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배추씨를 솔솔 뿌릴 때 형수님이 말했다.
“조금 있으면 고춧가루를 사야 합니더. 고춧가루를 좋은 걸로 사려면 때가 있거든요”
내가 대답을 안 하자. 그이는 다시 말했다.
“이거 모두 김장을 할 거 아잉교?” 그래서 내가 말했다.
“저 김장 안 할지도 몰라서요.”
그랬더니 형수님은 실망한 듯 말했다.
“하긴... 작년에 값이 좋을 때는 한 통에 3000원 받고 팔았니더.”
내가 50평 배추밭에 배추씨를 뿌리면서 이 배추가 예쁘게 크면 무얼 할까?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빈 땅을 놀리는 게 아까워, 품질이 가장 좋다는 새파란 색 배추씨를 뿌리고, 먹음직스럽게 잘 자란 배추가 아까워 좋은 품질의 맛난 고춧가루를 사서 김장을 담그고, 많은 김장이 아까워 자식들 친구 친척에게 싸 보내고? 그러면서 관절염과 근육통에 시달리고 허리 아파 수술하고 병원 신세 지고? 그런 이유로 도시에 사는 모두가 농사를 무서워한다. 농사가 무서운 것만이 아니라 즐거울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계속 도는 수레바퀴 중간에서 내리기도 해야 한다. 무조건 종점까지 가는 게 아니고.
한 가지가 아까워 다음 일을 하고, 또 그 결과물이 아까워 다음 행동을 하는 그런 톱니 속의 생활을 그만 두어 보면 어떨까? 그럼 남은 밥이 아까워 다 먹고 살이 찐 다음엔 빼느라고 애쓰는 어리석은 낭비를 없앨 수 있지 않을까?
전라도에서 벼농사를 하는 농부 한 분이 말했다.
“사람들이 왜 밥만 그렇게 버리지 못하는지 몰라요. 일반 가정에서 밥의 재활용도가 가장 높다는 군요. 남은 밥을 제발 버려 주기만 해도 쌀 소비량이 조금은 늘 텐데........”
그 농부의 말은 내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불가에서 버려라, 버려라, 하는 것이 여기에도 적용되는구나. 버리면 들새들도 날아와 먹고 들 고양이들도 찾아 먹고 들개들도 먹을 수 있을 텐데. 아파트에서 버리는 음식찌꺼기가 다른 동물의 먹이로 간다는 걸 알면 그렇게 아낄 필요가 없지 않을까?
50년대 전쟁을 지나면서 너무도 못 살던 시절, 그래서 하수구의 밥알도 주어먹던 그 시절에서 심리적으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는 예이긴 하다. 혹한의 시베리아 벌목장에서 일하다가 다음 달, 열사의 중동지방에서 송유관을 건설하는 우리 민족이지만 유독 농산품에 대해서만은 그 적응력이 발휘되지 못하나보다. 생명을 유지해 주는 농산물에 대한 존경이라고 보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농산물이라도 우리의 생명 그 자체보다는 중요하지 않다. 농산물을 키우고 식탁에 오르도록 만드는 활동이 노인들에게는 생명을 갉아먹을 정도로 힘들 수도 있으니까.
나는 귀농주부가 아니라 귀촌주부라는 생각을 잊지 않으려 한다. 내게 농사는 하나의 선택이다. 농사를 지을 수도, 짓지 않을 수도 있다. 마지막 생애의 끝부분을 농촌에서 보내면서 즐겁고 기쁜 일을 되도록 많이 가지려고 한다.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쁨을 가지고 싶고 농사도 그러한 기쁨의 일부분이 될 것이다. 예쁘게 자라는 배추를 보며 기뻐할 것이다. 혹시 솎아주질 못해 크지 못하는 놈들도 그냥 보아줄 것이다. 배추는 꼭 솎아야만 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다 크면? 그 때 가서 생각해 볼 일이다.
싹이 트고 자라가는 배추아기가 벌써 눈에 보인다. 배추가 친구로 왔다.
안녕, 내 친구!
조은경 약력
△2015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
△소설 '메리고라운드' '환산정' '유적의 거리' '아버지의 땅'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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