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상 고발, 희생자 위로, 남겨진 사람들 순 흐름 읽혀


-무명천 할머니, 레드헌트, 끝나지 않은 세월, 지슬, 비념, 오사카에서 온 편지

'제주4·3사건'이란 1947년 3월 1일에 양민대상 경찰 발포 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이후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서 정리-


[투데이코리아=노철중 기자]‘제주4.3사건’(이하 4.3)이 69주년을 맞았다. 지난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참석한 가운데 추념식이 열렸다. 이 비극적 사건은 66주년 바로 직전인 2014년 3월 18일 대통령령으로 국가기념일로 지정 됐다. 이전까지는 추모제로 진행됐었고 66주년 추념식 자리에 대통령은 없었다. 그만큼 오랜 세월 국가는 이 비극에 대해 무관심했다.


비록 1999년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2003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공식 사과했지만 여전히 진상규명과 배·보상 문제가 남아있다. 하지만 1978년 유신시절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이 4.3을 처음 다룬 이후로 시·소설·미술·노래·영화 등 여러 예술분야에서 끊임없이 이 문제를 다뤄왔다. 1990년대부터 TV방송 및 다큐멘터리, 극영화로 최근까지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69주년을 맞은 요즘, 다시 이념적 대립이 최고조에 이른 이 시기에 4.3을 다룬 영화들을 소환해 보는 것은 유의미한 일일 것이다.


참상 고발, 희생자 위로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이야기


대표적인 영화들로는 ▲<무명천 할머니>(김동만, 1999) ▲<레드헌트>(조성봉, 1997)▲<끝나지 않은 세월>(김경률, 2005)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오멸, 2012) ▲<비념>(임흥순, 2012) ▲<오사카에서 온 편지>(양정환, 2017)) 등이 있다.


영화 <무명천 할머니>는 제주4.3사건이 진행 중이었던 1949년 30대의 나이에 총탄에 맞아 턱을 잃고 반세기 이상 턱에 하얀 무명천을 두른 채 한 많은 삶을 살다가 2004년 돌아가신 진아영 할머니에 관한 20분짜리 짧은 다큐멘터리다. 제주4.3다큐멘터리제작단이 제작하고 김동만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이 영화는 국가의 이념대립 상황에서 국가에 의해 행해진 폭력이 한 개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잘 보여준다.


1997년 제작된 <레트헌트>는 제2회 인권영화제에 상영된 이후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규정돼 당시 영화제 집행위원장이었던 서준식 씨와 조성봉 감독이 고초를 겪기도 했다. 당시를 경험했던 분들의 생생한 증언으로 이뤄진 이 영화는 4.3의 잔혹함을 고발한다.


<끝나지 않은 세월>은 4.3사건을 다룬 최초의 장편 극영화다. 4.3 당시 아버지와 형을 잃은 형민과 평범한 농부에서 복수를 위해 무장대로 활동하다 토벌대로 돌아선 황가의 우연한 인연을 다룬다. 한 친구가 무장대고 다른 친구가 경찰로 나눠져 싸우게 되는 비극적인 상황을 그리고 있는 작품.
▲ 영화 포스터. 사진=자파리 필름 제공.

앞선 세 편의 영화가 4.3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은 희생자들의 영혼을 소환해 위로를 해주는 작품이다. 마치 전통 제례를 지내 듯 신위, 신묘, 음복, 소지로 이뤄진 4개의 장은 영화의 제의적 성격을 나타낸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의외로 희생자들의 소소한 일상에 초점을 맞춘다. 당시 정치적 상황을 잘 몰랐던 순박한 마을 주민들은 목숨이 위태로운 급박했던 상황 속에서도 사소한 일에 집중하며 시간을 지체한다. 동시에 공포영화 같은 무시무시하고 살벌한 장면들을 삽입함으로써 당시 지옥 같았던 분위기를 어둠과 안개 그리고 기괴함으로 연출한다.


이제 4.3을 다룬 영화들은 남겨진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비념>은 그 이후 제주 곳곳에 남아있는 시린 상흔들을 짚어낸다. 4.3 피해자인 강상희 할머니의 집에서 출발한 카메라는 남읍리, 가시리, 강정마을, 일본 오사카 등을 거쳐 다시 돌아왔을 때 할머니 잠자리 밑에 있는 녹슨 톱을 비춘다. 제주도에는 악몽을 꿀 경우 잠자리 밑에 톱 같은 날카로운 쇠붙이를 두는 풍습이 있다.


<오사카에서 온 편지>는 4.3으로 인해 고향 제주를 떠나거나, 사랑하는 이를 일본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이들의 실제 사연을 그린다. 피신하듯 홀로 제주에서 오사카로 떠나 돌아오지 못한 권경식 할머니, 반대로 오사카에 있는 부모와 떨어져 지낸 문인순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다큐와 드라마를 오가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는 영화는 다소 투박한 방식으로 관객들이 스스로 4.3이 무엇인지 찾아보게 만든다.


이렇듯 위 6편의 영화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4.3에 대해 알리고 희생자들을 추모한다. 7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남겨진 상처는 여전히 비일비재하고 그 상처들은 아직까지 치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양정환 감독, 국내 전국과 세계에 4.3 알리기 적극


제주일보 3월 29일자 보도에 따르면, <오사카에서 온 편지>의 양정환 감독은 희생자 유해발굴사업을 배경으로 한 ‘4월 이야기’를 차기작으로 준비하고 있다. 다음에는 제주4·3사건 이후 남겨진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몽생이’(망아지의 제주 방언) 제작에 심혈을 기울인 후 3부작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제주4.3사건을 전국과 세계에 알린다는 계획이다.


지금 현재 4.3을 알리려는 노력은 제주도에서만 이뤄지고 있는 듯 보인다. 중앙 언론도 적극적으로 이를 돕고 있지 않다. 제주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서울까지 올라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들 중 정식 개봉한 영화는 <지슬>과 <비념> 뿐이다. 특히 <지슬>은 2013년 3월 국내 개봉 전 해외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고 개봉 후에는 여세를 몰아 관객수 14만3715명을 기록했다. <비념>은 2012년 전주국제영화제에 처음 공개된 후 여러 국내 영화제에서 소개되다가 <지슬>보다 한 달 가량 늦은 2013년 4월 정식 개봉했다. 하지만 관객수 2308명을 기록해 아쉬움을 남겼다.


위 두 작품은 제작과 배급 그리고 상영까지 모든 부분들이 열악한 상황에서 이룬 쾌거라고 할 만 하다. 가장 최근 제작된 영화 <오사카에서 온 편지>는 스토리펀딩고 공식 블로그 운영으로 근근히 이 상황을 힘겹게 극복해나가고 있다. 4.3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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