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4년여 전 개봉돼 누적관객이 1000만 명에 육박한 ‘설국열차’라는 영화에 바퀴벌레로 만든 식품이 등장한다. 이 영화는 기상 이변으로 새로운 빙하기를 맞이한 지구의 마지막 생존자들이 기차를 함께 타고 가면서 벌이는 계층간의 사투를 그린 SF(공상과학) 필름이다. 앞쪽 1등칸 사람들은 술과 마약이 난무하는 사치 속에 최고의 재료로 만든 진수성찬을 즐기지만 열차 내 최하위 계층이 탄 꼬리칸 사람들은 바퀴벌레로 만든 단백질 블록으로 명줄을 이어간다.
바퀴벌레는 워낙 혐오감이 높아 식품화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곤충 상당수는 이미 식재료의 하나로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둥지를 틀고 있어 결코 영화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징그럽게 꿈틀거리는 곤충을 어떻게 음식으로 먹을 수 있을까 생각하지만, 한번 먹어보면 새우 스낵처럼 고소하다면서 다들 놀란다. 세계 제일의 혐오식품이라는 산낙지가 한국에선 무척 비싼 인기 식품인 것처럼 식용 곤충도 세계 도처에서 인기 식품으로 부상하고 있다. 외형이 주는 혐오감을 없애기 위해 분말로 만드는 등 가공을 해 이를 빵이나 크래커에 발라 먹거나 소스 등의 다양한 식품 소재로 사용하게 되면서 인기가 가속화하고 있다.
전 세계애서 식용으로 쓰이는 곤충은 2천39종이나 된다. 이를 먹는 나라는 아메리카 23개, 유럽 11개, 아프리카 36개, 아시아 29개, 오세아니아 14개 등 모두 113개국이고 인구로는 20억 명에 달한다.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태국, 일본, 라오스, 베트남 등지에서 성행하고 있다.
일본 도쿄 신주쿠의 동남아 요리 전문점인 '농인레이'에서는 나방 애벌레와 귀뚜라미 튀김이 인기다. 나가노(長野)현 이나(伊那)시의 식품회사 쓰카하라신슈진미에서도 메뚜기와 번데기 등 곤충 조림 식품의 매출이 5년 새 두 배로 늘었다. 일본에선 곤충 요리를 정식 메뉴로 내놓는 음식점이 늘고 있고 특히 젊은 층이나 여성의 주문이 많다고 한다.
곤충이 미래의 새로운 단백질 공급원으로 떠오르면서 유럽에서도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스위스의 대형 유통업체인 쿱은 지난 8월부터 스타트업 기업인 에센토가 제조한 곤충버거와 곤충볼을 베른과 취리히, 제네바 등 대도시 매장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또한 벨기에와 네덜란드에 이어 핀란드 정부도 귀뚜라미 등 곤충을 식용으로 키워 판매하는 것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이젠 유럽은 물론 미국의 유명 레스토랑에서도 곤충 요리가 자주 등장, 10년 후에는 이들 지역 인구의 80%가 식용곤충을 먹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주로 메뚜기와 번데기를 먹어온 우리나라에서도 2010년 ‘곤충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후 관련 산업이 활기를 띄고 있다. 시장 선점을 위해 CJ제일제당과 대상, 농심, 정식품 등 약 500개 업체가 식용곤충식품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4년 갈색거저리 애벌레인 ‘고소애’와 흰점박이꽃무지 유충인 '꽃뱅이'를 식용곤충으로 인정한데 이어 장수풍뎅이 유충인 ‘장수애’와 쌍별 귀뚜라미인 ‘쌍별이’를 한시적 식품 원료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이들 곤충이 쿠키와 햄버거, 순대, 빵, 소면, 음료수, 파스타, 스프 등 다양한 요리 재료로 활용되고 있으며 2020년에는 한국의 곤충산업이 7,000억~1조 원의 대규모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보통 면 음식을 먹으면 밥이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면 음식에 곤충을 넣으면 단백질 섭취를 같이 할 수 있어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 그래서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곤충을 '작은 가축(little cattle)'이라고 명명했다. 곤충을 육류를 대체할 미래 식품으로 지목한 것이다. 더구나 곤충은 단백질은 물론이고 각종 미네랄과 불포화지방산, 비타민, 식이섬유 등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영양 보충이 필요한 영유아 청소년이나 환자들에게 안성 맞춤이다. 곤충은 동의보감에 언급된 것처럼 각종 질병 치료나 예방에도 효과가 있어 의약품과 화장품 등 다양한 소재로도 활용되고 있다
곤충은 사육기간이 짧고 작은 공간에서 사료를 적게 들여 키울 수 있어 사육비용이 적게 든다. 이것이 최대의 장점이다. 같은 양의 단백질을 얻고자 할 때 쇠고기는 고소애의 10배, 돼지고기는 2~3.5배의 땅이 필요하다. 게다가 곤충은 냉혈동물이어서 먹은 사료가 체내에서 단백질로 바뀌는 비율이 높아 사료가 매우 적게 든다. 귀뚜라미의 경우 소가 먹는 양의 1/12, 돼지가 먹는 양의 1/2 만으로도 체내에서 같은 양의 단백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에 따라 소 한마리를 성우가 될 때까지 사육하는데 평균 120만 원 이상의 비용이 지출되나 식용곤충을 사육하면 소 한 마리와 같은 양의 단백질을 20만원에 생산해 낼 수 있다.
또한 곤충은 친환경적이다. 소나 돼지 등은 트림과 방귀, 분뇨 등을 통한 온실가스 배출량이 엄청나 축산업이 지구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17%나 되나 곤충의 가스 배출량은 소나 돼지의 1/10~1/100에 불과하다. 물도 월등히 적게 소비된다.
현재 74억 명인 세계인구는 2030년에 85억 명, 2050년에 96억 명, 2100년에는 112억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에 따라 먹거리도 이에 상응하게 늘어나야 하는데 곤충이 유력한 대안이 되고 있다. 곤충식품산업이 영양실조로 신음하는 전세계 약 8억명의 기아와 앞으로 닥쳐올 세계 식량 부족문제를 해결하는 황금 알을 낳는 블루칩으로 부상할 날이 머지 않는 것 같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필자약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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