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정 받은 뒤 등급변화 없거나 오히려 등급 하락 탈락 많아

[투데이코리아=최치선 기자] 안면기형과 청각장애를 동반하는 소이증이 왜 영구장애판정을 받지 못할까? 이에 대한 정부와 소이증 환우 가족들의 입장이 크게 다르다. 소이증 기획 3번째로 복지부의 장애판정과 기준은 무엇인지 살펴본 후 장애등급재판정에 대해 시민단체의 주장과 문제제기를 들어보았다.

먼저 청각 장애진단 및 재판정 시기는 아래와 같다.
(1) 장애의 원인 질환 등에 관하여 충분히 치료하여 장애가 고착되었을 때에 진단하며, 그 기준 시기는 원인 질환 또는 부상 등의 발생 또는 수술 이후 6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치료한 후로 한다. 다만, 청력기관의 결손 등 장애의 고착이 명백한 경우는 예외로 한다.

(2) 전음성 또는 혼합성 난청의 경우에는 장애진단을 수술 또는 처치 등의 의료적 조치 후로 유보하여야 한다. 다만, 1년 이내에 국내 여건 또는 장애인의 건강상태 등으로 인하여 수술 등을 하지 못하는 경우는 예외로 하되, 필요한 시기를 지정하여 재판정을 받도록 하여야 한다. 전음성 난청 또는 혼합성 난청이 의심되는 경우 기도 및 골도순음청력검사를 시행하여, 기도-골도차가 6분법에 의해 20데시벨(dB) 이내일 경우 또는 수술후 난청이 고정되었을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는 재판정을 제외할 수 있다.

(3) 향후 장애정도의 변화가 예상되는 경우에는 반드시 재판정을 받도록 하여야 한다. 이 경우 재판정의 시기는 최초의 진단일로부터 2년 이상 경과한 후로 한다. 2년 이내에 장애상태의 변화가 예상될 때에는 장애의 진단을 유보 한다.

(4) 재판정이 필요한 경우 장애진단을 하는 전문의는 장애진단서에 그 시기와 필요성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지금까지 복지부의 장애등급판정과 시기에 대해 살펴보았다. 하지만 환우가족들과 시민단체들은 장애등급재판정에 대한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제기하고 있다.

지난 2011년부터 정부에서 시행한 등급제에 따른 시책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장애등급재판정’이다. 2010년부터 신규 장애등록자는 물론 장애연금, 활동지원서비스 등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장애등록한 사람도 영구장애로 판정받지 않는 이상, 특정 장애유형마다 해당 기한에 따라 등급재판정을 받도록 되어 있다.

이는 정부가 더 많은 장애인을 위해 양질의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공정한 등급판정을 하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기존의 의료적인 일률적 판정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던 등급판정기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 장애인들의 걸림돌로 원성을 사고 있다.

만약 장애정도가 심해진 상태에서 재판정을 받으면 더 높은 등급이 되어 혜택을 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재판정을 받은 뒤 등급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등급이 하락 혹은 탈락하는 경우도 많아 판정을 다시 받아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할 뿐만 아니라 기존에 누리던 혜택마저 못 받는 현실에 처하기도 한다.

소이증 장애인의 경우 수술 후 재판정을 통해 ‘등급외’ 판정을 받는 경우가 발생한다. 하지만이런 상태는 수술 후 일시적으로 호전되는 것에 불과하다. 소이증 부모와 이비인후과 전문의들은 소이증의 경우 수술 후 뚫어 놓은 귓구멍이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막히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말한다.

이처럼 소이증 병명에 대한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주기적으로 재판정을 하고 등급을 조정해 일률적으로 정하는 장애등급제의 폐단을 지금도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다. 수많은 장애인들은 등급재심사의 공포를 그대로 떠안은 채 오랜 시간 제도가 바뀌기만을 손 놓고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2010년 1월, 개정·시행된 장애등급판정기준안을 발표하면서 새 판정기준이 이전 등급판정기준에 비해 자의적이고 비객관적인 기준을 과학화하고 계량화하여 장애등급판정의 객관성, 신뢰성을 제고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즉 의사의 자의적인 판정을 줄이고 객관성을 담보한 검사기준으로 개정했다는 것인데, 그래도 여전히 100% 의료적 관점의 판정기준이라는 점은 동일하다. 등급에 따라 서비스 제공이 달라지는데 의료적 관점만으로 서비스 이용대상자를 결정한다는 것은 매우 기계적인 논리다. 또한, 의료적인 관점만 보더라도 과연 객관적이고 신뢰할만한 기준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장애등급재판정은 장애인활동지원, 장애인 연금을 받기 위한 서비스 재판정이 있고, 장애유형에 따라 주기적으로 재판정을 받기도 한다.
우리나라 장애인복지서비스는 등급이 기준이 되어 등급 하나가 장애인들을 울고 웃게 만들고 있다. 자칫 한 등급이라도 떨어지면 기초생활수급권이 탈락되기도 하고, 활동지원서비스, 장애연금, 장애수당 등을 받을 수 없게 된다. 마치 맨 앞에 서 있는 기준이 무너지면 와르르 무너지게 되는 ‘도미노’처럼 말이다.

