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기 교수
우리네 전통적 삶의 공간이었던 농어촌 지역이 텅텅 비워지고 있다. 한 연구에 의하면 25년 뒤에는 충남지역의 경우에만 농어촌마을 351개가 사라진다고 하고, 현재 고령화 추세라면 이렇게 사라지는 마을이 전국적으로 속출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제 순수한 농어촌지역인 면단위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1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국민 10사람 중 1사람만이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넓은 농어촌지역에 흩어져 연약한 삶의 뿌리를 이어가고 있다.
농어촌의 과소화, 공동화는 국토의 이용과 관리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던지고 있다. 과도한 농어촌인구 유입으로 도시는 도시대로 과밀의 도를 더해가면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이제는 땅속에 길을 내고 집을 짓고, 지하도시를 만들어 살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되었다. 유례없는 도시집중으로 야기된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도시 병리를 다스리느라 엄청난 국가재정이 지속적으로 투입되면서 나라 살림살이가 크게 쪼들리고 있다. 좁은 국토 넓게 이용하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
농어촌문제의 본질은 과소화되고 공동화되는 현상 바로 여기에 있다. 몇 안 되는 사람만이 남아 살다보니 많은 편익 및 문화서비스 시설들이 그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장 수요를 확보하지 못해 모두 떠나면서 나타나는 문제이다. 벌이도 시원치 않은데다가 최소한의 의료시설도 교육기회도 편익시설도, 문화시설도 갖추지 못해 기본적인 삶의 질조차 누리기 어려운 문제가 가중되고 있다. 살기가 그지없이 팍팍하고 불편할뿐더러, 최소한의 문화적인 기회마저 아예 봉쇄된 채 노인들만이 남아 하루하루의 삶을 힘겹게 이어가고 있다.
우리 농어촌이 이렇게 무너지고 있는데도 정작 그것에 대응하는 농어촌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문제의 심각성도 어려움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조차 의문이 들 정도다. 책임감 없는 안이한 생각으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집적거리면서 표류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좌표도 없고, 그러니 무엇을 지향하는지 방향도 읽기 어렵다. 농어촌정책의 핵심인 과소화, 공동화문제에 대한 논의는 실종된 채 요란한 수사(修辭)로 초점을 흐리고 분식(粉飾)하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농가소득을 안정적으로 증대시키고, 농어촌을 살기 좋은 삶의 터전으로 가꾸겠다는 농정의 기본 목표는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한때 도시근로자소득과 균형을 이루었던 농가소득은 이제 그 절반이 좀 넘는 60%대 수준으로 주저앉고 있으며, 더 이상 빠져나갈 사람이 없을 것 같았던 농어촌인구도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00년에서 2010년까지 10년만 보더라도 면지역 인구는 이 기간 중 110만명 가까이나 줄어들어 감소율이 20%를 상회하고 있다. 최근 베이비부머 세대의 본격적 은퇴시기와 맞물려 귀농귀촌인구가 늘어나면서 농어촌 면지역 인구가 조금 증가하고는 있으나 어디까지나 한계 상황에서 보여주는 정체현상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농어촌 사정이 한치 앞이 안보일 정도로 암울한데도 농어촌정책 당국은 여전히 알아듣기 어려운 장밋빛 기대만 쏟아내고 있다. 농업을 첨단산업화하고, 6차산업화해서 농업의 부가가치를 증대해 나가겠다는 공염불 같은 아리송한 말만 되뇌고 있다. 도를 넘는 농어촌의 과소화, 공동화로 그야말로 농어촌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있는데도 귀농귀촌인구가 크게 증가하고 있어 농어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하면서 마치 농어촌으로 인구 U턴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양 호들갑을 떨고 있다.
농어촌정책이 이렇듯 오랜 시간 핀트를 어긋나게 맞추고 겉돌면서 많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알맹이 없는 ‘아이디어 농정’, ‘이벤트 농정’, 이라고 걱정하기도 하고, ‘돈먹는 하마’,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날선 비판이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농어촌관광이 농어촌문제를 해결하는 ‘전가의 보도’인양 외치면서 전국 농어촌 마을에 수십억원을 들여 도농교류센터를 건설하였지만, 전기료 낼 형편이 안 되어 폐쇄하고 있는 사례가 부지기수이다. 보성녹차를 지역 활력 동력으로 삼아 혁신하겠다고 하면서 ‘신활력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돈을 지원한 것이 엊그제인데, 그 사이에 녹차 밭의 절반 이상이 방치되고 폐허화되고 있다는 기사가 방송을 타고 있다. 농어촌정책의 한 단면이다.
