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전체 금융 위기 수렁에 빠지는 건 시간문제

[투데이코리아=김영훈 기자] 정부의 부실기업 구조조정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대기업의 잇따른 '실적 쇼크'가 나타나면서 올해 신용등급이 떨어진 국내 기업이 외환위기 이후 최대치로 늘었다.

7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채권시장에서 회사채 거래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절반 수준인 6조1,128억 원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지난 2008년 11월(4조4,28억 원) 이후 7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리가 상승국면에 진입한 데다 올 연말 한계 기업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이 예고되면서 투자심리가 꽁꽁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연말까지 등급 조정이 이뤄지면 올해 신용등급 강등 기업 수는 1998년 외환위기 당시의 63개를 넘어설 수 있다는 분석도 거론되고 있다.

국내 3대 신용평가사 가운데 한국신용평가는 올해 45개 기업의 등급을 하향 조정했고, 나이스평가는 56개사, 한국기업평가는 42개사의 등급을 내렸다.

이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많은 규모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가 닥쳤을 때도 신용등급 강등 기업은 각각 30개 초반대 였다.

이처럼 기업신용등급의 무더기 하락은 수익성 악화가 직접적 원인으로 풀이된다. 각종 규제로 발목이 묶인 데다 엔저 등 환율변동으로 인한 수출경쟁력 약화도 문제였다.

실제로 기업들은 실적부진, 부채증가의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수익도 급감하고 기업 구조조정 이슈까지 불거지자 대기업 신용등급도 뚝뚝 떨어졌다.


◇ 기업부채 아시아 신흥국 中 최고 수준

우리 경제 규모에 비해 가계부채, 기업부채 모두 아시아 신흥국 가운데 최고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해 1분기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84%로 신흥국 평균인 40%의 2배에 이르는 등 18개 신흥국 중 가장 높았다.

신흥국의 비금융 기업부채는 23조7천억 달러(약 2경7천397조원)로 10년동안 5배 이상 빠르게 증가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이 2007년 4분기 60%에서 지난 1분기 89%로 급상승했다.

18개 신흥국 중 GDP 대비 비금융 기업부채 비율은 홍콩이 226%로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중국(161%)과 싱가포르(142%), 한국(104%) 순이다.

신흥국 비금융 기업부채 중 외화부채 비율은 2007년 4분기 GDP 대비 12%에서 지난 1분기 16%로 늘어 전체 신흥국 기업부채 중 18%가량을 차지한다.

산업별로는 조선, 운수, 철강 등 산업 구조적 요인으로 경쟁력이 저하되고 있는 업종을 중심으로 한계기업 비중 및 부채비율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조선업의 경우 2009년 6.1%에서 2014년 18.2%로 상승했고 운수업은 13.3%에서 22.2%, 철강업도 5.9%에서 12.8%가량 한계기업 비중이 늘어났다.

신흥국 기업부채 문제는 미 연준의 금리인상 시기를 기점으로 가시화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도 해외자본 유출, 신흥국에 대한 수출 감소 등 부정적 파급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하므로 외화 유동성 관리, 신성장동력 발굴 등 다방면의 대책이 요구되며, 금융당국 역시 부실 대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의 강도와 속도를 대폭 높여야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가계부채보다 기업부채가 우리 경제에 더 위협적인 요소라고 진단한다. 빠른 시일 내 부실기업을 골라내 희망이 보이지 않는 기업은 퇴출시키고, 소생 가능성이 있는 기업은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소리다. 그렇지 않고 계속 미적댄다면 또다시 국가 전체가 금융 위기의 수렁에 빠지는 건 시간문제다.


◇ '한계기업' 증가 뚜렷…대기업 中企보다 3배 더 빨라

경기 침체의 늪에서 이자도 제대로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 이른바 '좀비기업'의 증가세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 대기업의 한계기업 비중이 중소기업보다 3배 가량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 중 한계기업의 부채비율은 8.0%p 하락했지만 대기업 한계기업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기준 231.1%로 같은기간 14.8%p 상승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진 우리 경제 전반이 '시스템적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산업별로 보면 과거 우리경제 성장의 주축이 됐지만, 산업 구조의 변화로 경쟁력을 잃게 된 조선·운수·철강 등의 업종에서 한계기업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조선업의 한계기업 비중은 2009년 6.1%에서 2014년 18.2%로 12.1%p 상승했고, 운수업(13.3%→22.2%)은 8.9%p, 철강업(5.9%→12.8%)은 6.9%p 상승했다.

좀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은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돈을 벌어 이자도 내지 못하는 좀비기업들이 늘어난 탓에 금융지원의 효과를 저해하고 실물시장마저 왜곡함으로써 경제활성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부실화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 상황이 심상치 않은데다 내년 4월의 총선 국면과 뒤엉킬 경우 구조조정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좀비기업 퇴출을 서두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은행도 최근 발표한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지난해 말 기준으로 3년 연속 한계기업에 이름을 올린 곳이 3,295개로 외부감사 대상 기업의 15.2%에 달한다고 밝혔다. 더욱이 조선과 철강·해운업종을 중심으로 정책자금 지원에만 의존해 연명하는 좀비기업이 급속히 늘어 우려를 키우고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과도한 기업부실 누적은 신용등급 하락과 동시 우리 경제에 악영향이 우려되고 있어 앞으로 기업 및 경제가 성장세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정책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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