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5-3-2 전술로 에스파냐 함대 제압, 다크호스 가능성 '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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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피파랭킹 1위 스페인을 물리친 칠레

[투데이코리아=박한결 기자]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스포츠계 불멸의 명언은 이번에도 적중했다. 한동안 세계축구를 주도하던 무적함대 스페인이 네덜란드 전에 이어 2연패를 당해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었다.

그렇다면 무적함대라 불리던 스페인이 남미의 복병 칠레에 무너진 원인은 무엇일까. 먼저 칠레의 맞춤형 전술을 들 수 있다.

칠레가 이날 경기에서 내세운 것은 이탈리아 세리에 A에서는 즐겨 사용되나 유럽축구에서는 한물 간 전술로 평가받는 5-3-2 전술이었다.

5-3-2전술의 핵심적인 요소는 양측 윙백이다. 필요시 적절한 공격가담을 해서 공격시 숫자 싸움에 도움을 줘야 할 뿐만 아니라 수세 중에는 수비적인 면까지 적극 관여해야 되서 체력소모량이 매우 높다. 게다가 적절한 상황 판단을 해야하기에 높은 전술적 이해도도 요구된다.

이뿐만 아니라 윙백에는 어느정도의 볼 컨트롤 능력도 겸비해서 자기 진영에서의 공격 전개 작업과 상대 진영에서의 공격 작업에서 하자가 없어야 한다. 이렇게 다재다능한 능력을 갖춰야만 하기 때문에 현대 축구에서 수준급 윙백들은 점점 희소한 존재가 되고 있다. 최근 윙백 포지션의 몸값 급등 현상도 이와 무관치 않다.

칠레는 이슬라와 메냐라는 수준급 양 윙백이 있었기에 5-3-2 전술을 가동할 수 있었다.

이밖에 칠레가 보유한 강력한 강점은 희소한 공격형 미드필더 아투로 비달의 존재다. 비달은 원래 중앙 미드필더와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할 정도로 높은 수비적 능력을 보유한 선수다. 게다가 적절한 볼컨트롤 능력과 더불어 창조적인 패스를 넣어줄 능력까지 갖췄다. 중거리슛 능력까지 탑재해 완벽한 미드필더의 전형 중 하나로 꼽힌다.

비달의 가세에 중앙 미드필더의 수비 부담도 뚜렷하게 줄어들었다. 비달이 앞선에서의 차단에 주력하는 동안 칠레의 중앙 미드필더 2명과 3명의 센터백은 견고한 수비 라인을 구성하고 이와 동시에 양 윙백 역시 수비에 가담한다. 간헐적으로 중앙 미드필더 중 한명이 공격 가담을 해 숫자 싸움에 대비한다. 이것이 바로 칠레의 수비시 비책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칠레 진영에서 중거리슛에 적합한 공간이 자주 나왔으나 스페인의 중원에서 이런 능력을 보유한 선수는 알론소 뿐이었다. 알론소가 노쇠화의 여파로 예전만큼의 강력한 슈팅과는 먼 슛을 날린 탓에 이런 무주공산역시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았다.

이를 칠레 삼파올리 감독이 제대로 파고들었다. 페널티 박스 주변에서 최대한 선수들을 짜임새있게 배치했다. 이로 인해 세계최고의 테크니션인 이니에스타조차 페널티 라인 돌파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칠레의 약점은 빌드업이 비달에 집중된다는 점이었으나 이는 산체스가 전방에서 내려와주면서 해결했다. 좀처럼 공을 뺏기지 않는 산체스가 내려오면서 스페인 수비진을 유인하고 이를 바르가스가 침투하면서 공격기회를 노리는 것이 칠레 중앙 공격의 주요 루트였다. 또한 경우에 따라 측면에서 양 윙백인 이슬라와 메냐가 오버래핑했다.

5-3-2가 이날 경기에서 효과적인 까닭은 스페인이 4-3-2-1 전형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이 전술은 양 측면에서 발생하는 공간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 공간을 커버하려면 공격라인에서 수비 부담을 줄여주거나 중원과 측면에 위치한 선수들의 유기적인 플레이로 이를 최소화시키는 방법뿐이다.