더 큰 문제는 농어촌정책이 이렇게 표류하는 가운데 국민의 혈세가 무분별하게 줄줄 새고 있다는 것이다. 돈은 필요한 곳에 잘 쓰여 져야 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대원칙이고 모든 일의 대전제이다. 논어 ‘요왈’편에 정치원칙을 무엇으로 실천하는가? 라는 제자 자장의 질문에 공자는 그 첫 번째 원칙이 혜이불비(惠而不費)라고 대답하고 있다. 지원은 하되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필요로 하는 곳에 낭비 없이 주어야 한다고 했다. 농림축산식품부만 하더라도 매년 1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돈을 농어촌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뿌리고 있는데, 과연 이 과정에 이러한 원칙과 전제가 살아있는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최근에는 농어촌주민들이 모여서 마을 발전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하고서는, 그것에 ‘포럼’이라는 이름을 붙여 많은 돈을 들이고 있는가 하면, 주민역량 개발한답시고 또 많은 돈을 쓰고 있다. 자기 마을 문제를 두고 이런저런 토의를 하는 것은 당연히 스스로 해야 할 일이지, 그것을 정부가 돈 들여서 해야 할 일인가? 또 개인의 역량개발을 아무 정부나 나서서 무턱대고 해야 할 일인지? 설사 그렇다 하더라고 할 수는 있는 일인지? 선뜻 납득이 되지 않은 대목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혼란스러워 말을 잇기가 어렵다.
모든 문제가 그렇듯이 농어촌문제 역시 본질을 외면한 채 미봉적이고 대증적인 요법으로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돈으로 그때그때 눈과 귀를 가리고 고통을 잊게 하는 시혜적이고 보호적인 대책을 나열해서는 그 무엇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허약했지만 맨손으로 과감하게 세계시장에 뛰어들어 스스로 홀로서기를 해냈던 우리의 성공한 개발경험이 지원 일변도의 퍼주기식 정책을 경계해야 함을 일러주는 생생한 증거다.
더욱이 농촌정책 당국이 이러한 사실을 모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이르러서는 답답한 심정을 좀체 가눌 길 없다. 상향식이라는 허울뿐인 이름 뒤에 숨어 기본적인 정책목표도 방향도, 전략도 없이 모든 걸 주민들에게, 지방에 미루고,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미사여구로 포장된 허상을 앞세워 귀한 돈을 여전히 해오던 대로 무분별하게 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의 이러한 공허한 농어촌정책으로서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있는 우리 농어촌을 구하기에 역부족일 뿐더러 어불성설이다.
지금이라도 바뀌어야 한다. 농어촌문제의 본질인 과소화, 공동화문제에 정면으로 맞서서 분명한 입장과 미래 청사진을 원점에서 새로 그려내고,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데 정책의 역량을 총동원하고 집중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첫걸음을 떼어야 한다. 큰 밑그림 없이 좁은 안목과 식견으로 이런저런 세간의 말들에 현혹되어 검증도 없이 성급하게 농어촌정책 프로그램들을 양산해내던 지금껏 관행에서 이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할 때다. 국민의 공복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진정성을 주지 못하고, 그리고 권한만 있지 어느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그런 곳에서는 농어촌의 어떤 미래도 기약할 수 없음은 불문가지다. 환골탈태의 심정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다양하게 소통하여 근본에 충실하고 모두가 공감하는 백년대계의 농어촌정책이 마련되고 펼쳐지기를 기대해 본다(끝).
이병기 교수 약력
△협성대학교 인문사회과학대학 학장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신활력사업 자문위원회 위원
△한국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 제2분과위원
△한국농어촌공사 비상임이사
△UN FAO(UN식량농업기구) National Consultant(Lead/Senior)
△한국농어촌유산학회 회장
△협성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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