웜비어 사망 앞 美 정계·언론·시민 한 목소리로 "응징" 촉구

▲ 제갈량


[투데이코리아=오주한 기자] #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촉군(蜀軍)에 밀려 방어에만 전념하던 위군(魏軍)은 어느 날 촉군 총사령관인 제갈량(諸葛亮. 181~234)이 사망했다는 소문을 접한다.


수 차례의 탐색 끝에 정말로 제갈량이 죽었다는 결론에 이른 위군 총사령관 사마의(司馬懿. 179~251)는 전군을 동원해 퇴각하는 촉군을 뒤쫓는다.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한 찰나, 수레에 탄 제갈량이 사마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제갈량의 계책에 수도 없이 당해 한 때는 계곡에 갇혀 불타 죽을뻔한 적도 있던 터라 사마의는 제갈량을 보자말자 뒤도 안 돌아보고 달아난다. 촉군은 그 뒤를 쫓아 한바탕 후려친 뒤 큰 병력손실 없이 한중(漢中)으로 퇴각하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촉군이 모두 물러난 뒤 정탐을 나갔던 병사가 충격적인 사실을 사마의에게 전한다. 제갈량은 정말로 죽었으며, 전투에서 모습을 드러낸 제갈량은 나무를 깎아 만든 인형이었다는 것이다.


사마의는 견딜 수 없는 수치심 앞에 "제갈량은 죽어서까지 무섭다"고 한탄한다. 이른바 '죽은 공명(孔明. 제갈량)이 산 중달(仲達. 사마의)을 쫓다' 즉 사공명주생중달(死孔明走生仲達) 고사의 유래가 된 이야기다.


# 인류 전쟁사(史)에는 '단 한 명의 죽음'이 전쟁으로 연결된 사례가 적지 않다. 그 중 하나가 몽골의 서역 정벌이다.


초원을 통일해 몽골제국을 일으키고 중국 북부까지 집어삼켜 초대 칸(Khan)에 오른 칭기즈칸(Genghis Khan. 1155~1227)은 서역의 부국 호라즘(Khorazm) 왕국에 사신을 보낸다.


사신은 평화사절단으로서 통상 목적으로 500마리의 낙타에 금과 은, 비단 등을 산더미같이 싣고 길을 떠났으나 어처구니 없게도 호라즘 왕국의 일개 관리에게 붙잡혀 목숨을 잃는다.


이것이 계기가 돼 칭기즈칸은 인류 역사를 영원히 뒤바꾼 대사건으로 평가되는 서역 정벌에 나선다. 60만 대군을 모아 그 중 20만을 칭기즈칸 자신이 친히 거느리고 호라즘으로 향했다.


호라즘은 병력을 모아 결사항전했으나 훗날 동유럽까지 정복하는 몽골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모든 도시가 함락되고 남자들은 모조리 죽임을 당했으며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로 끌려갔다.


한 때 동서양을 잇는 서역의 부국으로 찬란히 빛났던 도시는 정적만이 감도는 폐허가 되어 모래사막 아래에 영원히 파묻히고 말았다.


중국과 서역에 원(元)나라 및 수 개의 칸국(Khanate)을 세우고 봉건제를 실시한 몽골제국은 칭기즈칸의 아들 오고타이칸(Ogodei Khan. 1186~1241) 시대에 이르러 급기야 유럽 원정까지 나선다.


원정군은 서역을 통로로 진군해 러시아를 격파하고 독일·폴란드 연합군마저 궤멸시킨 후 헝가리를 거쳐 아드리아해까지 진출했다.


이후 200년 동안 러시아는 몽골제국 산하 킵차크칸국(Kipchak Khanate)의 식민지가 됐다. 21세기 오늘 날에도 러시아인들은 타타르(Tatar. 몽골)인을 두려움과 증오의 대명사 격으로 삼고 있다. 독일 요리인 함부르크 스테이크(Hamburg Steak)가 몽골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이 모든 것이 '단 한 명의 죽음'에 따른 전쟁에서 비롯됐다.



