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연성 약한 스토리, 허술한 구성 ... 연출 역량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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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코리아=김범태 기자] 막이 오르면 무대는 1992년의 어느 격렬한 시위현장으로 시간의 태엽을 되돌린다.

‘백골단’이라 불리던 경찰의 살벌한 진압과 이를 피하고, 맞서고, 투쟁했던 이들의 몸부림이 서울의 한 후미진 뒷골목까지 다다른다. 역동적인 액션과 함께 진중하고 무겁게 흐르는 넘버 ‘부치지 않은 편지’는 민주화의 열풍 끝과 군사정권의 마지막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상처만 남은 평화의 시대를 묘사한다.

저항과 서정, 억압과 자유가 공존하고, 기성세대의 획일화에 반발하는 ‘X세대’라는 새로운 인류가 출현했던 혼돈의 시기. 세상의 격변과는 등진 채 “오늘은 그래도 최루탄가스 냄새가 나지 않아 다행”이라며 천연덕스럽게 기타를 튕기는 ‘지욱’과 경찰의 추격을 가까스로 피해 남의 집에 몸을 숨긴 운동권학생 ‘이연’의 운명적 만남은 상반된 시대의식을 대변한다.

하숙집 옥상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던 ‘지욱’은 갑작스레 옆집 옥상으로 뛰어올라온 ‘이연’을 보고 첫 눈에 반한다. ‘지욱’은 운동권 학생이자 신비로움을 간직한 그녀와 이내 뜨거운 사랑에 빠진다. 특별할 것 없지만, 풋풋하고 아름다운 청춘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된다.

‘지욱’의 절친이자 ‘이연’을 사랑하는 하숙집 아들 ‘훈’은 군 복무 중 불의의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는다. 자신 역시 운동권 학생이었으나, 훗날 보수주의적 성향의 국회의원이 되는 그는 현실에 시든 변절의 대표로 다가선다.

이와 함께 일편단심 씩씩하게 ‘지욱’만을 바라보는 ‘여일’ 그리고 묵묵하게 그녀의 곁을 지키는 ‘성태’와 인심 좋은 하숙집 노부부는 각각의 에피소드를 통해 꿈과 사랑, 시대의 아픔과 이별, 생사의 갈림길을 만나 제각각 엇갈린 운명을 그려낸다.

막이 다시 내리고 오르면 20년 후 오늘의 서울이다. ‘지욱’과 20대를 함께 했던 ‘훈’, ‘성태’, ‘여일’은 오래 전의 꿈도, 사랑도 가슴에 묻은 채 분주한 도시의 삶에 순응해 있다. 하지만 공연 연출가가 된 ‘지욱’에게 떠나간 사랑 ‘이연’에 대한 기억만큼은 현재보다 생생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욱’은 붐비는 지하철역에서 한 여자와 마주치고 오래 전 ‘이연’이 살아 돌아온 것만 같은 충격에 휩싸인다. 나이도, 이름도 모두 다르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옛 기억은 그녀와의 시간을 되살려낸다.

故 김광석 50주년기념 뮤지컬 ‘디셈버: 끝나지 않은 노래’는 김광석의 음악을 엮어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그러나 스토리라인의 개연성 부족과 허술한 구성으로 불친절하다는 지적에 직면한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산만하고, 인물의 역학구도는 투박하다. 그러니 관객은 혼란스럽다.

블록을 맞추듯 노래에 스토리를 끼워맞춘 느낌이 강하다. 가사와 제목을 살리며 드라마 구조를 완성하려다보니 잔가지가 너무 많아졌다. 김광석의 노래에 어울리는 그 시대의 이야기로 방향을 잡았지만, 관객의 감정선이 공감까지 다다르지 못한 채 단절된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김광석의 음악을 활용했으면서도, 보는 이의 가슴에서 김광석이란 그리움의 대상을 되살려내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대중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김광석 음악의 오리지널리티를 찾겠다’던 제작진의 각오는 무색하다. 익숙한 노래들이 귀에 박히지 않는 거북함은 관객 입장에서 매우 불편한 일이다.

아마도 연출 입장에서는 기성의 곡이 상당한 제약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김광석의 노래는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내용이 많아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건 주크박스 뮤지컬이 갖는 특성이다. 노래라는 재료는 마치 ‘양날의 검’처럼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다. 그걸 어떻게 풀어내는가가 연출의 역량이고 몫이다.

“김광석의 음악이 그렇듯, 다시는 돌아갈 수 없지만, 그래도 가끔 듣고 싶고, 기억하고 싶고, 추억하고 싶은 시간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장진 연출의 말처럼 뮤지컬 ‘디셈버’는 누군가에게 있을 법한 그 겨울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 어렴풋 떠오르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 서정적 감흥을 이렇게 힘겹게 끄집어내 곱씹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은 작품을 보는 내내 떠나지 않는다. 내년 1월 29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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