이날 승패의 명암이 갈리게 한 것은 알론소와 부스케츠의 잘못된 위치선택이었다. 이미 노쇠화가 진행돼 전성기만큼의 활동량을 보이지 못하는 알론소가 위치한 측면에 공격력이 더 좋고 공격적인 플레이를 즐기는 알바가 위치한다는 것이 뇌관이 됐다.

앞선에서는 원칙적으로는 페드로가 위치했다. 활발한 스위칭 플레이가 이루어지면서 페드로, 실바, 이니에스타가 교대로 위치했으나 공통적으로 수비적 지분이 적어 수비시 상황에는 별 영향이 없었다.

이 경우 오른편에 위치한 부스케츠와 자리를 바꾸게 해 최종적으로 왼편에 알론소-아즈필리쿠에타, 오른편에는 부스케츠-알바를 포진시키는 것이 더 나을법했다. 아즈필리쿠에타는 알바와는 달리 공격력보다 수비력이 좋은 선수기 때문이다.

이는 확실히 의아한 부분이었다. 델 보스케 감독은 네덜란드 전 대패 이후 중원의 핵심인 샤비 에르난데스를 제외하는 나름의 용단을 보였으나 미드필더 진의 잘못된 기용이 결과적으로 이를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사실 이부분은 스페인 대표팀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다. 좋은 공수밸런스에 중거리슛능력까지 보유해 원볼란치 운용까지 가능했던 마르코스 세냐의 은퇴 후 스페인은 고질적으로 이 문제에 시달렸고 이를 알론소와 부스케츠 조합으로 봉합하려 했으나 알론소는 이미 활동량이 떨어진 상태였으며 부스케츠는 공격적 능력보다 수비적 능력에 특화된 선수일 뿐이며 뛰어난 위치선정 능력과 커트 능력으로 상대 공격의 골목에 자리잡고 있는 유형이다. 알론소의 단점을 메울수 없었던 조합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수비라인에서의 문제점도 여전했다. 공격능력이 뛰어난 라모스의 파트너로는 무조건 맨마킹 능력이 탁월한 선수가 배치됐어야 했지만 푸욜의 은퇴 선언 이후 스페인 엔트리에 그런 선수는 이제 없다.

피케대신 출전한 하비 마르티네즈도 공수밸런스가 좋은 박스투박스 미드필더 유형에 근접할뿐 수비적인 능력이 수비수 수준에서도 탁월한 타입이라고는 볼 수 없다. 일반적인 팀을 상대한다면 이같은 포진은 사실 별 무리가 없을 수도 있었으나 칠레에는 크랙형 공격수 산체스가 있었다는게 문제였다.

결국 칠레의 측면 윙백들은 2명의 중앙 미드필더와 수비가담을 활발히 해주는 비달, 이를 지원해 주는 산체스의 가세로 전반전까지는 수월하게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었다. 반면 스페인의 측면수비들은 중원에서의 숫자싸움에서도 가담하고 칠레 윙백들의 공격가담까지 신경써야 했다.

이때문에 칠레의 오른쪽 공격을 알바는 거의 혼자 막아야 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바로 이점을 스페인 패배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칠레의 선제골 장면에서는 이런 스페인 왼쪽 라인의 밸런스 붕괴가 잘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스페인의 치명적인 패스미스를 활발히 움직이던 산체스가 가로채서 공격에 가담한 아랑기스에게 연결한 것을 다시 프리 상황인 바르가스에게 연결해 골망을 흔들었다.

칠레는 이날 스페인에게 많은 직접 프리킥 찬스를 제공했다. 스페인의 기술적인 미드필더진의 전진을 육탄으로 봉쇄한 것이다. 이 기회를 스페인이 살렸다면 경기 양상은 바뀔 수도 있었을 지 모르나 엔트리에는 직접 프리킥골을 작렬시킬 선수가 없었다.

델 보스케 감독은 전반전이 끝난 후 알론소를 빼고 AT 마드리드 돌풍의 주역 코케를 투입했다. 코케는 강인한 하드웨어를 갖추고 좋은 공수능력을 겸비하고 있는 플레이어로 알려져 있다.

