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올 추석연휴는 무려 10일이나 된다. 정부가 국민들의 충분한 휴식과 내수 촉진을 도모하기 위해 추석을 앞둔 10월2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 이처럼 긴 역대 최장의 '황금연휴'가 가능해졌다. 이로 인해 귀성객 등 국민 이동이 많을 것으로 보이고 덩다라 소비도 늘어날 것으로 예견된다. 하지만 항공권이 동이 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선호하고 있는데다 소비심리가 꽁꽁 얼어붙어 있어 정부 의도만큼 내수 촉진이 이루어질지 두고봐야 할 것 같다.
우리 속담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다. 매일 매일이 한가위와 같았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추석에는 덥지도, 춥지도 않아 생활하기 딱 좋은데다 오곡백과가 풍성해 잘 먹고, 잘 놀 수 있으니 이런 말이 나왔을 것이다. 특히 올해는 고속도로 3일간 통행료 면제, 공영주차장과 고궁, 왕릉 등의 무료 개방, 영세사업자를 위한 금융지원, 체불임금 집중 단속, 아이돌봄 서비스 정상 운영 등 정부의 다양하고 세심한 민생안정대책으로 추석 연휴를 재충전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이 조성됐다.
하지만 마음 놓고 연휴를 즐기기엔 왠지 찝찝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경제와 안보 상황 등 주변 여건과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명절이 다가오면 으레 정부가 성수품 중심의 품목별 특별공급관리 대책을 내놓고 물가관리에 나선다. 올해도 어김없이 정부가 성수품 특별공급기간을 설정하고 14개 중점관리품목을 집중 방출, 가격불안 품목을 조기 안정시켜 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이러한 대책에도 불구하고 명절전 물가는 고공행진을 했고 올해는 상승세가 더 가파르지 않을 까 걱정이 되고 있다. 유난히 심했던 가뭄과 불볕더위에 이은 국지성 폭우, 살충제 계란 파동, 병충해 등으로 농수축산물의 작황이 부진하고 상품성도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갈비와 삼겹살 등 수입 축산물가격도 국제거래가격 상승으로 많이 올랐다.
지난 8월 소비자물가는 전년동기 대비 2.6%나 올라 5년4개월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특히 식탁물가와 연결되는 신선식품지수는 기상이변과 어획량 감소로 무려 18.3%나 크게 올랐다. 6년 6개월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최근엔 때 아닌 우박까지 내려 추석 대목을 겨냥해 출하를 앞두고 있던 채소류 등 밭작물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고 사과 등 과일의 상품성을 크게 훼손시켰다. 이에따라 올해 추석 상차림 비용은 지난해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더구나 올해는 연휴기간이 길어 친척, 친지들과의 만남이 잦아지면서 음식상 차림도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최근 직장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올해 추석 예상 경비는 지난해 보다 20% 증가한 48만 4000원으로 분석됐다. 주머니가 가벼운 서민들은 시름이 깊어질 수 밖에 없다.
한국 경제는 세계경제의 호조와 추가경정예산 집행에도 불구하고 견고한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수출 호조 등에 힘입어 전산업생산이 4개월만에 증가세로 전환되기는 했지만 설비투자와 건설업이 조정을 받고 있어 그렇다. 게다가 우리 경제 앞에는 북한 리스크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자동차 업계 파업 등 3대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국내 정치도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야간의 협치가 인사난맥으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추석이라고 모두가 즐거운 것은 아니다. 연휴와 상관없이 일해야 하는 중소기업이나 특수직 근로자,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있는 수험생들에게는 연휴가 길면 길수록 상대적 박탈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또한 명절 스트레스를 걱정해야하는 주부들과 추석 특수를 기대할 수 없는 상당수 자영업자들에게도 긴 연휴가 한스럽기 짝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추석은 대표적인 명절이다. 충분한 휴식으로 일과 삶, 가정과 직장생활의 조화를 누리고 가족과 공동체의 화합을 다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옛날 머슴을 둔 농가에서는 머슴들에게도 새 옷을 한 벌씩 해주었다. 10일간의 긴 추석연휴가 정말로 국내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되고 일상에 지친 국민들이 힐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필자약력
△전 연합뉴스 논설위원실장
△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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