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무 투데이코리아 회장

가난은 끔찍하게 무서운 것입니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실제로 사흘을 굶어보면 자연히 알게 됩니다. 일부러 굶어도 눈이 뒤집힐 정도인데 어쩔 수 없이 사흘 이상 굶게 되면 환장(換腸), 즉 장이 뒤집히는 것이 일반적이라고들 합니다. 가난은 보통 굶주림과 추위에서부터 시작해서 궁극에는 인간의 존엄을 포기하고 본능에만 매달리게 만들고 맙니다.
‘생존을 위한 인간의 기본수요(Basic Needs)를 스스로 충족시킬 수 없는 상태’를 ‘가난’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개인과 가족의 가난, 집단이나 동네의 가난, 나라와 지역사회의 가난, 일시적 가난과 영속적이자 구조적인 가난, 이 모든 가난이 인류가 원초적으로 해결해야 할 태고 이래의 숙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가난의 사슬은 참으로 모질고 질기게 대를 잇기 마련입니다. 이른바 ‘빈곤의 악순환’이 그것입니다.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 우리 옛말이지요. 동서고금의 모든 통치자와 집권세력의 가장 큰 과제나 공약이 ‘백성들이 숙명적인 빈곤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인류의 3분의 2 이상이 아직도 그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 질긴 가난의 사슬을 세계 역사상 최단기간에 가장 효율적으로 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민주화와 동시에 세계 최첨단의 정보화를 이루어낸 ‘기적’의 나라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의 가난의 사슬을 끊기 위한 처절한 싸움은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대통령의 주도하에 시작되어 전 국민의 열화와 같은 동참으로 마침내 빛나는 승리로 귀결되었습니다. 이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혁명공약 제 4항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는 바로 ‘가난과의 전쟁 선포’였습니다. 당시 박 대통령과 대한민국이 선택한 전략은 ‘사람 우선’과 ‘대외 지향’으로 요약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원과 자본, 기술이 거의 없이 극악한 일제의 수탈과 민족분단, 동족상잔의 폐허에서 겨우 살아남은 우리가 의지할 것은 오로지 우리나라 사람의 단합된 힘밖에 없다는 것을 애초부터 확실히 깨달았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그 힘을 자발적으로 동원하여 최대한의 인간자본으로 활용하는 것을 개발전략의 핵심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로 시작된 ‘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운동과 세계 최고수준의 기능·기술·경영 인력을 꾸준히 양성하여 적재적소에 투입한 것이 바로 ‘사람 우선’의 전략이었습니다.
다음으로 ‘대외 지향’ 전략은 당시 후진국 경제발전의 대세가 ‘자력갱생, 수입대체’였던 점에 비추어 가히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없었던 자원과 자본, 기술을 외부에서 도입하여 우리의 우수한 인력과 결합한 생산물을 다시 해외로 수출, 우리의 경제력을 축적해나가는 이 전략은 눈부신 성공을 거두어 세계 경제발전의 이론과 정책기조를 역전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이 우리의 성공을 보고 뒤따라오게 함으로써 세계역사의 흐름을 뒤바뀌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세계는 정보화의 급속한 흐름을 타고 디지털 세상이 된지 이미 오래입니다. 스마트 앱이 일상생활을 좌우하고 인공지능이 인류의 산업과 문화의 기초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든 것이지요. 1990년대 중반에 미국에서 만들어진 용어인 ‘디지털 디바이드’는 어느새 세계를 디지털 세상과 아날로그 세상으로 갈라놓았습니다. 아직 디지털 시대로 진입하지 못한 나라들은 영원히 정보의 격차를 따라잡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만약 우리가 진작 가난의 사슬을 끊어내지 못했더라면, 일찍이 정보화의 기초를 다지지 못했더라면 우리도 디지털 세상에 제대로 들어가지 못 한 채로 흉내나 내는 ‘무늬만 디지털’이 되지 않았을까요?
천만다행으로 우리는 5천년 가난을 슬기롭게 극복한 한 시대의 지도자와 혼연일체가 되었던 우리 앞 세대의 헌신 덕분에 디지털 세상에서도 가장 앞서가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저는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서거 38주년이 되는 날에 즈음하여 다시 한 번 ‘가난의 사슬’과 ‘디지털 디바이드’의 의미와 둘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봅니다. 디지털 세상에 잘 맞는 우리 민족성과 한글의 우수성을 살려 무궁한 우리 후대들의 미래를 개척해나가기를 빌면서 한편으로 이것이 가능하게 해준 박대통령의 위대한 혜안과 선배들의 열정에 감사의 념(念)을 금할 수 없습니다. <투데이코리아 회장>
필자 약력
△전)농림수산부 기획관리실장
△전)세계식량농업기구(FAO)한국협회 회장
△전)농어업농어촌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
△ 전)한국농어촌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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