코케가 중원에서 숨통을 틀어주자 스페인 공격의 매서움이 살아났다. 코케의 가세로 왼쪽의 알바는 공격 가담 비율을 늘일 수 있었다. 비로소 스페인의 공격이 실마리를 찾은 셈이다. 코케는 칠레 선수들이 공을 잡고 있을때 저돌적으로 달려들어 볼 컷트를 시도하는 등 전반전에는 없는 역동성을 스페인 중원에 가미시켰다.

코케의 선발 출전이 경기결과를 바꿨을 수도 있으나 월드컵 경험이 전무한 신예를 이미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출전시키는 감독은 거의 없다. 오히려 지나치게 긴장해 페이스를 그르치게 될 가능성도 있엇다. 델 보스케 감독은 이미 중원의 핵심인 샤비를 빼고 수비라인에 변화를 주고 공격진에도 미세한 변화를 준 만큼 더 이상의 도박을 감행하기 어려운 입장이었다.

코케 효과 덕택으로 스페인은 후반 3분 결정적인 기회를 맞이하는 등 전반과는 다른 경기 내용을 보였다. 스페인은 코케 투입 이후 중원 싸움에 불을 붙였고 양 팀 선수들은 비로소 중원에서 본격적인 싸움을 벌였다.

중원싸움의 강도가 높아지자 칠레 삼파올리 감독은 중원에서 뛰던 아랑기스를 부상을 이유로 교체하고 커팅 능력이 좋은 구티에레즈를 투입해 수비에 단단함을 더했다.

하지만 델 보스케의 한수는 코케 투입뿐이었다. 비교적 부진했던 코스타를 빼고 토레스를 집어넣은 단순한 변화 외에는 특이할 만한 전술적 변화가 없었다.

지공상황에서 숨은 트였으나 마침표를 찍어줄 선수가 없던 탓인지 스페인 선수들은 후반전 중반 이후 롱패스를 남발하기도 하고 불필요한 공간 패스를 날리며 시간에 쫓기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칠레는 남은 시간동안 지능적인 경기 운영을 통해 2승을 완성했다.

이날 결과로 디펜딩 챔피언 스페인은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게 됐다.

다만 소귀의 성과로 꼽을 것은 알론소를 대체할 가능성을 보여준 코케의 발견이었다. 하지만 코케가 부스케츠와 콤비를 이룬다고 해도 고질적인 문제인 중거리 슈터 부족 문제는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 전망된다.

더 큰 문제는 여실히 드러난 카를로스 푸욜의 빈자리다. 스페인 축구 특성 상 자유자재로 수비라인을 올려야하는데 뒷공간 공략에 허술한 수비진의 존재가 상대에게 위험한 역습 허용이라는 부담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런 약점들은 스페인 축구가 다시 왕좌에 진입하는 것을 막을 수도 있다.

물론 스페인식 티키타카가 명백히 한계를 드러낸만큼 선수 자원을 통해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전술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 다만 스페인 델 보스케 감독은 전술적 면에서는 그리 높은 평가를 받고있는 감독이 아니라 실제로 전술이 변경될지는 미지수다. 델 보스케 감독의 유임 가능성 역시 불투명하지만 경질 가능성 역시 동일하다.

칠레의 경우 이번 대회에서 진정한 다크호스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통적인 스트라이커가 없지만 이를 산체스와 바르가스가 적절히 해결해 주고 있으며 수비진의 키가 작아 공중볼 경합에 불리한 것을 제외하면 특별한 약점이 없어 보인다.

다만 팀 플레이어의 핵심을 담당하는 산체스, 비달, 브라보 셋 중 한명이라도 낙마할 경우 이를 대체할 자원이 전무한 것이 잠재적인 불안 요소다. 수준급 양 윙백인 이슬라와 메냐의 이탈 역시 칠레의 전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추가적으로 언급하면 이번 스페인 전처럼 자기 중원에서 많은 공간을 내줄 경우 중거리 슛터를 보유한 팀들의 제물이 될 수도 있다. 이는 칠레 삼파올리 감독이 상대팀에 따라 적절하게 대처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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