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구원투수 얻고, 검찰은 수사 더 힘들어져

<정우택 논설위원>

삼성의 비자금, 에버랜드 편법증여, 떡값 검사의 존재 여부를 둘러싼 공방이 김용철과 삼성간의 싸움에서 김용철과 이종왕의 싸움으로 옮아갔다. 삼성의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에 대해 포문을 연지 10일 만에 삼성의 법무실장인 이종왕 변호사가 반격을 하고 나왔다.

이런 가운데 검찰이 사건을 서울 중앙지검에 배당, 수사에 나서고 김용철과 천주교정의 사제단이 떡값 검사의 명단을 발표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그야말로 김용철과 이종왕의 혈투에서 나오는 피가 어디로 튈지 모두들 긴장하고 있는 눈치다.

김용철은 삼성이 비자금을 조성해 로비를 하고, 에버랜드 편법증여와 떡값을 받은 검사가 있다고 폭로하고 이를 고발했으나 이종왕은 그런 일이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아예 밥줄인 변호사 자격도 반납했다. 김용철의 잘못된 처신을 보면서까지 자신이 변호사로 눌러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김용철과 이종왕은 둘 다 삼성의 법무실에서 일했다. 김용철은 광주일고와 고대법대를 나와 법무팀장을, 이종왕은 경북고와 서울법대를 나와 법무실장을 역임했다. 둘 다 삼성의 내막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하나는 폭로하고 하나는 그건 일이 없다면 이를 반격했다. 분명 둘 가운데 어느 하나가 엄청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종왕이 김용철의 주장을 반격하고 나와 삼성으로서는 일단 숨을 돌리게 됐다. 어떤 형태로든 방패막이가 생긴 것이다. 숨도 돌리게 됐다. 이종왕의 반격으로 비자금이나 에버랜드 편법증여, 떡값 검사등 문제의 본질보다 김용철과 이종왕의 싸움이 더 관심을 끌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은 더 복잡하게 됐다. 그동안은 삼성과 김용철만 상대하면 됐지만 이제는 이종왕까지 조사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검찰로서는 수사하기도 더 힘들고, 결과는 더 예측불허가 됐다. 자칫 김용철과 이종왕을 수사하는 게 아니라 둘 사이에 끼어 고생만 하고 결과가 없을 수도 있다. 한 마디로 황당할 것이다.

왜 이종왕이 가세했나?

처음에 김용철이 삼성에 포문을 열었을 때 시중에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었다. 실제로 비자금과 에버랜드 편법증여, 떡값 검사가 있기 때문에 이를 고발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고 반대로 김용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이 있지 않느냐는 얘기도 돌았다. 또 김용철이 자신의 입지 강화를 위해서 삼성 문제를 걸고 넘어졌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폭로 그 자체보다 배경에 더 관심을 가진 게 사실였다.

이번에 이종왕 변호사도 그렇다. 그의 말대로 비자금, 에버랜드 편법증여, 떡값 검사가 정말로 없기 때문에 이를 밝히기 위한 것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고, 김용철의 폭로에 맞불을 놓은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쉽게 말하면 이종왕이 궁지에 몰린 삼성의 구원투수로 나섰다고 보는 견해다.

김용철의 폭로와 이종왕의 반격 가운데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아직 모른다. 단지 이번 싸움의 정점에 있는 삼성, 당사자인 김용철과 이종왕 만이 잘 알고 있을 뿐이다. 현재로서는 누가 하나가 백기를 들든지, 검찰이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내야 뭐가 맞는지 알 수 있다. 두 사람의 주장이 너무 달라 섣불리 말하기는 어렵다.

삼성은 일단 한숨 돌려

삼성은 일단 숨을 돌렸다고 봐야 한다. 그동안 김용철과 시민단체, 천주교 사제단으로부터 죄인처럼 궁지에 몰렸던 게 사실이다. 비자금과 에버랜드 편법증여, 떡값 검사 문제가 나오면 '그런 일이 없다'고 하는 게 삼성이 할 수 있는 대응의 전부였다.

하지만 이종왕 법무실장이 삼성에는 비자금이 없다고 했다. 김용철이 주장하는 그런 비리가 없다고 단호하게 맞받아 쳤다. 그러면서 삼성은 깨끗한 기업이라고 했다. 삼성은 이종왕의 사표가 당혹스럽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몸을 던져 김용철을 반박하고 나온 게 여간 다행이 아닐 것이다.

이종왕이 전면에 나섬으로써 삼성은 전장에서 방패막이를 얻은 셈이다. 이종왕이 삼성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지는 한 김용철의 처음 폭로 때처럼 삼성이 일방적으로 궁지에 몰리지는 않을 것이다. 삼성은 이와 때를 같이해 김용철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이종왕의 결의는 대단하다. 변호사로 먹고 사는 사람이 자신의 밥줄인 변호사 자격증을 반납할 정도니 '한번 해보자' 는 각오임에 틀림없다. 두 사람의 '삼성'혈투가 벌어진다고 봐야 한다.

부담만 더 커지는 검찰

이종왕의 등장으로 가장 머리가 아픈 곳은 검찰일 것이다. 지금까지는 김용철과 삼성만을 상대로 조사를 하면 됐지만 앞으로는 이종왕까지 조사를 벌여야 한다. 한쪽에선 비리가 있다고 하고, 한쪽에선 없다고 해 양쪽을 다 조사하는 게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조사 대상과 범위가 지금보다 훨씬 넓어진다. 따라서 인력도 많이 투입해야 한고 조사 시간도 더 오래 걸린다. 얼마나 시간이 더 걸릴지 모른다.

검찰을 더 애먹이는 것은 아마 조사 결과에 대한 부담일 것이다. 솔직히 김용철이나 이종왕 모두 검사 출신으로 법에는 '귀신'들이기 때문에 검찰 조사에서 사실을 순순히 말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수사가 어렵고, 최악의 경우는 결론 없이 끝날 수도 있다.

검찰로서는 마치 여러 마리의 토끼를 쫓는 꼴이다. 토끼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쫓고 있는데 한 마리가 갑자기 나타나 다른 방향으로 뛰고 있는 꼴이다. 두 마리의 토끼가 이리 뛰고, 저리 뛸 경우 아무것도 잡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냥만 이런 게 아니라 수사도 그럴 것이다.

김용철과 이종왕의 수사 결과에 따라 먼저 포문을 연 김용철만 죽을 수도 있고, 늦게 반격에 나선 이종왕과 삼성이 함께 죽을 수도 있다. 또 검찰과 정치권이 죽을 수도 있다. 김용철과 이종왕의 혈투가 어디까지 갈지, 언제 끝날지, 누가 죽고 누가 살아 남을 지 참으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정우택 논설위원 chungwootae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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