▲ 트럼프 대통령


미국은 자국민 안전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나라다. 쿠데타로 봉건왕조 체제가 무너진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세계 최초로 공화정(共和政)으로 건국된 나라이기에 더욱 그렇다. 수정헌법 2조에서 총기무장을 통한 국민 개개인의 자위권 행사 허가를 명시하고 있을 정도다.


미국은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해 수많은 국민이 목숨을 잃자 배후인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을 무려 10년 간 추적해 끝내 사살했다.


당시 많은 반미(反美) 국가·테러조직들, 심지어 북한까지도 혹여나 미국의 '분노'를 살까봐 이례적으로 알카에다(al-Qaeda) 비난 성명을 내는 등 눈치를 봐야만 했다.


실제로 미국은 9.11테러 직후 이라크·아프간을 공격해 불과 한 달만에 두 나라 정부를 붕괴시켰다. 근래에는 자국민을 참수한 이슬람국가(IS) 토벌전에 나서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극단적 성향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어느 나라·세력도 미국인을 건드리지 않고 있다. 중동 반미(反美) 정책의 상징과도 같은 아야톨라 호메이니(Ayatollah Khomeini)도 79년 11월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 직원 억류사태가 빚어지자 여론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전원 석방했다.


그런데 핵·미사일 완성 근접에 따른 지나친 자신감에 폭주한 탓일까, 2017년 6월 북한이 미국인을 살해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작년 초 북한 관광 중 단지 정치선전물에 손 댔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돼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구금됐던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Otto Frederick Warmbier. 향년 22세)가 '반송장'이 되어 미국에 송환됐다가 지난 19일 꽃다운 나이에 끝내 사망한 것이다.


북한은 식중독에 따른 사망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미국 측 의료진은 이를 반박하고 있다.


식중독 흔적을 찾을 수 없을 뿐더러 일정한 혈류 공급이 중단된 심폐정지 상태에서 뇌조직이 파괴되는 형태의 뇌 손상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즉 웜비어가 고문에 따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웜비어가 혼수상태에 빠진지 1년이 넘도록 이를 은폐한 것으로도 드러났다.


미국 여론은 정치권, 언론, 국민을 가리지 않고 분노로 들끓고 있다.


도널트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은 사망 당일 성명에서 북한을 "잔혹한 정권"으로 규정했다. "미국 정부가 법과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정권으로부터 무고한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는 결심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외교 사령탑인 렉스 틸러슨(Rex Tillerson) 국무장관은 "웜비어의 부당한 감금과 관련해 반드시 북한에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니키 헤일리(Nikki Haley)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셀 수 없이 많은 무고한 남녀가 북한 범죄자들 손에 죽어갔다"며 "이번 사건은 북한 독재정권의 야만적 본질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고 비판했다.


의회도 여야(與野)를 가리지 않고 격앙된 상태다. 여당 공화당 소속인 존 매케인(John McCain) 상원 군사위원장은 성명에서 "미국 시민 웜비어는 김정은 정권에 살해당했다"며 "미국은 적대정권이 우리 시민을 살해하는 일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같은 당 마크 루비오(Mark Rubio) 상원의원은 "웜비어는 하잘 것 없는 정치선전물을 찢었다는 이유로 억류되고 살해됐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소속 벤저민 카딘(Benjamin Cardin) 상원의원은 "웜비어는 억압적이고 살인적인 김정은 정권에 희생됐다. 북한은 야만적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 언론에서는 대북(對北) 선제공격 목소리도 불거지고 있다. 폭스뉴스에 출연한 정치분석가 에릭 볼링(Eric bolling)은 "북한 미사일이 LA를 향할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고 단언했다.


여론도 마찬가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웜비어 사망 기사 댓글에서 미국 시민들은 "북한 정권을 없애야 할 때" "우리도 보복해야 한다" 등 강력한 대응을 행정부에 요구했다.


▲ 폭격 중인 B-1B 랜서(Lancer)


실제 선제공격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우리 군(軍) 관계자에 따르면 20일 미국은 B-1B 전략폭격기를 한반도에 파견했다. B-1B는 재래식 폭격기 중 으뜸의 성능을 지녔다.


