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영천에 처음 살 집을 마련하기로 했을 때 우리 부부에게 고민 한 가지가 있었다. 고택에서 30년 동안 살면서 집을 돌보아 주셨던 아지매의 거처를 어떻게 할까 하는 것이었다. 자녀가 타지에 살고 있었지만 시골 살기를 고집했던 아지매여서 우리가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고택을 현대식으로 개조해서 함께 살 생각도 했다. 그러다가 아름다운 한옥의 모습이 훼손되는 것이 안타까워 한옥은 그대로 보존하고 옆에 조그마한 집을 지으면서 그 옆에 아지매가 살 작은 관리동을 따로 짓기로 했다. 그 분은 독립적으로 사시던 분이었으므로 우리가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옥은 보존을 위해서만도 상당한 비용이 필요했다. 보존을 생각하다보니 시냇물 건너편에서 고택을 부드럽게 응시하는 오래된 정자인 침수정까지 손 봐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 모든 과정은 건축비가 초기 예상보다 엄청나게 초과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도무지 얼마가 들지 가늠이 안 됐다. 모든 걸 최소화, 최적화하는 것으로 목표를 세우고 22평의 집을 설계했다. 모든 건축이 끝날 동안 아지매는 자녀들의 집에 가는 것을 마다하고 마을회관에서 숙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완공을 기다리는 동안 병이 심해져서 자녀들이 요양원으로 모시고 가고 말았다. 집이 다 된 후 아지매가 한 번 관리동을 방문했다. “여기에 살아보고 싶었는데.......”
우리가 새 집에 사는 동안 여덟 평짜리 그 관리동은 찾아오는 손님들에 의해 자연스레 게스트하우스라고 불리게 되었다. 의도와는 다르게 우리 집에 손님맞이 별채가 생긴 것이다. 혼자 살 아지매를 위해 만든 편의시설에 많은 손님들이 편하게 쉬게 되었다.
손님들은 고택에서 차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지만 게스트 하우스에서 편안히 휴식을 취하는 것을 좋아한다. 문 하나를 닫고 갈색 블라인드를 내리면 그렇게 포근하고 아늑할 수가 없다. 나 자신 가끔 그 쪽으로 가서 쉬기도 한다. 지대가 낮아서 바닥에 누우면 하늘이 더 넓게 팔을 벌리고 다가온다.
뜻하지 않게 우리 품으로 들어온 그 게스트하우스를 우린 무궁화 하우스라 부르기로 했다. 그 곳 마당에 한 그루의 무궁화도 아직 없는데 이름부터 얻게 된 것이다. 사실인즉 우리 부부는 전부터 무궁화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우리나라 꽃인데 귀하게 대접을 받지도 못하는 것 같고 주변에 많이 보이지도 않는다. 진딧물이 많이 꾀인다는 좋지 않은 평과 함께 새로운 국화를 선정해야 한다며 개나리니 진달래를 천거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둘러보아도 무궁화만큼 의젓하고 품위 있어 보이는 나무도 흔치 않다. 꽃도 중요하지만 나무 수형도 좋아야하기 때문이다. 무궁화가 국화가 된 연유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애국가가 만들어질 때부터 자연발생적으로 국화가 되었다는 설이 많다. 그렇다면 그 당시 나라 곳곳에 무궁화가 많았다는 뜻으로 보인다.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자신이 스스로 무궁화를 홀대하고 많이 심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서울 살 때부터 가끔 이곳에 내려와 침수정 주변에 무궁화를 심었지만 돌보아 주지 못해서 그런지 반도 남아 있지 않아 안타깝다.
영천에 내려온 우리 부부가 이곳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라면 이 추곡 길을 온통 무궁화동산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침수정 주변에 아직도 자라고 있는 여러 종류의 스무 남짓 무궁화와 아울러 이 마을 어디서나 무궁화를 볼 수 있게 하고 싶다. 마음이 있는 곳에 길이 생기지 않을까? 무궁화 하우스 방바닥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 하늘을 쳐다보았다. 30년 동안 고택에 살면서 집을 돌보아 주신 아지매의 얼굴이 떠오른다. 덕분에 좋은 집을 갖게 되었다. 무궁화 하우스란 이름에 걸맞게 온갖 종류의 무궁화가 만발할 이름 그대로의 무궁화하우스를 그려 본다. 보고 싶어요! 아지매!
조은경 약력
△2015 계간문예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
△소설 '메리고라운드' '환산정' '유적의 거리' '아버지의 땅'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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