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회사냐가 아니라 누가 조작주도했나가 관건

미국 국무부가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인물인 BBK 전 대표 김경준씨의 한국 송환을 승인했다. 김씨는 주가조작·횡령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 2001년 12월 미국으로 도피했던 인물이며, 그동안 그가 한국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BBK 사건에 대한 수사는 중단 상태였다.

그리고 이런 애매모호한 상태가 계속될 수록, 범여권은 김씨의 주가조작 사건에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연루된 의혹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법무부는 미 국무부와 김씨에 대한 신병인도 승인 결정 문제를 이미 상의를 끝낸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관계자에 따르면 “호송 실무 협의를 거쳐 LA공항에서 김씨 신병을 넘겨받게 되는데, 2주 정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밑그림 대로라면, 김씨는 11월 중순 송환되는데, 이는 당초 김 씨가 돌연 인신 보호 절차를 취하한 뒤 한국에서 예상하던 송환 시점인 11월 말보다 열흘 남짓 빠른 것이다. 그만큼 대선 전에 수사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대선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커진다는 뜻이다.

◆이명박 회사가 맞느냐가 아니라 누가 조작을 주도했느냐가 관건

BBK 사건은 이명박 후보를 낙마시킬 수도 있는 폭발력을 갖췄다는 주장과 함께, 이명박 후보의 무고함을 이야기하는 반론도 만만찮다.

<사진설명=김경준은 금융통으로 알려져 있다.>
BBK와 이명박의 연관성이 꾸준히 나오고 있는 것은 BBK의 지주회사가 LKe뱅크이며 이 LKe뱅크에 이명박 후보가 김경준씨와 동업자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LKe를 차리는 데 자기 돈 30억원을 투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주회사인 LKe의 공동사업자이니 당연히 BBK에 대한 의결권도 행사하도록 되어 있다.따라서 BBK정관에는 '이명박과 김경준이 공동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한다'는 구절이 있으며, 여권에서 이 후보를 공격하는 데 이 것이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하지만 BBK 사건은 결론만 간략히 말하자면, 주가 조작 사건. 즉 누구 회사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주가 조작을 주도했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LKe, BBK, 그리고 옵셔널벤처스코리아의 상관관계

BBK 사건은 주가를 조작했다는 논란과 함께 피해자 규모만 해도 5천명 가량이라는 거대 사건이다. 이 중 자살자도 2명 나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다.

개미투자자들은 유망한 주식이라면 몰리는 게 인지상정. 더러 빚을 내 주식에 투자하기도 한다. 이런 개미투자자들이 이 사건의 주요 피해자가 됐다. 개미투자자들은 정보에 어두워 소위 '작전(과장 정보로 가격을 띄우는 것)'에 말려들기 쉬운데, 이런 전형적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피해액만도 600억원에 해당하는 BBK 사건은 99년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서 김경준 씨가 BBK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한 것이 문제의 발단으로 삼고 있다. BBK 이후에 '옵셔널벤처스코리아'도 있었고 검찰이 문제를 삼는 부분은 이 옵셔널벤처스라는 회사지만, BBK가 이 문제회사의 전신이기 때문에 흔히 BBK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당초 BBK는 2001년 3월 금융감독원에 펀드 운용 보고서를 위조한 혐의로 등록을 취소당할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김경준 씨는 같은 해 4월 옵셔널벤처스코리아를 인수한다. 회사를 하나 더 차린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펀드 운용 보고서를 위조한 혐의로 문제가 되고, 다시 다른 회사를 차린 상황인데, 이 옵셔널벤처스의 주가가 올랐다는 데 있다.

코스닥 상장사던 옵셔널벤처스코리아는 외국계 기업에 인수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주가가 주당 2천원에서 8천원으로 가파르게 올랐다. 이 상황에 김경준 씨는 주식을 팔아 돈을 챙긴 뒤 미국으로 도피했고, 주가가 폭락하면서 투자자들만 고스란히 손해를 봤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측도 만만찮게 손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지주회사 소속의 금융회사가 사고를 냈다면, 지주회사인 LKe 가 뒤*어 쓰는 도식이 도출된다. 그러므로 이 후보로서는 앞서 말한 30억원이 고스란히 마이너스(손실)가 된다.

◆이명박이 혹시 순진한 '바지사장'이라 당한 것 아닌가?

