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새 집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이구동성으로 걱정하는 점이 있다. 관리 동 앞에 조성해 놓은 50 평 남짓한 텃밭이다. 아! 참 관리 동은 무엇이냐고? 22평 집 지을 때, 머리에 태양광 판을 세 개 이고 있는 9평의 원룸 집을 하나 더 지었다. 우리끼리 이름 붙이기를 관리 동. 30년 동안 우리 고택을 돌보아주신 아주머니를 위해 지은 것이지만 지금은 요양 병원에 계시니 조만간 다른 주인을 찾아야 한다. 서로 의지하며 함께 고택과 정자를 돌볼 사람이 누군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지어 놓았다. 그 관리 동 앞에 장만해 놓은 텃밭이다. 600 평의 대지 중에서 오로지 흙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건물을 제외한 다른 땅은 전부 잔디로 덮여 있지만 그 땅만은 그대로 맨 살을 보여주고 있다. 그 곳에 농사를 짓는 것만 해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땅! 그리고 흙! 거실 흔들의자에 앉아 물끄러미 그 땅을 바라보았다. 천지인이라 했으니 옛 부터 많은 철인들이 하늘 못지않게 땅에 대해서 생각했을 것이다. 도시에서는 포장된 땅을 밟았으니 흙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신발에 흙이 묻으면 닦기에 바빴다.
저 무서운 흙이 있는 땅을 어떻게 하지? 저 텃밭을 어떻게 하지?
기회는 상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옆집에 사는 남편의 8촌 형님 부부가 와서 그 텃밭에는 지금 배추씨를 뿌려야 한단다. 당신 밭에는 벌써 파종했으니 내일 쯤 하도록 도와주시겠다는 것이다. 이곳이 좋은 점은 남편 성씨인 성산 이 씨 집성촌이어서 친척 분들이 여러분 된다는 점이다. 그 분들이 해야 한다면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파종하는 날 아침에 나와 보니 앙증맞은 트럭이 텃밭 한 가운데까지 들어와 가축 분 퇴비라고 쓰인 20키로 포대를 내리고 있다. 오! 저런 작은 트럭이야말로 농사에 유용한 것이네.
우리 부부도 급히 준비를 하고 나와 두 분을 도왔다. 포대 한 쪽 끝을 칼로 찢어 텃밭 이 곳 저 곳 골고루 뿌렸다. 암껏?도 안 되는 열 포대를 장갑 낀 손으로 이곳저곳 헤쳤다. 그리고는 호미로 땅을 팠다. 굳어진 흙은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아! 그래서 옛 글에서 돌밭을 갈다가 손이 헤졌느니 하는 얘기가 나오는구나. 형님 부부는 잠시 무언가 의논하더니 기계를 빌려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나 보았다. 얼마 후에 이상하게 생긴 기계를 굉음과 함께 끌고 왔다. 차로 된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걸으면서 끌고 오는 기계니 포장길 위로는 운전해 올 수 있었지만 막상 맨 땅으로 들어가 조작하려니 어려움이 많아 보였다. 한 사람 무게만한 쇳덩어리처럼 생긴 놈을 70이 넘은, 그것도 체구가 작은 형님이 다루기에 버거워보였다. 걱정하는 차에 남편의 또 다른 8촌 동생이 나타났다. 그래도 60대다. 좀 안심이 되었다. 관리기라 이름 하는 이 기계에서 줄을 뽑아 시동을 걸자 톱니로 된 쇠발이 물레방아처럼 물 대신 굳어있는 땅을 헤치며 고랑을 파고 밭의 모양을 만들어 나갔다. 사방에 흙이 튀었다. 누가 발명했는지 이 기계가 그렇게 위대해 보일 수가 없다.
검은 비닐을 땅에 깔고 삽으로 흙을 뿌려 고정시키는 법도 배웠다. 다음은 카터 칼로 적당한 간격의 구멍을 내고 그 구멍마다 3-4개씩의 배추씨를 놓고 흙을 살살 덮는 것까지도.
새파란 색깔의 배추씨엔 이미 소독이 되어 있단다. 모종을 심는 대신 좁쌀보다도 더 작은 배추씨를 파종하는 것은 모종은 품질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덟 고랑 중 두 고랑은 무와 얼갈이배추를 위해 남겨 놓는다고 한다. 무는 배추보다 닷새 뒤 8월 말일에나 뿌린다는 것이다. 닷새의 간격? 그 섬세한 농사의 묘미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오늘 손에 처음 흙을 만졌다. 흙이 내 친구로 왔다.
안녕 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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