1만5천m 상공에서 최대 마하 1.25의 속도로 9400km를 비행할 수 있다. 합동정밀직격탄(JDAM) 24발, 재래식 폭탄 84발, 공대지 정밀유도탄 30발 등 최대 56t의 폭탄을 탑재하고 공격지점을 '무인(無人)지대'로 만들 수 있다. 침투 시에는 초저고도 비행으로 레이더 탐지를 피할 수 있다.


미국이 북폭(北爆)과 한국 주도 통일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는 중국·러시아 눈치를 더 이상 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미국은 현재 중러(中露)에 동시에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다. 근래에는 러시아 우방인 시리아에 대규모 폭격을 실시한 사례가 있다. 중국은 도광양회(韜光養晦) 원칙에 따라 반미(反美)를 소극적으로 행하고 있다.


현실적으로도 재래식 전쟁에 한해 중러는 군사적으로 미국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한반도 전쟁 시 전력의 주축이 될 해군력에서 미국은 항공모함 11척을 운용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이제 겨우 1척, 러시아는 예산 사정으로 운용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우방국으로까지 범위를 확대하면 전력차는 더욱 확실해진다.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환태평양 합동훈련(RIMPAC. 림팩) 등을 통해 영국,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들 및 동유럽 국가 일부와 일본, 호주 등 태평양 국가들과 동맹을 맺고 있다. 모두 내노라하는 군사·경제 대국이다.


반면 러시아는 소련 붕괴로 인해 바르샤바조약기구(Warszawa)를 잃고 이제 겨우 유라시아경제연합(EEU) 등 연합체 구성에 시동을 거는 처지다. 중국도 상하이협력기구(SCO),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을 통해 막 기지개를 켜는 수준이다.


여기에 중러에 적대적인 동남아·북유럽 국가들까지 감안하면 중러는 외교적으로도 미국의 상대가 될 수 없다. 웜비어 살해사건 앞에 북한을 옹호하면 "범죄정권 배후"라는 명분만 줄 뿐이다.


경제로까지 범위를 넓히면 중러는 미국 앞에 한 층 초라해진다. 올 2월 세계은행 발표 자료에 따르면 미국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18조366억 달러로 세계 GDP 총합의 4분의 1 수준이다. 2~10위(중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인도·이탈리아·브라질·캐나다) GDP를 합친 것과 비슷한 규모다.


결국 중러는 미국과의 군사적 충돌 시 '대리전 장소로 적합하다'는 지정학적 이점을 포기하면서까지 북한을 버리고 미국의 북폭을 묵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실제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시리아 폭격 개시를 전달받자 '10초 간 침묵'한 뒤 북폭을 예감한 듯 대북제재 수위를 높이기 시작한 바 있다.


전 세계 많은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웜비어 살해로 자충수를 뒀다고 평가하고 있다. 돌이킬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넜다고 지적하고 있다. 북폭은 이변이 없는 한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북폭 가능성이 대두됨에 따라 북한과 맞닿아 있는 우리나라 대응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1기 외교안보 라인이 '대북 대화파' '미국 역할 축소파'를 주축으로 하고 있어 미국과의 마찰이 예상된다.


사실상 정부 2인자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주사파(NL. 주체사상파) 조직인 전대협 의장 출신으로 2005년부터 사단법인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다.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근래 문재인 대통령 입장이라며 한미 훈련 축소 방침을 시사했다.


문 대통령은 20일 미 CBS방송 인터뷰에서 자신이 직접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과 대화에 나설 수도 있다고 밝혔다. 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미북(美北) 관계 정상화는 김정은도 외면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여론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대북 강경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1~2차 연평해전을 통한 북한의 우리 장병 살해행각에도 불구하고 보복하지 않고 지원을 지속해 미국과 갈등을 초래한 김대중·노무현 정부 전철을 따를지, '김정은 참수작전'을 입안한 전임 정부 정책을 수용할지 여부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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