문제는 사람들이 일단 LKe의 공동경영진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부분에 석연찮아 한다는 데 있다. 지주회사의 최고경영진으로 두 사람이 같이 있었다면, 당연히 그 소유의 투자자문회사의 주가조작문제가 일어날 때 둘 다 알고 있을 게 아니냐는 소박한 문제제기다. 즉, 한 사람이 사고를 치고 외국에 도피하기 전에도 다른 한 공동경영진이 내용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이 주장의 요지다.

실제로 당시 '중앙일보'에는 이명박 후보가 “두 개의 금융관련 회사를 차렸다”는 점을 자랑스러워 하며 인터뷰를 한 내용이 있다고 정봉주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지적하고 있다. 자기 회사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이제 와서 관련이 없는 듯 부인하면 되는가라는 주장이다.

여기에는 이 후보의 깔끔하지 못한 해명이 주요한 꼬리표로 따라붙는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는 당초 “BBK에 주식이 한 장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자기 회사가 아니라는 해명을 하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여러 연관 흔적이 나오니 할 말이 없게 됐다.

하지만 김경준 씨의 미국 도피 이전 검찰 수사 결과를 보면 이 문제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풀릴 것 같다. 주가조작논란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고 김경준 씨가 외국으로 도피하기 전, 김경준 씨는 “이명박 씨는 주가조작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검찰 수사 결과에서도 이 모 검사는 “이명박이 (사실상) 관련이 없다”고 해석했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이런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에 김경준 씨가 그때 진술을 번복한다면 그것은 정치공작”이라는 게 안 원내대표의 지적이다.

결국 이명박 후보의 문제는 자신이 공동경영진으로 등재된 회사(LKe)의 세세한 내역과 그 산하 회사인 BBK, 그리고 BBK가 문제가 된 다음에 인수된 옵셔널벤처스라는 회사의 자금 흐름 과정과 과연 이 회사에 대해 주가조작 논란이 있는지, 즉 정말 외국계 회사와 투자 협상이 있었는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가 당했다'는 문제다.

<사진설명=CEO 출신이라 해도 자신의 주요 사업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다. 범여권의 공세대로라면 금융을 잘 모르는 사람이 기획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돈세탁 과정'이 된다.>

제대로 오류 파악을 못하고 경영진 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뜻인데, 이런 문제는 흔히 어음 부도를 위한 페이퍼 컴페니(종이 회사)의 경우 많이 발견된다. 멀쩡한 사람을 대외적으로 내세워 신용을 얻는 것이다. 이런 겉으로 드러난 경영진을 속칭 '바지 사장'으로 부른다. 겉으로 드러난 사장이나 고위직원 대신 실속을 차린 범인이 따로 있을 때 부르는 수사용어로 실제로 이런 경우 이런 관련자는 처벌 대상에서도 사실상 제외된다.아마도 당시 '샐러리맨의 신화'였던 이 후보라면 이런 바지사장감으로 안성맞춤이 아니었을까?

◆이회창 아들 병역 사건 전철 밟을까

아울러, 이 후보가 건설계에서만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주가조작이라든지 특히 최근에 BBK 등 이 사건 관련 의혹에서 불거진 MAF(역외 펀드)로 돈을 세탁했다는 류의 문제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는 한나라당측의 주장에도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즉 정밀한 국제금융거래를 통해 주가조작으로 번 돈을 세탁해서 다시 개인계좌로 받는다는 구상은 이 전 시장 같은 건설통으로서는 사실상 '전공'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해외 대학원에서 대학원을 마친 금융전문가이자 모건스탠리 등 외국계 금융회사 경험도 있는 김경준 씨가 주도하는 것을 눈 뜨고 당했다는 한나라당쪽의 해석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결국 한때 기업의 CEO를 지냈다는 이력과 자존심 때문에, 큰 투자금액 손실을 보거나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게 되자 움츠러 든 이 후보가 계속 (일부) 허물을 덮으려 주식이 한 장도 없었다는 식의 거짓말을 해서 의혹을 키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아들의 병역 비리 논란이 불거지자 아무 거짓이 없다고 덮다가 오히려 이런 미숙한 해명 자체에 유권자들이 실망했던 것과 유사한 상황으로 이 사건이 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이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그간의 BBK에 대한 이명박 후보의 미지근한 태도는 적절한 것이 못 된다. 최근 들어 이 후보 역시 이런 문제를 인식한 듯, “김경준 씨 귀국은 오히려 내가 원하는 바”라고 치고 나가고 있다. 김경준 씨 귀국으로 대체 어떤 물결이 닥칠지 우려하면서도, '최종적으로는' 오히려 부담을 털고 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한나라당 관련자들의 목소리가 나오는 상반된 표정이 있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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