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해야 되는 것을 알지만 아무도 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지각을 일깨우다



[투데이코리아=노철중 기자]<니키타>(1990), <그랑블루>(1993), <레옹>(1995), <제5원소>(1997), <택시>시리즈(1998, 2000, 2004), <루시>(2014) 등 한국에서도 익숙한 영화들을 다수 연출해 온 프랑스 출신 영화감독 뤽 베송이 영화 <발레리안>으로 다시 돌아왔다.


뤽 베송 감독은 <발레리안> 개봉을 앞두고 특별히 한국을 방문해 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과 만나고 jtbc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 출연하는 등 활발하게 영화 홍보에 참여했다.


영화 <발레리안>은 28세기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SF액션 영화다. 수천 종의 외계종족이 평화롭게 살고 있는 28세기 우주. 에이전트 발레리안(데인 드한)과 로렐린(카라 델러비인)에게 30년 전 사라진 행성 뮐의 마지막 남은 컨버터를 되찾아 오라는 미션이 내려진다.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28세기 우주에서 행성 뮐의 멸망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직장 동료로서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발레리안과 로렐린이 티격태격 하며 뮐의 수수께끼를 푸는 과정이 코믹하고 스펙타클하게 펼쳐진다. 간혹 화려한 CG 때문에 어지럽기는 하지만 이 둘의 러브스토리가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판타지는 판타지일 뿐이다?


신기한 것은 28세기 미래의 수수께끼의 구조가 지금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진실을 숨기려는 자와 진실을 밝혀내려는 자의 대결 구도는 영화나 소설에서는 클리셰(cliche, 진부한 것의 프랑스어 표현)로 치부된다. 그러나 현실은 늘 클리셰로 넘쳐난다.


뤽 베송 감독은 인류애, 사랑 등 인류의 가장 근원적인 가치에 대해 천착해왔다. 뤽 베송이라는 이름을 알린 1990년 작품 <니키타>는 살인병기로 길러진 한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커다란 정신적 혼란을 겪는 내용을 담은 액션 영화다.


모든 훈련의 막바지에 주인공은 한껏 여성스럽게 치장하고 자신이 흠모하는 비밀조직의 보스와 멋진 레스토랑에 마주 앉는다. 그날은 그녀의 생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내민 선물상자 안에는 지령이 적힌 쪽지가 들어있다.




레스토랑에 있던 손님들은 그녀를 죽이려는 적들로 변하고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진다. 아름다운 드레서에 귀걸이, 향수, 사랑이라는 감정 등은 일순간에 무의미한 것이 돼 버린다. 사투 끝에 쓰레기 배출구를 통해 가까스로 탈출한 그녀를 맞이하는 것은 추적추적 내리는 비다. 이 장면은 영화 역사상 최고 명장면들 중 하나로 꼽힌다.


<레옹>의 전 세계적인 성공 이후 그는 <제5원소>로 할리우드에 진출한다. 할리우드 진출 이후 그의 영화 스타일은 말 그대로 할리우드적으로 변해갔다는 비판도 들었다. 하지만 늘 변함없이 영화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주제는 ‘사랑’이었고 스토리 전개의 원동력은 ‘The Pwowe of LOVE'였다.


그가 얘기하는 사랑은 남녀, 부모와 자녀 사이, 인류애 등 이 세상 모든 사랑이다.


5.18 문제 해결의 열쇠를 찾다?




요즘 한국에서는 5.18관련 뉴스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영화 <발레리안>을 보면서도 1980년 광주의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뤽 베송 감독의 팬이라면 <발레리안>의 결말은 금방 예측 가능한 것처럼 그 시절 광주의 진실도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너무 일반화하는 오류가 될 수 있지만 이 세상 모든 갈등은 사랑으로 모두 해결 가능하다. 인류애만 있다면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전쟁이 일어날 리 없다.


기자간담회에서 뤽 베송 감독은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사회‧경제적인 통제에 사로잡혀 어릴 때 꿨던 꿈들을 잃어버린다고 말했다. 돈이 아름다운 것 혹은 가치들을 파괴한다고도 했다. 어린시절에 꿨던 꿈을 어른들이 다시 찾기를 바라는 감독의 마음이 영화 <발레리안>에 담겨있다.




“원작 만화 ‘발레리안과 로렐린’은 7~80년대 쓰여졌지만 오늘날 까지도 이런 문제들이 계속된다. 환경문제라든가, 공생하는 문제, 인종차별, 진실 되게 소통하기와 같이 우리가 점점 잃어가는 것들에 대한 부분 말이다. 어릴 때는 꿈을 마음대로 꾸지만 자라면서 꿈도 사회의 통제를 받는다. 어린이에게 꿈이 무엇이냐 물으면 하늘을 나는 것이라고 답할지 모르지만, 어른에게 물어보면 새 차를 사고 싶다고 말한다. 이 영화는 꿈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런 면에서 어른들에겐 좋은 약이 될 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발레리안은 임무냐 인류애냐라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그때 그의 연인 로렐린은 그를 바른 길로 이끈다. 일반적인 사업가는 비즈니스에서 돈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선택을 한다. 논리적으로는 돈을 선택하는 사업가가 맞다. 그런데 그 사업가의 어릴 적 꿈은 우주비행사였다. 지금은 돈을 벌어 새 차를 사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비슷하게 1980년 대한민국은 민주화를 향한 열망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이에 대해 군부는 최루탄과 폭력으로 응징했었다. 광주 시민들은 친구, 이웃, 학생들이 군인의 곤봉과 군화발 아래 유린되는 광경을 목격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현실에서 3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실은 가려져 있다.


그러나 적어도 뤽 베송의 영화에서만큼은 이런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주인공들은 엄청나게 고생을 하지만. 영화 <발레리안> 그리고 뤽 베송 감독은 사랑이라는 열쇠가 가장 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음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어렵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때로 바보처럼 보일지라도 꾸준히 사랑의 가치를 이야기 하는 것. 이것은 뤽 베송 감독의 최고의 미덕이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