장애연금제도는 일을 하기 어려운 1, 2급 혹은 3급 중복장애인 등 중증장애인의 생활안정을 위하여 매월 일정 금액을 연금으로 지급하는 사회보장제도다. 그런데 만약 연금을 꾸준히 받아오던 중증장애인이 재판정을 통해 3급을 받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고 중증이었던, 전혀 일을 하지 않았던 장애인이 생계를 위해 바로 일선에 뛰어 들 수 있을까? 설사 중증장애인이 경증장애로 장애정도가 아주 많이 호전되더라도 오랜 기간 중증의 장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근로능력이나 사회적응력은 비장애인보다 떨어질 수 있고 그로 인해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러므로 개인의 환경이나 욕구는 파악하지 않은 채 의료적 관점으로만 등급을 매긴 뒤 복지서비스를 제한하는 것에는 큰 오류가 있다.

그런데 정부 관계자들은 재판정으로 등급이 낮아지거나 등급외 판정을 받는 것이 장애가 호전됐다는 의미이므로 박수칠만한 일이 아니냐고 말한다. 이런 반응에 장애당사자들은 입을 모아 ‘현실을 무시한 처사’라고 외치고 있다. 그 이유는 현재의 장애등급제도 아래 있는 한, 재판정을 통해 등급이 한 단계라도 하락하거나 탈락되어 복지서비스를 잃게 되면 장애인의 생계에 큰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소이증을 앓고 있는 아이들의 경우에도 수술 후 일시적으로 청력을 회복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막히게 되기 때문에 만약 재판정 때 청력이 좋게 나올 경우 등급이 하락해 제대로 된 혜택을 받지 못한다.

이처럼 수술이나 치료로 일시적인 청력회복에 그치는 경우에도 운이 나쁘면 장애등급이 하락해 지원을 받지 못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는 가정이 많다.

소이증 환우 뿐만 아니라 많은 장애인들이 최근까지도 조금이라도 더 나은 복지를 누리고자 받은 재판정으로 받고 있는 것을 잃게 되거나 하나 주면서 다른 하나를 내놓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기획부 관계자에 따르면, 장애등급제도 시행 초기 당시 지적장애의 경우 지능지수가 70인데도 의사가 1급이라고 적어서 1급 판정이 나오는 등, 의사들이 관용적으로 판정을 내린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장애발생 직후가 가장 장애정도가 심하기 때문에 2년 정도 지나면 상태가 좋아지는 경우가 있어 재판정이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장애등급 판정기준을 완화·변경하여 더 많은 사람이 장애등록을 하고 등급이 상향조정될 것이라고 했지만, 공단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재판정을 받은 장애인 중 등급을 유지한 장애인이 80%, 하향 조정된 장애인이 15%, 상향 조정된 장애인이 5%라고 한다. 즉 재판정을 통해 등급이 상향되는 것보다 하향되는 비율이 높은 편으로 나타났다.

복지부의 예측과 달리 하향률이 높아진 상황에 대해 공단 관계자는 “의사들이 치료가 주 업무이지 장애를 판정하는 것이 주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판정기준을 잘 알고 판정하진 못했다. 그래서 오래 전에 받았던 분들 중에 장애가 심하지 않음에도 높은 등급으로 장애판정을 받은 사례가 있다”면서 “심사 없이 받은 등급이 새로운 심사판단기준에 따라서 정확하게 하다 보니 같은 장애라도 등급이 하향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전의 잘못된 기준으로 받은 판정이 정상화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가라지 뽑다가 알곡까지 뽑는다’는 말처럼,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겠다고 했다가 진짜 서비스가 필요한 많은 장애인이 피해를 보게 됐다.

재판정을 받기 위해서는 개인이 검사, 진단비용을 부담해야 하는데 많은 장애인들이 생활고를 겪고 있는 만큼 이 비용지출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신규등록의 경우 평균 12만 원, 재판정은 25만 원 정도의 비용이 소요된다는 게 공단의 설명이다. 물론 정부는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에게 일정부분을 지원하고 있다. 진단비용은 1만5천 원에 지적·정신장애는 추가로 4만 원을 지원, 검사비용도 저소득·자차상위는 10만 원 이내로 지원해주고 있으며, 심사대상이 자료가 부족해 더 필요한 자료를 요청하게되는 경우 즉, 행정청 직권으로 재진단을 받게 된 장애인에게는 공단에서 15만 원 한도 내에서 지원해준다고 한다. 그러나 저소득자나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닌 장애인은 재판정 비용을 개인이 부담해야 하고, 재판정 이의신청을 하고 나서 재판정을 다시 받을 경우 추가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한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남병준 정책실장은 “등급제를 폐지한다고 하면서 등급재판정을 강행하고 있다는 것은 문재인정부에서 새로운 체계로 바뀐다고 하더라도 의료적인 통제·관리를 하겠다는 뜻이 아니겠나”라며 “정부가 등급제 폐지에 대한 핵심적인 내용을 이해했다면 장애재판정부터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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