003년 분식회계 사태로 총수가 구속됐던 오명을 다 씻기도 전에 터진 최태원 회장(52)과 최재원 수석부회장(49) 총수 형제의 횡령 혐의는 지금까지도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SK그룹은 최근 경영체계를 대폭 손질하며 기업의 새 단장을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 최 회장이 직접 스스로의 권한을 내려놓으며 경제민주화에 발맞춘 처방을 내놓은 것이다.

지난 2002년부터 시작한 '따로 또 같이' 경영, 2007년 지주회사 전환으로 2단계의 도약을 거친 SK가 이번에 제시한 개편안을 ‘3차 도약’으로 삼아 장기화된 대내외 경기침체 등 경영여건의 불확실성에 효과적으로 대비함과 동시에 각 계열사 중심의 지속적인 글로벌 성장을 위해 경영 시스템을 진화, 발전시키기로 의견을 모은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미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SK가 한발 더 나아가 계열사 자율책임경영제라는 모법답안을 제시한 데는,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공세에 선제적인 답을 내놓아 피해가고자 하는 부분도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앞으로 SK는 각 계열사가 지주사로부터 경영 일체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아 자율경영체제로 돌입할 예정이다. 계열사를 묶을 컨트롤타워로는 더 이상 지주사의 군림이 아닌 특성별 위원회에 각 사가 참여해 사업적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유기적 관계를 맺겠다는 대안을 내놨다.

SK는 11월 안으로 내년 경영계획을 최종 확정한다는 계획을 세웠으며, 최 회장도 최근 들어 SK경영경제연구소에서 분석한 경기동향 보고서를 매주 전달 받으며 상황을 주 단위로 체크하고 있는 상황이며 시나리오 경영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SK의 예기치 못한 강수에 다른 그룹들이 어떤 대안을 내놓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또 이번 쇄신이 대선 전후로 예정돼 있는 최 회장의 재판에 변수가 될지도 주목할 점이다.

▲ SK그룹 최태원 회장

'희망퇴직' 물살 합류…미리 구조조정?

한때 도토리를 모르는 간첩인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페이스북, 트위터에 밀리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SK커뮤니케이션즈(이하 SK 컴즈)가 희망퇴직을 시작했다.

IT업계에 따르면 SK컴즈가 지난달 17~29일 희망퇴직 신청자를 접수한 결과, 검색과 디자인 부문을 중심으로 100명 이상의 인원이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직원의 10%가 넘는 인원이다.

SK컴즈는 희망퇴직 후 이달 중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할 계획이다. 최근 모바일 버전으로 새롭게 선보인 싸이월드를 중심으로 네이트 등 다른 서비스를 연계해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일부에서는 최근 이처럼 희망퇴직이 유행하는 것은 글로벌 경기 위축의 영향이 크지만, 대선후보들이 제각각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걸면서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고 보고 있다.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더라도 내년 이후 구조조정에 들어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미리 감축한다는 뜻이다.

자르고 합치고 '대규모 계열사 통폐합'

15일 재계에 따르면 SK그룹 계열사가 수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대략 5~20곳이 내년 초까지 대규모 통폐합될 것으로 알려졌다. 비주력 계열사를 매각하고 비슷한 업종의 계열사를 하나로 합쳐 핵심 사업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SK는 우선 그동안 골목상권 침해 논란을 빚어왔던 포도주 수입업체 WS통상을 정리 대상에 올렸으며, SK텔레콤의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도 고객 관리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CS와 합병할 계획이다.
이밖에도 윤활유 판매 자회사 지코스, 생명과학 기기 제조업체 인싸이토, SK커뮤니케이션즈 자회사 서비스인, 구조조정 설이 흘러나오고 있는 SK하이닉스도 대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SK관계자는 "경기침체 여파로 SK 일부 계열사가 구조조정에 들어갔거나 관련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불필요한 자원 낭비를 줄여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지만, 일부에서는 이같은 선택이 국내 10대 그룹 중 계열사 수가 91개로 가장 많은 SK가 정치권에서 제기하는 경제 민주화 논의에 압박을 느낀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하고 있기도 하다.

'경제민주화 역행', 반항하는 SK텔레콤?

이렇게 경제민주화에 발맞추는 듯한 SK의 사정은 ‘요즘 좋지않다’는 평이 많다. 효자종목이었던 SK텔레콤(SKT)과 SK이노베이션이 부진을 보이는데다, 하이닉스를 인수하며 과감히 편입했던 반도체가 생각만큼 성과가 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직 업계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과도한 출혈경쟁으로 수익성 악화가 온 SKT는 차세대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에 최근 휴대전화 대리점인 ‘T월드’와 커피전문점을 결합한 ‘T월드 카페’를 선보이며 다른 재벌들이 손을 떼고 있는 카페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듯하나, SKT의 기존 사업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점은 둘째로 치더라도 ‘경제민주화에 역행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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